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은 아이에게 지식만을 전달하려는 시도로는,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가슴 깊은 곳에 잠들어 있는 열정을 깨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화가가 되는 꿈을 키웠습니다. 그의 대표작 「어린 왕자」 속 삽화도 직접 그린 것이지요. 하지만 어른들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에게 다른 일을 찾아보라고 조언할 뿐이었죠.
이 이야기는 「어린 왕자」에도 등장합니다.
생텍쥐페리가 그린 그림은 보아뱀이 코끼리를 삼키고 소화시키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었지만, 어른들은 그림을 보고 모자라고만 여겼습니다. 그의 작품은 이런 어린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따뜻한 인간미를 담고 있습니다.
생텍쥐페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마음으로, 욕심 없이 세상을 바라보세요. 그래야만 세상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본질은 보이지 않습니다.”
작은 별에 사는 어린 왕자는 정성 들여 기르던 장미꽃 한 송이를 남겨두고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여정은 그를 지구라는 별의 사막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한 여우를 만납니다.
왕자와 여우는 대화를 나눕니다.
“길들여진다는 게 뭐지?” 왕자가 물었습니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는 뜻이야.” 여우가 대답했습니다.
“관계를 맺는다고?”
“그래, 넌 나에게 다른 수많은 소년들과 다를 바 없을 거야. 나 역시 너에겐 수많은 여우 중 하나일 뿐이겠지.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나는 너에게 유일무이한 존재가 될 거야. 마음으로 보지 않으면 사물은 제대로 보이지 않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거든.”
여우의 이 말을 듣고 어린 왕자는 비로소 별에 두고 온 장미꽃을 떠올랐습니다. 오랫동안 마음속에 그 꽃을 사랑하고 있었음을 깨달은 왕자는 자신의 별로 돌아갑니다.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보세요.
그들의 세상에서 배우는 건 생각보다 많습니다. 아이들은 잘 웃습니다. 이유 없이 웃기도 하고, 기분이 좋아서 웃기도 합니다. 그 웃음에는 꾸밈이 없습니다. 분석도, 논리적인 설명도 필요 없으니 웃음은 맑고 투명합니다. 그래서 그들의 웃음은 전염성이 강합니다. 듣는 사람의 마음까지 순식간에 밝게 물들입니다. 어른이 되어도 꾸밈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과 만나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해집니다. 그들은 동심을 간직한 사람답게 우리에게 편안함을 선물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이 좋습니다. 그들의 존재는 세상의 복잡함 속에서 잊고 있던 순수함을 일깨워줍니다.
아이들은 무수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드러내며, 무엇보다도 끝없는 호기심을 가졌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넓고 너그럽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어떤 선입견도 없이 바라봅니다. 그들은 놀라운 탄력과 집요함도 갖추고 있습니다. 원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전진합니다. 때론 길바닥에 눕는 것조차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관철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줍니다. 무한한 상상력을 가진 그들은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성장합니다.
그러니 오늘은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보세요.
그들의 웃음과 자연스러움, 끝없는 호기심과 너그러움, 그리고 그들의 집요함과 상상력에서 삶의 지혜를 배워보세요.
마리아 몬테소리는 정신지체아들을 교육하면서 그들의 문제를 의학적 문제가 아닌 교육의 문제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녀는 국립 장애인 학교를 설립했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끌어내는 몬테소리 교육 방법을 구체화했습니다.
몬테소리의 어린이집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의자와 책상을 옮기고, 배치를 바꾸며 자신만의 공간을 만들어 갑니다. 이곳에서 교사는 단순한 관찰자일 뿐,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고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역할을 합니다.
몬테소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며, 책임질 수 있는 창조적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능력이 부족해 보일지라도, 세상 모든 아이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릇입니다.
아이에게 믿음을 주고, 아이가 걷는 길을 함께 걸어보세요.
길이 비록 울퉁불퉁할지라도, 그 안에는 성장을 위한 무한한 기회가 숨어 있습니다.
영국의 비평가 존 러스킨도 어린 시절 나약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지나친 보호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대학생이 되어서도 홀로 학교에 보내는 법이 없었습니다. 학교까지 함께 데려가는 것은 물론, 복장은 단정한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지는 않는지 일일이 챙기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심지어 배우자를 구할 때조차 스스로 며느리를 점찍었습니다.
그레이라는 여성을 며느릿감으로 선택한 어머니는 스물아홉 살인 아들 대신 청혼까지 직접 나섰습니다. 하지만 이 결혼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파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일은 당시 영국 사회에서 큰 웃음거리가 되었고, 러스킨은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이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누구보다 뼈저리게 경험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어머니의 끊임없는 간섭이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거부할 용기가 없었고, 결국 내 인생을 집어삼켰지요.”
과잉보호란, 선한 의도에서 비롯된 보호일지라도 자녀의 독립성과 자신감, 문제 해결 능력을 억누르는 보호자의 행동입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성장할 기회를 가져야만 합니다. 부모의 역할은 적당한 범위에서 아이들이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아이는 경험 속에서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며, 자신의 길을 스스로 개척할 수 있는 법을 배웁니다.
"연습을 해!"
아버지는 차갑고 엄격하게 피아노를 가르쳤습니다.
겨우 네 살밖에 안 된 아이는 손끝의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연습해야 했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방에 가두고 피아노 연습을 강요했으며, 조금이라도 연습을 게을리하면 무자비한 매질이 이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음악을 사랑했습니다.
피아노 앞에 앉기만 하면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잊고 연주에 몰입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에게 있어, 음악은 단지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아이의 재능을 이용해 돈을 벌려는 것이었으니까요.
독일의 음악가 베토벤은 그런 아버지의 압박 속에서 자랐습니다.
그는 열한 살 때부터 연주 여행을 떠나야 했고, 어린 나이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습니다. 폐결핵으로 어머니를 잃고, 술에 빠져 무책임하게 살아가는 아버지를 대신해, 베토벤은 동생들의 생활까지 돌보았습니다.
음악에 대한 흥미로 시작했던 그의 연주 인생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무거운 짐이 됐습니다. 끝없는 연습과 연주 여행 속에서 지쳐 갔고, 점점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그의 성격도 조금씩 삐뚤어져 갔습니다.
조시 해밀턴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메이저리그의 주목을 받던 유망한 야구 선수였습니다. 그의 미래는 밝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습니다. 사고 이후 야구를 쉬게 되면서, 극심한 불안감에 시달렸고, 결국 마약에까지 손을 대었습니다. 그렇게 깊은 중독의 수렁에 빠져들었고, 열한 번이나 자살을 시도할 만큼 어두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할머니였습니다.
할머니는 지친 손자를 바라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끝난 것은 아무것도 없단다. 내가 영원히 너의 편이 되어 줄게."
이 한마디는 해밀턴에게 다시 살아갈 용기를 심어주었습니다.
그는 다시 야구 방망이를 잡고, 잃었던 꿈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 2007년, 해밀턴은 아흔 경기에 출전해 열일곱 개의 홈런을 때리며, 마치 잃어버린 실력을 회복하듯, 다시 그라운드 위에서 빛났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머니 덕분에, 가장 힘든 순간에도 다시 방망이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해밀턴은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를 딛고 일어서며 야구팬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야구선수로서의 성공을 넘어, 절망 속에서 희망을 되찾은 한 사람의 깊은 감동을 선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