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풍족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젊은 시절 사업을 하셨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부터는 직장에 다니셨지만, 고정적인 월급제가 아니었다. 성과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했고, 직장을 그만두신 뒤에는 프리랜서로 일을 이어가셨다. 안정적인 삶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교육만큼은 절대로 부족하지 않게 해 주셨다.
지금의 초중고 학생들은 등록금, 교복비, 중식비가 모두 지원되어 사실상 무료로 학교를 다닌다. 하지만 내가 학교에 다니던 시절은 수익자 부담이 대부분이었다. 분기별 등록금이 밀리면, 담임선생님은 등록금이 밀린 학생들의 이름을 교실에서 호명하며 독촉했다. 지금 생각하면 학생들의 인권 침해 문제가 심각하겠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런 일을 해야 했던 당시의 선생님들에 대한 연민도 느껴진다. 아무튼 나의 부모님은 어려운 상황이 생기더라도 등록금은 절대 밀리지 않으셨으며, 공교육뿐 아니라 사교육까지도 포기하지 않으셨다. 초등학교 때 학원비는 20만 원 정도, 고등학교 때는 30만 원대까지 올랐던 것 같다. 특히 영어학원, 수학학원 두 개를 다닌다면 50만 원이 넘는 학원비였다. 내가 성인이 되어 직접 돈을 벌어보니, 넉넉지 않은 형편에서도 그 비용을 감당하셨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문화자본을 세 가지로 나눈다. 책이나 예술품 같은 객체화된 자본, 학위나 자격증 같은 제도화된 자본, 그리고 몸과 마음에 스며든 습관과 태도로 남는 체화된 자본. 이 중 체화된 자본이 가장 강력하다. 상류층 자녀들은 어려서부터 고급 레스토랑의 식사 예절을 배우고, 포크와 나이프의 용도를 익히며, 타인의 제안을 부드럽게 거절하는 법을 몸에 새긴다. 그런 자본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성인이 되어 사회 속에서 자신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힘이 된다.
나의 경우에는 화려한 식사 예절 대신, “배움만큼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태도가 체화되었다. 초등학생 때는 영어, 수학보다는 피아노 학원, 미술학원, 정보 학원, 논술 학원 등을 다녔다. 그중 기억에 남는 사교육 활동이라면 초등학교 고학년 때 논술 집단 과외를 받은 적이 있다. 3-4명 정도의 친구들이 모여서 팀을 이루고 논술 선생님이 집으로 방문하셔서 수업을 들었었다. 그때는 칼럼이 뭔지 알 수도 없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칼럼 읽고 요약하기, 신문 기사 요약하기, 특정 주제에 대한 생각 나누어보기 등의 활동을 했던 것 같다.
그때 그 논술 수업은 지금의 나에게도 큰 영향을 줬다. 그래서인지 학창 시절에 글쓰기를 해서 상을 받은 적이 종종 있었으며, 초등학교 5학년 때 장애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담긴 단문집을 읽고 쓴 독후감에 담임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셔서 "정말 네가 쓴 게 맞니? 초등학생 수준이라고 보기 어려운데."라고 하셨으며, 중학교 1학년 때는 수행평가를 제출하자 국어선생님께서 따로 부르셔서 "작가가 될 생각은 없니? 글을 정말 잘 쓰는데."라고 하신 기억이 있다. 어른이 될 때까지 입시에, 취업에 등 돌렸던 독서활동을 취업을 하고 나니 여유가 생겨서 다시 시작하고 글 쓰는 일도 다시 하고 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적성과 흥미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다만 다양한 경험들을 하게 되면, 그것들은 보이진 않지만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언젠간 빛을 발한다. 다만 그것이 꼭 어릴 때일 필요는 없다. 어릴 때 체화된 특성이나 자본은 굉장한 힘을 가진다. 그렇지만 성인이 된 이후에 형성한 사회적 자아는 또다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준다. 그래서 지금 어렵고 넉넉하지 않다고 해서 나의 적성과 취향 찾기를 포기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