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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랏빛인생 Sep 08. 2021

01. 결혼의 시작, 첫인사

첫인사에 큰 절을 올리지 않아서였을까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
결혼의 첫발을 딛다


4년의 연애 끝에 자연스레 결심한 결혼이었다.

내년엔 스물여덟, 왠지 어릴 적부터 결혼은 스물여덟 즈음하고 싶었다.


급할 것도 이를 것도 없는 나이에 결혼을 하겠노라 선언한 딸을 엄마는 어쩐지 못마땅해하셨다. 처음에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딸의 결혼을 온 마음으로 축복해주지 않는 엄마를 서운하게 여기기도 했다.


"뭐하러 일찍 어른이 되려 그러니"


이 말을 그때엔 이해하지 못했다. 난 이미 어른인데 마치 결혼을 해야만 어른이 된다는 그 말이 싫었고, 신성한 내 결혼을 고생의 서막즘으로 치부하는 그 걱정이 원망스러웠다.


자신이 있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의 집은 제사도 산 음식으로 지내고 명절엔 가볍게 친척들과 외식 정도 하고 헤어지는 쿨한 가족이었던 것이다.


할머니 댁이나 큰집에 가면 상을 몇 차례나 갈아치워 가며 작은 반상에 아이들과 여자들이 모여 남은 밥을 먹는 우리 집안과는 결이 달랐으니까. 엄마의 인생에 비추어본 내 결혼에 대한 조언은 고루한 잔소리일 뿐일 테지.


나의 프러포즈, 그의 프러포즈, 사이좋게 한 번씩 청혼을 주고받으며 세월이 흘러 그의 집으로 첫인사를 가게 되었다.


사귄 지 첫 해에는 나의 존재를 기뻐하며 관심을 가지시던 그의 부모님이 몇 년째 잠잠하시던 차였기에 첫인사가 조금 떨리고 긴장되기도 하였다.


직장 어른들께도 친척 어른들께도 어려움 없이 곰살맞게 굴던 나인데 막상 예비 시부모님을 뵈려니 복잡한 마음과 함께 한없이 어렵게만 느껴지던 것이다.


교수님인 아버님과 수많은 직업을 섭렵하고 현재는 쉬고 계신 어머님, 왠지 모를 긴장감을 안고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으로 들어가기 전 현관 앞에서 그는 별안간 들어가자마자 큰 절을 올리자 했다. 갑작스러운 그의 제안에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건 과한 거 같다 거절을 했었다.


그때 큰 절을 올리지 않아서였을까

들어가니 큰 절이고 반절이고 올릴 틈도 없이 자리에 앉게 되었고 어머님은 부산스레 상을 준비하셨다. 여러 과일바구니를 비교하며 고른 정성이 무색하게 진귀한 과일들이 차려졌고, 마카롱, 머랭 쿠키 등등 내가 무얼 좋아할까 고민한 흔적이 물씬 보이는 다과들이 가득했다.


어머니는 아주 활달하고 귀여운 데가 있으신 분이었다. 나를 아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셨단다. 음식 하나하나를 고르는데 나를 얼마나 생각했는지 신나게 풀어놓으셨고 먼길 돌아간다며 먹거리와 귀한 간식거리를 준비해두셨다.


그랬다. 엄마와 나의 걱정은 모두 기우였다.

오색빛깔 다과처럼 내 결혼생활도 찬란하게 펼쳐질 것이다. 시작이 아주 좋았다.


나는 새색시마냥 참하게 앉아 아버님 어머님이 물으시면 빙그레 웃으며 그를 슬쩍 바라보아 그가 대신 답하게 했다. 참한 며느리를 얻었다는 확신을 드리는 것이 예비 시부모님의 호의에 대한 나의 화답이었다.


돌아오는 길,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왕복 6시간의 여정 탓도 있겠지만 왠지 작은 연극을 하나 하고 온 기분이었다.


기성세대의 여성상으로 살아가고 싶지 않은 마음과 첫인사를 드린 시부모님께 정숙한 며느리로 보이고 싶은 마음이 혼재하는 아주 복잡한 연극이었다.


이 연극의 끝은 어디일까

그러나 이 때는 알지 못했다. 극의 서막이 아직 채 오르지도 못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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