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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계정 Nov 25. 2021

< 제 5도살장> 뭐 그런거지.


 커트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을 처음 만난 건 10년 전이다. 도서관에서 갔다가 특이한 이름에 끌려 선택했다. 돌이켜 보면 읽기 전에 <옥자>같은 이미지가 펼쳐지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 당시에 <옥자>가 개봉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도살장이란 단어를 보고 동물이 관련된 이야기가 전개되리라고 예측했다. 이 소설은 동물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다. 내 예상은 틀렸지만 <제5도살장>은 첫 문장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나를 사로잡았다. 그 시절 너무도 재미있게 읽은 탓에 다시 읽고 싶었지만 책은 이미 절판되어 구하기 어려웠다. 헌책방에도 재고가 없었다(이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던 차에 문학동네에서 개정판을 낸다는 소식을 들었다. 작년 겨울 즈음이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문학동네 사이트에 가서 언제 나오나 하고 여러 번 확인하며 기다렸다. 출간되었다는 알림을 받고 서점에 전화해서 재고를 확인하고 당장 달려가 구입해서 읽었다. <제5도살장>은 여전히 매력적이었고 빌리 필그램과 트라팔마도어인들은 읽는 내내 나를 시간에서 해방시켰다.


 이 소설은 빌리 필그램의 이야기와 화자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진행된다. 실제로 커트 보네거트는 세계 2차대전에 참가했다. 그 체험을 바탕으로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고 그는 전쟁을 흥미 위주로 다루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실제 전쟁은 영화 속에서 다뤄지는 것처럼 박진감 넘치지도 전우애로 가득하지도 않다. 수 많은 이재민, 죽어가는 어린이, 꿈을 포기하고 전선으로 끌려가는 젊은이들이 실제 전쟁이 만들어내는 부산물이다. 전쟁이 가져오는 세계는 영웅담으로 가득하지 않다. 모두가 패배할 뿐이다. 보드리야르가 지적했 듯 현대 전쟁에선 실제 영토보다 지도가 선행되며 수 많은 희생자를 내는 판단을 하는 사람들은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평화를 누린다. 커트 보네거트가 <제5도살장>에서 보여주는 전쟁은 지도 속 이야기가 아니다. 새빨간 피가 흐르고 꽁꽁 언 발가락을 잘라 내야하는 실제 세계다.


 시간에서 해방된 빌리 필그램은 자신의 삶 곳곳을 여행한다. 트라팔마도어인에게 시간은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공간적 대상이다. 그들에게 납치되었던 빌리 필그램도 외계인의 능력을 물려 받아 시간 여행을 자유로이 한다(이 설정은 비교적 근래에 개봉했던 영화 <컨택트>에 차용되었다. 헵타포드의 시간관은 트라팔마도어인과 흡사하다). 그 능력을 자유로이 쓸 수 없어 시간 이동이 무작위로 이뤄지긴 하지만 어찌되었든 빌리는 시간 여행자인 셈이다. 세계 2차대전에서 고생하다가 전쟁이 끝난 후 평화로움을 누리다가 납치된 시간으로 가기도 한다. 그는 더이상 죽지 않는다. 자신의 삶을 끊임없이 여행할 뿐이다. 단, 그는 그 순간을 고칠 순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고 역사를 수정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그의 삶이 축복으로만 보이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뭐 그런 거일 뿐이다. 이미 모든 일은 정해져있다(운명론적 시각이 인간이 무얼하든 소용이 없다는 자조로 이어질 수 있지만 영화 <컨택트>가 보여주었 듯 바꾸지 못할 상황을 일부러 다시 선택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법이다).


 그 끊임없는 순환 속에서 빌리는 전쟁을 다시 겪는다. 여러 번 반복한 상황이기에 어떻게 전개될지 아는 그는 어떤 끔찍한 사건도 담담히 받아들인다. 뭐 그런거지. 하지만 책을 읽는 우리는 그 상황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들일 수 없다. 소년 십자군이 해적들에게 속아 노예로 팔려 가거나 갓 스물살 된 청년들이 전쟁터에서 죽는 모습을 어찌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 전쟁터에서 죽은 이들의 텅빈 눈동자는 실재했다. 홀로코스트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도 이 지구에서 물리적 공간을 차지했던 존재들이다. 그 끔찍한 참상을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빌리를 보며 역설적으로 독자는 그 상황을 비극적으로 바라본다. 인간 취급도 못 받고 짐처럼 기차에 실려 가고 그 사이에서 얼어 죽기도 하는 모습은 너무도 안타깝다.


 전쟁은 일어나선 안 된다. 너무도 끔찍하기 때문이다. 몇몇 집단의 이익을 위해 일어난 전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그 이익과 전혀 관련이 없다. 전쟁 때 끌려갔던 위안부 할머니들부터 지뢰로 다리를 잃은 중동 소년까지. 그들이 전쟁을 원했을까. 그렇지 않다. 하지만 전쟁의 발톱은 그들을 할퀴고 상처주었다. 그 어떤 이유로도 전쟁을 정당화 할 수 없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


 <제5도살장> 같은 소설도 전쟁을 막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이 소설은 전쟁을 하지 말자고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는다. 절대 무언가를 가르치려는 소설이 아니다. 오히려 공상과학적인 요소도 많고 흥미로운 이야기다. 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내가 느꼈던 것 같은 감정을 느끼도록 해준다. 읽고나면 멍해진다.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는데 머릿속에 많은 생각을 불어 넣기 때문이다. 이게 바로 이야기의 힘이 아닐까.



노트1. 요즘은 커트 보니것이라고 많이 표기 하던데, 커트 보니것보다는 커트 보네거트가 더 마음에 든다. 운율이 맞아서 그럴까.


노트2. 커트 보네거트 작품은 대부분 절판되었다(번역된 책도 많지 않지만). 그의 소설이 많이 번역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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