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위에 놓인 취향

by Solar 수지

저녁 9시 반. 여느 화요일보다 훨씬 일찍 귀가한 날이었다. 보통은 10시까지 한국어 수업이 있고, 집에 도착하면 거의 11시가 다 된다. 하지만 오늘은 교수님의 아량으로 수업이 일찍 끝났다. ‘행운의 화요일’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반가운 일이었다.


며칠째 이어진 늦은 귀가에 몸이 축나 있던 터라, 오늘은 지독할 만큼 힐링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 달 전 미리 사두고는 귀찮아서 그대로 둔 택배 상자를 열었다. 배쓰 테이블이었다. 욕조 위에 걸쳐놓고 책도 두고, 유튜브도 보고, 와인잔도 올릴 수 있는 그 테이블.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저거 하나 있으면 반신욕이 더 기다려지겠다” 싶어 쿠팡에서 충동적으로 주문했던 물건이었다.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으며 산 지 일 년이 다 되어가는 로즈 솔트와 사봉 바디 스크럽을 처음 꺼냈다. 사실은 다 ‘갖고 싶어서 샀던’ 것들이었는데, 욕망에 비해 내가 너무 게을렀다. 늘 샤워로 대충 끝내던 일상에선 쓸 틈조차 없었다. 오늘은 달랐다. 오늘만큼은 이 여유를 스스로에게 허락하고 싶었다.


뜨뜻한 물을 받아 놓고, 내 취향의 음악을 유튜브로 틀어놓았다. 온몸을 감싸는 물의 온기와 말랑해진 배가 주는 기분. ‘아, 이게 행복이지.’ 이런 순간을 기억해 두려고 애쓴다. 삶이 건조하고 퍽퍽할 때 꺼내 쓰려고.


문득 향기에 대해 생각이 닿았다. 오늘 욕조에 흩뿌린 로즈 솔트, 자스민 향의 바디 스크럽. 나에게는 위로와 기쁨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고 답답한 향일 수도 있겠지. 같은 향도 누군가에게는 기쁨이고 누군가에게는 괴로움이 될 수 있다. 취향이라는 게 원래 그렇다. 보편적인 기준 같은 건 없다. 결국 취향은 아주 사적인 것이고 내 몸이, 내 유전자가 반응하는 거니까.


배쓰밤도 그렇다. 어떤 사람은 그 알록달록한 러쉬의 배쓰밤을 욕조에 풀어놓고 감각의 향연을 즐긴다. 어떤 이는 너무 강렬한 색과 향 때문에 오히려 멀리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호기심에 러쉬 매장에 들어갔다가 그 진한 향에 머리가 띵해 나와버린 적이 있다. 하지만 또 어떤 날에는 그 과장된 달콤함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그날의 몸과 마음 상태에 따라, 같은 배쓰밤이 다르게 느껴진다.


결국 취향은 변덕스럽고, 그래서 흥미롭다. 오늘의 나를 달래주는 향이 내일은 또 지겨워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순간순간을 채워주는 작은 사치들이 모여서 내 일상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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