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부호 워런 버핏은 자녀들이 스스로 삶을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독립심을 길러주었습니다. 그가 강조한 가치는 자녀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주었고, 아이들은 아버지의 삶의 방식을 존경했습니다.
막내아들 피터 버핏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버지로부터 이미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았습니다. 그것은 진정성입니다. 삶에 대한 성실함과 정직함, 이것은 돈보다 몇 배나 더 값진 것이지요. 아버지를 통해, 나는 계속해서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있습니다."
워런 버핏이 말하는 '잘 사는 법'은 물질적 풍요를 넘어, 삶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삶의 지침은 단순하지만, 그 속에 진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가 말하는 잘 사는 법입니다.
자기 분수에 맞게, 단순하게 사세요. 빚을 멀리하세요. 필요 없는 곳에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 꼭 써야 할 곳에만 가려서 돈을 쓰세요. 비싼 명품을 좋아하기보다는 편안한 옷을 입어보세요. 그 돈을 아껴 자신에게 투자하세요.
행복한 사람은 노력해서 얻은 것에 감사합니다. 남의 말을 충분히 경청하세요. 그런 다음,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행하세요.
러시아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돈을 벌고 쓰는 법을 배웁니다.
부모로부터 일찍 독립해, 스스로 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가며 살아갑니다. 무엇이든 직접 해보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한 러시아 부자는 아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힘으로 돈을 벌어라. 그러면 전 재산을 너에게 물려주겠다."
어릴 적부터 아들은 부모에게 의지하며 자랐습니다.
스스로 돈을 버는 방법을 배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엄마는 남편 몰래 아들에게 돈을 쥐여주며 말했습니다. "이 돈을 네가 번 것이라고 아버지에게 말하렴."
아들은 돈을 아버지에게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말없이 돈을 난로 속에 던져버렸습니다. 다음 날에도 엄마는 또 돈을 주었고, 아들은 같은 방법으로 아버지에게 돈을 내놓았습니다. 그날도 말없이 아버지는 돈을 그대로 불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결국 아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남의 농장에서 일을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힘들고 고된 노동 끝에 마침내 번 돈을 손에 쥔 아들은, 상기된 얼굴로 아버지에게 돈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도 아버지는 돈을 난로 속에 던져 넣었습니다. 깜짝 놀란 아들은 급히 물을 퍼와 불을 껐고, 허겁지겁 타들어가는 돈을 손으로 꺼냈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이제야 네가 스스로 번 돈의 소중함을 깨달았구나."
세계 사천오백 개 매장에서 하루 일억 명의 고객이 물건을 사는 유통기업 월마트. 이 거대한 제국은 샘 월튼이 일궈낸 결과입니다. 그의 사업체는 백이십만 명의 직원을 거느리고 있으며, 재산은 이십조 원을 훌쩍 넘습니다. 하지만 모든 부에도 불구하고, 샘은 늘 검소함을 유지했습니다.
어린 시절 대공황을 겪으며 그는 절약의 가치를 몸으로 배웠습니다.
사업에 성공한 이후에도 허름하고 편한 옷을 입는 것을 즐겼고, 픽업트럭을 몰고 직접 필요한 물건을 사러 다녔습니다. 부유함에 취하기보다, 소박함 속에서 진정한 가치를 찾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자녀들에게도 철저한 가정교육을 통해 돈의 가치를 일깨워주었습니다. 네 명의 자식들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가게에서 일을 했고, 대가로 용돈을 받았습니다. 신문배달도 시키며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법을 일찍 가르쳤습니다. 이런 교육은 손자들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샘은 자식들에게 ‘게으른 부자’라는 말을 듣는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아들 롭 월튼도 아버지의 가르침을 따랐습니다. 월마트 회장이 된 이후에도, 그는 세평도 안 되는 작은 사무실에서 일하며 불필요한 낭비를 멀리했습니다. 샘 월튼은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준 것이 아니라, 존경받는 부자의 라이프스타일을 물려주었습니다.
