우리 아빠는 “안부전화는 자식이 부모한테 하는 거지, 부모가 먼저 하냐?”라고 말하는 꼰대다. 그런 아빠가 전화를 먼저 할 때는 새엄마가 나한테 한바탕 한 후 새엄마를 이해하라고 하거나 마음 상한 나를 회유하여 사과하도록 종용하는 때가 대부분이다.(전부라고 하면 너무 싸잡는 거 같아, 대략 80% 될까?) 내가 더 이상은 나에게 감정쓰레기통을 시키지 말라고 지랄발광 발악한 후론 그런 전화가 뜸한가 싶더니 이제는 슬금슬금 또 전화해 남동생에게 사과를 하라는 말을 빙빙 돌려하는 것이다. 아직 내 마음이 정리되지 않았고, 내가 원하는 때에 연락을 하던 사과를 할 테니 그런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했더니 전화할 때마다 꼰대질을 하고 싶은 소기의 목적이 번번이 실패한 아빠는 화를 냈다. 넌 왜 당최 전화를 먼저 하지 않느냐며 꼬투리를 잡는다.
“난 앞으로 니한테 먼저 전화 안할끼라. 다시는 니한테 먼저 전화하는 일 없다. 니가 전화한다면 받아주기는 해도 먼저 전화는 안 한다.”며 뚝 끊어버리는 게 아닌가. 어렸던 내 안의 내면아이는 사랑을 주는 절대 권력자인 양육자의 저런 엄포 앞에서 얼마나 벌벌 떨었었나. 마치 생명의 탯줄이 끊어져버리는 협박 같아 나를 갉아서라도 그 요구에 맞춰 그 사랑을 받을 거란 환상을 붙들었겠지. 이제는 아니올시다. 흥. 하고 내면아이 효정이는 새침 맞게 고개를 돌린다. 아니, 안부전화를 주고받고 싶으면 전화하고 싶게 만들던가. 우리 모임에 오세요 오세요, 할게 아니라 그 모임에 가고 싶게끔 만들면 되는 것 아닌가? 아 물론 내가 먼저 사랑의 마음으로 전화를 먼저 걸어 부모님께 즐거운 이야기를 해드리며 코칭하듯이 부모님의 긍정 포인트를 짚어주는 코치가 되어주면 좋겠건만, 아직 밴댕이소갈딱지를 졸업하지 못했다.
무튼, 그런 생각을 하다 난 내 딸내미에게 전화할 때 어떤 마음으로 전화를 하나 돌아보니, 뭐, 콩 심은 데 난 콩이 따로 없다. (아 그래도 좀 노력하고 성장해서 그냥 콩은 아닌 걸로.) “엄마랑 전화하면 숙제하라고만 말하니까 전화하기 싫어.” 하던 딸내미말이 떠올랐다. 아차. 팩트기반 T형 대화에 딸내미가 싫어했었지(ㅋㅋ-_-). 그래, 우리 딸이 더 크고 성인이 되서 마음이 울적하고 힘이 필요할 때 내 번호를 누르게 되면 좋겠다. (팩트기반 T형 대화를 기어이 더 하겠다는 의지ㅋ)
아니, 그런데 우울할 때만 전화하면 어떡하나? 기쁜 일도 행복한 일도 함께 나누고 싶은데. 난 내 행복과 기쁜 일을 내 아이들과 나누고 있나? 그렇네. 나도 행복을 나누는 일에 익숙하지가 않네. 사실 행복하다는 걸 가슴으로 느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이 행복을 이렇게 누려도 되나 하는 불안감도 한편에 있었다. 익숙하지 않을 뿐, 하나씩 내 아이들과 행복을 나눌 줄 아는 엄마가 되고 싶다. 아까 오는 길에 발견한 벚꽃 잎이 소복이 쌓인 모습이 참 예쁘다 생각했다. 그 예쁨을 딸과 나누고 싶다. 카톡으로 사진 찍어 보내줘야지.(아들도 있는데 아들은 자동 배제)(이렇게 나는 꽃사진을 톡으로 전송하는 아줌마가 되어가고….) 제일 중요한 건, 오늘 요가를 하다가 너무 힘든데 나는 이걸 왜 하고 있나(지가 시작해 놓고 짜증 내는 어이없..) 짜증이 나서 울음이 터져 나왔고 어디서 그 울음이 나왔나를 유추해 보다가 오늘 그 예쁜 벚꽃잎들을 보면서 나는 아빠가 보고 싶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먼저 전화는 하지 않을 거다. #지는 느낌이니까. #나 사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