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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lo Earth Feb 19. 2024

사춘기도 두렵지 않아!

작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큰 아이와 집에 있는 시간.

2개월 남짓 다녔던 수학학원도 끊고 나니 갈 곳도 없이 집에서 보내는 평범한 하루의 시작이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마음이 바쁩니다.

중학생이 되기 전에 끝내야하는 예방접종.

독감 주사 때 일본 뇌염도 맞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생일이 늦어서 접종 기간이 아니라며 담에 가기로 하곤 깜박 놓쳤던 모양입니다.


보건소 확인 문자에 늘 빠지지 않고 다녔던 요가 수업도 빠지고는 큰 아이와 병원으로 향합니다.

집 앞 병원은 늘 대기인원이 가득하니 일부러 먼 곳까지 걸어갔더니 가는 날이 장날인지 오늘 임시휴원이라네요. 에고.


그래도 먼 곳 온 김에 남편에게 의뢰받은 은행업무를 처리하고 아이와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서 집까지 옵니다.


한참 아이와 투닥거리고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3학년을 떠올리면, 아이와 이렇게 웃고 대화하며 다정하게 걸어가는 이 시간이 정말이지 감격스럽기만 합니다.

3년 전만 해도 이런 평화로운 행복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할 수 없을 만큼 매일매일이 전쟁이었거든요.


아이의 3학년.

코로나와 동생의 탄생에 대한 박탈감, 맞벌이로 인한 엄마 아빠라는 보호자의 부재가 아이에겐 엄청난 충격으로 다가왔는지 아이는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습니다. 심지어 게임 중독(?), 폭력 성향까지 보이면서 가족 전체를 위기로 몰기도 했지요.

그 땐 정말이지 아이를 포기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금쪽이 프로그램에서 많은 어머님들이 호소한 것 처럼 저 또한 극단적인 상황까지 생각하곤 했으니까요.

아이는 문을 발로 차서 부수기도 하고, 엄마인 저를 마구 때리기도 하고, 죽어버리겠다는 말까지 서슴치 않고 했었습니다. 금쪽이 프로그램처럼 말이죠.

그 때는 그랬었어요.


그러던 아이가 변했습니다.

다행히 오은영 선생님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도 말이죠.

3년간의 피말리는 노력으로 이제 저희 가족은 일상의 행복을 되찾았습니다.

믿을 수 없을 만큼 평범한 가족으로 말이지요.


아이가 오후에는 배정받은 중학교 예비소집에 다녀왔습니다.

방긋 웃으면서 들어오는 아이를 보며 저도 웃어줍니다.

같은 반이 된 아는 친구들이 많다며 다행스러워하는 아이 얼굴을 보니 엄마인 저도 마음이 놓입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따로 연락하는 친구들이 있지는 않지만, 학교에서는 나름 맘에 맞는 친구들과 조근조근 잘 지내고는 있는 모양입니다.


학업도 백지 상태였던 3학년에 비하면 일취월장했습니다.

남들처럼 중2, 중3 선행을 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중1 현행은 잘 따라갈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어차피 0점에서 시작한 아이라, 기대치는 높지 않다보니 아이가 조금만 성취를 보여도 물개박수를 치게 되네요.


예전엔, 매일 하는 수학 문제집이 안풀릴 때마다 속상해서 짜증을 내거나 울곤 했는데요.

얼마전에도 학원 숙제를 하면서 오랜만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더라구요.

요즘 좀체 그런 일은 없었기에 속으론 당황했지만, 한동안 울도록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잘하고 싶은데 안되니 속상하겠다 싶어서 말이죠.


그러다가 한참 후에나 나서서 종알종알 소파에 드러누워버린 아이 옆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합니다. 수포자가 되었던 엄마 이야기부터 1등이 아니라 그냥 꾸준히 하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잘 하고 있다는 얘기 같은 것을 말이죠.

아이가 들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제 이야기를 풀어봤어요. 엄마도 수포자여서 충분히 네 맘을 이해한다고 말이죠.


아이는 조용히 제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주절주절 엄마 얘기가 또 시작되나보다 했을 지도 모르죠.

하지만, 엄마는 압니다.

 아이가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있다는 걸 말이죠.

아이의 회복탄력성이 높아진 걸 이미 겪어서 금방 풀어질 걸 알고 있으니까요.

역시나 아이는 자전거 타러 가자는 한 마디에 멋쩍게 웃으며 일어납니다. '자전거 말고 등산 가면 안되나?'라면서 말이죠. 허헛....


예비소집에서 돌아온 아이가 책을 펴들고 읽기 시작합니다.

숙제가 하기 싫으면 책을 읽기도 하고, 이모에게서 넘겨받은 몇 년치의 과학동아 잡지를 제 무릎 높이까지 쌓아놓고 보기도 합니다. 머리 아플 때 머리를 식히는 본인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아직은 게임에 손을 대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늘 각오는 하고 있긴 하지요.


아이가 중학교에 갑니다.

초등학교 때만큼 다이나믹할까 싶긴 한데,

그래도 한 번 겪으니 그것도 경험이라고 용기는 납니다.

아이의 사춘기를 현명하게 대할 용기 말이죠.


"여자아이들은 너무 이상해. 만날 알 수 없는 춤만 춰."

" 중학교 가면 사춘기 여자 애들이 더 이상 이상해지는게 이상할 정도로 이상해진다는데, 걱정이야." 라면서도

겸연쩍은 표정으로 허허 웃으며 한 마디 덧붙입니다.


" 물론 나도 이상해질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라고 말이죠.


하하하.

그래.. 하지만 그건 이상해지는 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거야.

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그냥 씨익 웃고 말았습니다.


아이의 사춘기를 인정하고 나니 아이도 엄마도 편안해집니다.


아이가 다시 숙제를 하러 들어간 동안 엄마인 저도 식탁에 책을 펴들었습니다.

아이가 어려운 수학 문제라며 식탁으로 문제집을 가져와서는 여기서 풀겠다기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책을 읽고, 아이는 입으로 문제 풀이 과정을 스스로 설명하면서 식을 쓰기 시작합니다.

여전히 서툴고, 조금만 어려워져도 스스로에게 짜증을 부리곤 하지만, 이 짜증 마저도 서로 투닥거리며 티키타카 하다가 어느새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아이 모습을 발견합니다.

러다 어려운 문제에 봉착해 좌절한 아이에게 슬그머니 한 마디 흘립니다.

"음. 이 문제만 풀면 내일 엄마 회사 연수원에 갈 수 있겠네." 라고 말이죠.

(아이는 사우나를 무척이나 사랑합니다. 다른 곳 말고, 엄마 회사 연수원 사우나만요. 그런데 유학에서 서울로 돌아오고는 1년동안 한 번도 못 갔어요. 그러니 아이에겐 훌륭한 당근이 될 수 있는 거죠.)


응? 진짜?

 아이의 눈이 다시 반짝이며 멈춰섰던 연필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엄마에게도 아이에게 줄 당근과 채찍 아닌 채찍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 당근은 자전거와 등산가자!라는 말이구요. 채찍은 뭐, 자전거나 등산을 못간다는 거죠 뭐. 하하핫)


아이의 중학생활이 드디어 첫 발을 내디뎠네요.

아이의 행복한 사춘기 중학생활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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