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과 사랑과 취향

by Solar 수지

어렸을 때 내 방은 그저 물건들의 집합이었다. 여동생과 함께 쓰던 작은 방에는 낡은 벽지, 뜯어진 책상 서랍, 오래된 흰 옷장, 나무색 컴퓨터 책상이 자리했다. 퀸 사이즈 침대 하나가 방의 절반을 차지했고, 옷으로 가득 찬 행거는 금세 휘청거리곤 했다. 따로 고른 가구라기보다는 부모님이 필요할 때마다 매장에서 저렴하면서도 괜찮아 보이는 것을 골라놓은 모음집 같았다.

그럼에도 그 방은 내겐 아늑한 안식처였다. 혼자 있을 때는 사유의 공간이었고, 임용고시를 준비할 땐 부모님의 사랑이 스며든 공간이었다. 2017년, 부모님은 당시 100만 원이 넘던 삼성 무풍 에어컨을 사주셨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늘 부족하지 않게 채워주려 애쓰셨다. 초등학생 때 아빠는 '먹과 붓 세트, 오카리나' 같은 준비물을 늘 가장 좋은 것으로 사주셨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늘 차로 데리러 와주셨다. 엄마 사랑이야 더 말로 할 수 있을까. 엄마는 내가 임고 준비할 때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주시고, 계절마다 옷을 사 입으라며 용돈을 손에 쥐어 주시기도 하고, 종종 함께 쇼핑을 같이 나가기도 했다. 나는 말한적도 없는데 "요즘 입을 자켓하나 필요하지 않아?" 항상 먼저 물어보셨다. 본인 옷은 그렇게 자주 사지도 않으시면서 말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 방은, 그 어울리지 않는 물건들보다 부모님의 세심한 사랑으로 채워진 공간이었다.

임용고시에 합격한 뒤 처음으로 자취방을 얻었을 때, 나는 내 취향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무난한 흰색 가구로 채웠다가, 너무 삭막해 회색을 더했다. 차분해졌지만 생기가 없자 가벽을 세우고 포스터, 조화 식물, 작은 조명으로 활기를 더했다. 향수와 캔들을 두자 비로소 방은 내 이야기를 담은 공간이 되었다.

누군가 찾아오면 공주님 방 같다며 감탄했지만, 사실 그건 ‘내 취향을 발견한 첫 번째 증거’였을 뿐이다.

이제는 결혼을 하고 남편과 함께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다. 물건 하나를 고를 때도 오래 고민했지만, 그 과정 덕분에 완성된 집은 우리가 모두 만족하는 공간이 되었다. 얼마 전 가족들을 초대했을 때, 다들 예쁘다고 부러워했다. 완주의 시골이지만, 신축 아파트에서 취향을 반영해 꾸민 집은 더할 나위 없는 안식처다. 요즘은 카페보다 집이 더 좋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무는 곳, 온전히 나를 위로해 주는 곳이 바로 내 집이기 때문이다.

돌아보면, 방은 늘 내 삶의 단면을 비춰주었다. 부모님의 사랑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방, 취향을 발견하던 첫 자취방, 그리고 지금의 집까지. 방의 구조가 달라질 때마다 나는 한 걸음 더 성장했다. 결국 내 취향은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지탱해 주는 방식이 된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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