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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까멜리아 Nov 06. 2024

살림은 장비빨

오디너리피플


우리 집에서 한 달에 4-5번 하는 메뉴가 있으니 누룽지백숙이다. 나는 닭에 물 붓고 끓인, 그저 허여멀건 이 음식을 좋아하진 않지만, 나와 성씨가 다른 우리 집 3인은 손에 꼽힐 만큼 좋아하는 메뉴다.


8호-10호 닭(800g-1000g)을 구입해 껍질을 벗기고 안과 밖을 흐르는 물에 잘 씻어 누룽지 한 장과 함께 압력솥에 넣고 대파, 양파 되는대로 넣고 칙칙 끓여낸 누룽지 백숙은 우리 가족 한 끼로 딱이었다.


그런데 올해 여름부터 아이들이 먹는 양이 늘기 시작하더니 8호 닭 나부랭이로는 한 끼 택도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 내고 있던 어느 날, 첫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닭백숙에 닭다리 큰 거~

통째로 얹어서 주면 안 돼?”


(아! 이제 큰 솥을 살 때가 온 것인가?)

“그래, 다음엔 그렇게 줄게.”


당장 큰 압력솥을 사려고 알아보니, 인덕션용에 꽤 쓸만해 보이는 스텐소재는 가격이 꽤 나갔다. 집안일 중 음식 하기를 제일 좋아하는 나 지만 주방살림, 특히나 조리도구에는 이상하리만큼 욕심이 없는 편이라 그 값을 주고 솥을 사는 게 영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되는대로, 집에 있는 큰 솥에 큰 닭을 넣고 끓여냈다. 아이가 원한대로 닭죽 위에 큰 닭다리를 얹어줬는데 먹고 난 뒤 반응은 시큰둥했다. 매번 압력솥에 익힌 부들부들한 고기를 먹던 아이들에게 일반 솥에 끓여낸 고기는 상대적으로 질기고 맛없게 느껴진 것이다. 게다가 조리시간도 너무 오래 걸렸다.


사실 닭백숙만 자주 먹는 게 아니라 갈비찜도 자주 먹기에 겸사겸사 큰 솥은 결제만 미룰 뿐 사야 하는 아이템임이 분명했다. 오랜 서칭 끝에 특정 브랜드를 정하고는 ‘연말에 세일하면 사야지!’ 하고 또 미루던 어느 날, 전기를 꽂아 쓰는 멀티팟이라는 제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귓전에서


‘데스티니~ 유아마이데스티니~!’


하고 종소리가 땡땡 울렸다.


‘이거다!’


외형은 이게 디자인을 한 게 맞나 싶게 검정과 은색이 번갈아든… 누가 봐도 무지막지했고, 사이즈도 내가 쓰는 밥솥보다도 더 컸다.


그러나 내솥이 올스텐이라는 점! 뚜껑이 완전 분리되어 세척이 가능하다는 점, 무엇보다 쿠킹모드 버튼 몇 번 세팅하면 알아서 완성 후 보온으로 넘어간다는 점이 맘에 꼭 들었다. 가격도 압력솥의 절반! 남편에게는 거의 통보 느낌이지만 동의를 구하고 바로 구입했다.


다음날 아침부터 현관 앞에 커~다란 상자 하나가 배달됐다.


‘오후에 온다더니 빨리 왔네~’


하고 들고 들어오니 아이들이


“엄마, 왜 밥통을 또 샀어?”란다.


“지금 쓰는 솥이 작아서 엄마가 하나 샀어.

오늘 저녁은 닭백숙이야.”


부랴부랴 아침식사 차려먹고 남편 출근, 두 아이 라이딩하고, 식세기 기사님 다녀가시니 오후였다. 그제야 언박싱한 나의 뉴 아이템! 연마제를 제거하느라 또 한참을 낑낑거리다 다시 나가 닭을 사 왔다.


이제 모든 준비는 끝났다. 누룽지, 대파, 닭, 물 넣고 매뉴얼북에 나온 대로 국, 탕 모드 1시간 40분!

이렇게 눌러두고 아이들 픽업 돌고 놀이터 돌다 집에 오니 맛있는 백숙이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잘 먹지 않는 백숙 닭 가슴살 잘게 찢어 다진 야채와 함께 넣고 10분 더 돌리니 닭죽까지 완성됐다.


’ 뭐야! 이리 편해도 되는 거야?‘

‘역시 살림은 장비빨이구먼!


꼭 주방살림이 아니더라도, 한 번씩 어느 도구의 활용으로 삶의 질이 높아지는 경험을 가끔 하게 된다.


‘신문물 늘 새로워! 짜릿해!’


마음속에서 추구하는 바는 미니멀리스트이지만, 현실 속 나는 오히려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나는 뭐 이리 욕심껏 갖고 있나.’


싶어 처분하거나, 필요한 것을 미루고 구비하지 않게 되면 그만큼 내 몸을 더 쓰거나 시간을 더 써야만 하는 상황이 생겼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노동력이나 시간과 같은 무형자원에도 분명 기회비용이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시간과 노동력을 줄이는 쪽에 더 큰 가치를 두는 편이다.(몸 많이 쓰면 병나는 종이호랑이 스타일이다.)


결국 나는 미니멀리스트는 되지 못할 것 같고, 그저 적당한 오디너리 피플로 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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