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현적 자기애의 인지치료
나는 여러 상담소를 전전한 끝에 임상심리 전문가분을 만나 내현적 자기애라는 단어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상당히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남을 착취해서 내 자존감을 채우는 사람이고, 기피대상이라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들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살아왔다 생각했는데 나르시시스트라는 이름은 내 노력을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내현적 나르시시즘을 직면함으로써 얻은 것들이 더 많다. 병의 원인을 알아야 치료가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로, 내가 특정 상황에서 특정 정서 반응을 보이는 것의 원인을 알게 되어 그것을 교정하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보드게임의 예를 들어보자면, 예전의 나는 보드게임에서 패배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보드게임만 하면 금방 화가 나곤 했었다. 하지만 이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저 보드게임에서 질 때마다 이유 모를 화와 수치심에 시달리곤 했다. 이제는 보드게임에서 지기 싫어하는 나를 알아차릴 수 있고, 패배가 나 자신의 자존감과 직결되기 때문임을 인지할 수 있다. 그래서 보드게임에서 져도 내 자신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고 스스로를 설득할 수가 있고, 승패가 갈리지 않는 보드게임을 하는 식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도 있다. 메타인지, 즉 내가 인지하는 것을 인지함으로써 내 정서를 보다 적극적으로 교정하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할 수 있다.
나는 늘 이유 모를 자괴감과 열등감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제는 그 이유를 안다. 나 스스로에 대한 이상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래서 타인에 대한 열등감이 올라오면은, 저 사람과 나는 별개의 인간이고 나는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걸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되뇐다. 자괴감이 올라올 때면, 내가 바라는 이상적인 일 수행은 불가능한 것이고 다음에 더 잘하면 된다고 계속 생각한다. 이런 사고가 정서에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사고의 방식을 바꿔놓는다는 점에서 유의미하다.
예전에 자괴감과 열등감을 맞이할 때 나는 이렇게 괴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으니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었다. 죽겠다는 생각이 자동반사처럼, 마치 무릎을 치면 다리가 올라가는 것처럼 자동적으로 들곤 했었던 것이다. 반면 이제는 그러한 자동반사를 허용하지 않고, 보다 긍정적인 사고를 스스로에게 주입한다.
생각에는 유익한 것과 유해한 것이 있다. 스스로의 가치를 의심하고 평가절하하고 죽음을 갈망하는 생각은 유익하지 않다. 그런 생각을 해서 나에게 얻어지는 것이 전혀 없다. 반면 스스로를 다독이고 다음 걸음으로 어떻게 나아갈지 모색하는 생각은 유익하다. 하지만 불안과 우울로 점철되었을 때 스스로 생각의 유익함과 무익함을 따지기는 어렵다. 어릴 때부터 만들어진 사고구조 탓에 자동적으로 유해한 생각만 하게 된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만나는 유해한 생각들, 감각들은 모두 교정이 가능하다. 그냥 어떤 상황을 만났을 때 내 기분이 어떤지 살피고, 그 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 된다. 내현적 나르시시스트의 생각 구조에 대입해 봤을 때 내가 느끼는 정서의 많은 부분들이 설명이 되었고, 그래서 그에 대응하는 긍정적인 사고로 대처할 수가 있었다. 특히 이 과정은 좋은 상담사를 만나면 빠르게 단축 가능하다. 특정 상황에서 유해한 생각을 하는 나의 습관을 파악해, 그 상황마다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적절하게 조언해 주기 때문이다.
열등감, 불안함, 수치심, 분노 등으로 얼룩진 삶을 살고 있을 내현적 나르시시스트들이 보다 행복하게 자기 삶을 꾸려나가게 될 수 있길 바란다.
제가 준비한 글은 여기가 마지막입니다. 내현적 자기애에 관해 더 궁금하신 사항이나 제안해주시고 싶은 소재가 있으시면 댓글로 남겨 주세요. 만약 있다면 관련된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궁금하신 점이 없더라도 치료의 진척에 따라 다시 글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