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트러블은 자신의 삶을 포기하듯 대하는 딸의 행동으로 하루하루가 서로를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싫다 못해 밀어내고 있었다.
질풍노도의 중학생 시절을 지나 여고생이 된 딸에게는 재미없고 지루한 학교생활이 기다리고 있었고, 의욕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고1 때 담임선생님과의 만남이 아니었다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만큼 고1 때 담임선생님은 고3 때까지 늘 딸의 뒤에서 딸의 편이 되어 주는 학교엄마와도 같은 든든한 분이 되어주셨다는 것을 대학 원서 쓰면서 알게 되었다. 다른 선생님에게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고맙고 따스한 분이셨는지를 말과 행동으로 보여주셨던 분이셨다.
처음부터 그 선생님과 잘 지냈던 것은 아니었다.
원하지 않던 학교에 가게 되었다고 볼멘소리를 하던 딸은 학교에서는 의욕 없이 지냈고, 십 대의 거친 반항아 같은 눈빛과 행동은 충분히 선생님들에게도 거칠게 보였다.
처음 고등학교에서 상담을 하러 갔을 때의 담임 선생님은 본인의 자녀도 꽤 힘든 사춘기를 보냈고 그로 인해 이사도 3번이나 하면서 아이를 위해 상담공부까지 하셨다고 말해주며 잘 자란 성인으로 성장했다고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겪는 성장통이 좀 심하게 오는 아이들도 기다려주며 돌아갈 곳이 있다면 반드시 돌아온다며 나를 위로해 주고 조금 그 시간을 견디고 버티며 인내해 보자고 하셨다.
딸은 선생님과의 관계를 간 보는 시간 6개월을 그렇게 보냈고, 담임선생님은 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독이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 들어주셨다.
그러면서 선생님과의 관계가 좋아지니 반에서도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었다.
딸과의 관계가 틀어진 때부터 많은 서로를 상처 주고 할퀴는 마음은 서로에게 내적상처를 주는 데는 차고도 넘쳤다. 치명적인 더 이상의 상처는 없다고 들 정도였다.
상처 난 것은 그대로 아물게 두고, 어떻게 하면 그 더 이상의 아픔이 없게 살아가야 할까 늘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학교 가기 싫어 어그적 거리는 아이를 아침마다 학교를 데려다주었다.
혹시라도 학교 가기 싫어 안 가고 딴 데로 갈까 그 두려움이 컸을지도 모를 엄마의 마음이기도 했다. 아침마다 데려다주는 내내 운전대를 잡고 가는 그 시간은 아무 말 도하지 않는다. 다만 딸이 먼저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한 말을 걸지 않았다.
가뜩이나 예민한 아이가 아침이면 더 예민해져 건네고 받는 말에 상처를 주니 아침이면 말을 아끼고 꼭 필요한 말만 하는 게 아침 등교시간이었다.
차에서 내려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아이가 학교로 향해 가는 모습을 볼 때면 나는 기도했다. 딸이 학교 갈 수 있는 일상의 평범함을 감사하다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소리 내어 기도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여름방학 하던 날에는 아침마다 하고 싶은 말은 백 만개였지만 잘 참고 입을 다문 나도 나에게 감사했다.
그사이 나도 나의 성질을 죽였구나. 늘 팔팔하게 혈기 많았던 엄마의 모습에서 잔소리와 마음에 들지 않아 내뱉는 말을 하고 싶을 때면 한 번 더 생각하고 참아냈던 나의 모습에서 ‘인내’라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지만, 그 고비고비마다 꿀꺽하며 말을 삼켰다.
나도 참는 것을 할 수 있었구나 싶었다. 인내가 왜 썼는지 알 거 같은 시간이기도 했다.
인문계고등학교에서 특성화고로 가고 싶어 하는 딸의 요청이 있었기에 고1 한 학기 동안에 몇 개의 학교를 정해 전화 상담을 통해 좁혀서 한 학교를 정했다.
특성화고 에서의 상담은 엄마인 내가 먼저 방문을 하고 몇 가지 질문에 대답을 한 후
그림을 그렸던 딸의 작품을 가지고 여름방학에 모집공고와 함께 오기로 결정을 했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치고 나면 이런저런 이유와 상황들로 학교를 옮기고 선택하는 아이들이 많이 있었다. 방학 때 면접과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갔던 특성화고에서는 면접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딸은 정말 가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 가지고 덤볐던 거 같았다. 그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말을 해도 듣지 않는 딸이었기에 오롯이 딸의 영역으로 남겨두었다.
결과는 원하는 데로 되지 않았다. 발표날에 불합격을 통보받은 딸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서러움에 방 안에서 소리 내어 울었다.
그도 그럴 것이 가기 싫은 학교에서 가고 싶은 학교로의 희망을 꿈꾸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무너지는 마음이야 오죽할까 싶었다.
그런 딸의 울음소리는 엄마인 내 가슴을 미어지고 찢어지게 아프게 했다. 그러면서도 면접을 제대로 준비할 수 있었지만 자기 멋대로 했던 딸이 밉기도 했다.
이 무슨 애증의 시간이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