체벌
아일랜드의 위대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아일랜드의 위대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아버지는 아들을 성직자로 만들기 위해 학교에 입학시켰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조이스는 오해를 받아 교사로부터 체벌을 받게 됩니다. 조이스는 억울한 마음에 자신이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설명했지만, 선생님은 그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조이스는 눈을 감은 채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내밀고 손바닥을 펼쳤습니다. 교사의 몽둥이가 번쩍 들어 올려지자, 교복 소매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귀에 스쳤습니다. 그리고 그의 손은 불에 탄 종이처럼 오그라들었습니다. 그날의 체벌로 인해 조이스의 손바닥은 핏기 없는 물체로 변해버렸고, 깊은 고통을 가슴에 안은 채 교실을 떠나야 했습니다.
훗날 조이스는 그날의 체벌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육이란 사랑을 나누는 것입니다. 교사와 부모는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기만 하면 됩니다. 체벌로 잘못을 고칠 수 있다는 생각은 참된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은 교실의 시간이 아니라, 생활 전체를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체벌은 신체적, 정신적으로 고통을 주고, 아이들의 마음속에 억압과 무력감을 심어줍니다. 정서적 피해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국제 인권 선언에서도 모든 인간은 존엄과 권리를 가지며, 모든 형태의 학대와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교육의 이름으로 아이들을 상처 주지 마세요.
꽃으로도 때리지 마세요.
러시아의 위대한 소설가 안톤 체호프의 어린 시절은 아버지의 엄격한 규율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잡화상을 경영하면서 동시에 교회 합창단의 지휘를 맡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체호프도 아버지의 합창단에서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은 노래보다 매 맞는 시간이 더 길었습니다.
체호프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교회 앞을 지나가기만 해도 등골이 오싹해지는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체벌은 교회 합창단에서만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잡화상에서도 매질은 일상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잡화상이 파산하면서 아버지는 체호프를 버리고 모스크바로 떠나버렸습니다.
아이에게 상처만 남긴 채 떠나간 아버지. 하지만 체호프는 그 순간을 ‘새로운 삶을 얻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혼자 살아가야 할 날이 걱정되긴 했지만, 이제 매를 맞지 않아도 되니 너무 행복했습니다.”
학교
그는 대학을 자퇴한 후, 농촌으로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의 교육가 페스탈로치는 루소의 「에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그로 인해 교육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페스탈로치는 농장을 경영하면서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대안학교를 열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일하며 글을 깨우치는 새로운 교육법을 도입했습니다. 그의 학교에서는 가난한 아이들과 부잣집 아이들이 동일한 교육을 받으며 함께 성장했습니다. 이 혁신적인 방식은 전 세계에 알려졌고, 수많은 학자들이 찾아와 그의 교육법을 연구했습니다.
페스탈로치의 교육법은 근대 교육의 기초가 되었고, 오늘날 초등학교 교육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매를 때리지 않는 학교를 만들겠다, 다짐했습니다. 학교는 아이들이 집처럼 편안하고 아늑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교사는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즐겁게 배우고, 놀이를 통해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 공부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페스탈로치의 교육 철학은 아이들을 사랑과 존중으로 대하고, 스스로의 능력을 믿으며 성장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이상은 오늘날까지도 교육의 본질로 남아 있습니다.
나쁜 부모
나쁜 부모는 자녀에게 일관되게 해를 끼치는 행동과 태도를 보입니다. 그들의 이런 태도는 자녀의 정서적, 정신적, 사회적 발달에 깊은 상처를 남기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이들은 자녀의 행동을 비판하고, 칭찬은 인색합니다. 작은 실수에도 과하게 꾸짖으며, 자녀의 자존감을 무너뜨리기 일쑤입니다. 자녀가 들은 말들은 상처로 남습니다.
“넌 왜 이렇게 멍청하니?”
“도대체 제대로 하는 게 뭐야?”
그들은 자녀의 자율성을 무시하고, 자녀의 의견이나 감정을 외면한 채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도록 강요합니다. 이는 자녀의 성장에 큰 제약을 두는 폭언입니다.
