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갑게 가라앉은 깊이
서울은 뜨거운 도시다. 사람은 바쁘고 시간은 빠르게 흐르며 하루는 쉽게 식지 않는다. 그런 도시에서 사람들은 차가운 것을 찾는다. 속을 식히고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차가운 것을 찾는다. 그래서 서울의 여름에는 늘 냉면이 있다.
냉면은 차갑다. 하지만 차가움은 온도가 아니다. 끓이고, 식히고 기다려야만 완성되는 시간의 결과다. 맑은 육수 위에 면이 고요히 잠겨 있고 위로 얇은 고기와 배가 얹힌다. 보기에 단순하지만 안에는 겹겹의 시간이 숨어 있다.
서울 냉면은 많이 넣지 않는다. 메밀 면, 동치미 혹은 고기 육수, 얇게 썬 수육, 배, 오이, 삶은 달걀, 때로는 매콤한 양념이다. 각각의 재료는 서로를 침범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어울린다.
젓가락으로 면을 들면 후루룩 차가운 공기가 함께 따라온다. 육수를 마시면 시원하게 입 안이 맑아지고 몇 번을 더 먹다 보면 은근히 깊은 맛이 천천히 올라온다. 이 음식은 한 번에 감동을 주지 않는다. 대신 천천히 설득한다.
서울의 냉면은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과 함께 자리 잡았다. 평양에서 시작된 맛이 이 도시에서 다시 이어졌다. 전쟁과 이주, 낯선 땅에서 이어진 음식. 그 속에는 그리움과 적응이 함께 담겨 있다. 그래서 서울의 냉면은 기억의 연장선이다.
냉면을 먹는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는다. 후루룩 한 번의 소리 속에 복잡한 생각이 풀리고 시원스러운 한 모금 속에 열기가 내려간다. 이 음식은 말한다. 모든 것을 뜨겁게만 붙잡고 살 필요는 없다. 때로는 식혀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서울의 냉면은 마음을 식히는 방법이다. 차갑지만 그래서 더 깊이 남는 방식으로 식히는 방법이다.
은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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