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따블로 가!
집안일의 대부분이 썩 내키는 편은 아니지만, 그중에 제일 나은 걸 꼽아보자면 단연 ‘빨래 개기’다. 건조기 이모님이 계심에도 전기세 이슈와 햇볕에 마른 빠삭한 느낌의 빨래를 선호하는 개인적 취향으로 주로 밖에 빨래를 널어두는데, 요즘처럼 급격히 추워진 날씨가 오면 불과 몇 발짝임에도 찬바람 휑휑 부는 밖에 널어 둔 빨래를 걷으러 가기도 영 귀찮다.
하루 이틀 미루다 보니 흐린 날 건조기에 돌려 둔 빨래가 한 바구니 가득 있고, 밖에서 이틀간 말린 빨래가 또 한 바구니 가득 있는데, 하기는 귀찮고, 안 하자니 안 되겠는 그런 시점에 도달해 버렸다.
가장 수월한 일이지만 미루고 미루다 그마저도 하기 싫어진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 핑계를 좀 대 보자면 그 사이 다른 집안일과 둘째 병원 일정, 급격히 추워진 날씨에 온몸 마디가 뻣뻣해진 것 같은 내 컨디션 이슈 등이 있었다. 이유야 몇 가지가 됐던, 내가 해야 할 일이고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다.
이럴 땐 별다른 방법이 없다. 전사가 되어 이 ‘빨래괴물’을 퇴치해야 한다. 거실 바닥에 모든 빨래를 모두 쏟아 빨래 산을 만들어 두고 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아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한 땀 한 땀 접어낸다. 동기부여를 위해 빨래개기의 장점을 떠올려본다.
빨래개기의 장점은 무언가 딴짓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이다. 찾아보던 드라마의 마지막 회를 틀어두고 힐끔힐끔 보며 천천히, 세월아 네월아 하며 개다 보면 드라마가 끝나기 전, 빨래 개기가 먼저 끝난다.
우린 4인가족이라 4개로 분류된 빨랫감은 널찍한 옷부터 작은 속옷에 이르기까지 차례대로 층층이 쌓여있다. 뒤엉켜 있을 때는 그저 빨래 산, 해야 할 일거리에 불과했는데, 사람마다 옷을 분류해 개 두고 나니 새삼 우리 가족 구성원이 ‘넷’이라는 사실이 한눈에 보이는 것 같아 어딘가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
부모님 그늘아래 살다가 진짜 독립을 한 건 스물다섯 살 때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나와 살긴 했지만 대학 졸업할 때까지 부모님께 금전적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경제적 도움을 받지 않은, 나의 ‘찐’ 독립은 스물다섯이었다.
하수구 냄새가 올라오던 화양동의 다세대주택, 욕실 창문을 열면 옆집 베란다가 나오는 지금 생각해도 요상한 구조의 원룸 등을 거쳐 결혼을 하고, 남편과 둘이 모은 돈 모두를 합친 것보다 두세 배의 빚을 지며 집을 사고, 아이를 낳아 기르며 그 빚을 갚고, 조금 나아질 즈음 하나를 더 낳고…
그렇게 꾸린 소중한 내 가정이다.
가끔은 다 갠 빨래 사진을 찍어 남편에게 전송하며,
‘우리가 어느새 네 가족이다!’라고 보내니
‘그러네, ㅋㅋㅋ’라는 답이 돌아온다.
남편은 내가 독립하던 그 해부터 만나 모든 과정 속에 함께 있었기에 내가 느끼는 감정을 함께 공유할 수 있어 참 좋다. 돈이든, 육아든, 양가 부모님께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면 조금 수월했겠지만, 못 받은 게 서운하지도, 아쉽지도 않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그 순간엔 가끔 서운하고 눈물 난 적도 있었다.)
그래도 그 덕에,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앞으로도 하면 어찌저찌 잘 살아지지 않을까?’ 라는 낙관적 자신감과 끈끈한 의리가 무기로 장착된 것 같다.
사고의 흐름이 이런 방향으로 흐르는 날은 못 할 일이 없다. 이럴 때 얼른!
빨래 한 판 묻고 화장실 청소 따블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