“내가 하라는 대로 해. 네 생각은 필요 없어.”
“내가 말했잖아, 네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이들은 자녀의 감정을 무시하며, 자녀가 도움을 청해도 외면하고 감정적으로 거리를 둡니다. 자녀의 슬픔과 고통은 부모의 무관심 속에서 더 깊어집니다.
“그만 울어. 별것도 아닌 걸로 왜 그래?”
“너는 항상 문제만 일으켜.”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열등감을 심어줍니다. 형제자매 간에 차별을 두며, 자녀 간의 경쟁과 적대감을 부추깁니다.
“왜 너는 네 친구처럼 잘하지 못하니?”
“네 형보다 못하는구나.”
그들은 신체적 폭력을 행사하거나 언어적 학대로 자녀를 위협합니다. 그로 인해 자녀의 마음은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게 됩니다.
“너는 나를 실망시켰어.”
“내가 널 왜 낳았는지 모르겠다.”
또한, 자주 규칙을 바꾸고 일관성 없는 처벌을 가해 자녀는 혼란스러워하고, 안정감을 찾기 힘듭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과도한 기대를 부여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자녀를 강하게 질책합니다.
“네가 이걸 못하면 우리 가족은 망할 거야.”
“네가 성공해야만 해.”
자녀의 친구 관계를 방해하고, 사회적 활동을 제한하며, 자녀가 외부 세계와 단절된 채 자라도록 만듭니다. 자녀가 긍정적인 성취를 이루어도 칭찬이나 인정은 없습니다. 자녀는 인정받는 기쁨을 경험하지 못한 채, 점차 자신의 가능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건 꿈도 꾸지 마. 너한텐 불가능해.”
“네가 뭘 할 수 있겠어?”
이들은 자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고, 자녀를 방치한 채 성장하게 만듭니다. 부모로서 책임을 회피하며, 자녀가 필요한 지원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너한테 신경 쓸 시간이 없어.”
“네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해결해.”
부모는 자녀의 성장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존재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주는 사랑과 지지, 그리고 관심은 자녀가 자신을 믿고 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됩니다. 그러므로 부모로서 부정적인 행동을 피하고, 자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소설가 찰스 디킨스는 문학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가정에서는 엄격하고 가혹한 아버지로 기억됩니다. 디킨스는 자녀들이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면 가차 없는 비판과 처벌을 가했습니다. 특히, 그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들들에게는 차가운 냉담함을 보였으며, 그로 인해 자녀들은 심리적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역시 정치적으로는 강력한 지도자였지만, 가정에서는 폭력적이고 냉혹한 아버지였습니다. 그의 아들 야코프는 아버지의 냉대와 가혹한 태도에 큰 심리적 상처를 입었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스탈린의 냉정한 가정에서의 모습은 그의 정치적 권력만큼이나 무자비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니체가 조카들에게조차 비정하고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고 기록했습니다. 니체는 가족 구성원들과 깊은 감정적 유대가 거의 없었으며, 조카와의 관계에서도 무관심하고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감정의 세계는 철학적 사유의 영역 밖에 있었던 것일까요.
미국 남부의 군사 지도자 로버트 E. 리는 엄격한 군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활 방식은 가정에서도 고스란히 유지됐습니다. 그의 아이들은 아버지의 철저한 규율과 높은 기대에 시달렸으며, 특히 아들들은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심한 질책을 받았습니다. 리 장군의 가정은 군대처럼 엄격했고, 그 안에서 자녀들은 자유로움보다 규율에 눌려 자라야 했습니다.
위대한 작곡가 베토벤은 결혼하지 않았지만, 조카 칼의 법적 후견인이 되면서 그를 자신의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하지만 베토벤은 칼에게 지나치게 엄격하고 통제적이었으며, 칼의 일상에 세세하게 간섭했습니다. 그로 인해 칼은 큰 압박과 스트레스를 받았고, 결국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베토벤의 천재성은 음악 속에서는 빛났지만, 가정에서는 사랑보다 엄격함이 더 두드러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