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선생님
과학시간입니다.
요즘은 태양계에 대해 알아보고 있습니다.
"와!!! 행성 만든다."
과학 시간에 행성의 크기를 알아보기 위해 모형 행성을 직접 만들어 봅니다.
아이들은 교과서만으로 수업하는 것보다 훨씬 좋아합니다. 시작을 할 때는 여기 저기 좋아서 들썩입니다. 교과서 뒷면에 뜯어내야 하는 종이들도 많습니다. 각 행성 마다 4개의 조각들을 모두 뜯어내기만 해도 꽤 시간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큰일입니다. 처음에는 좋아하지만, 벌써부터 지쳐갑니다.
아이들은 참 다양합니다.
선생님 설명을 듣기도 전에 뜯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한 조각 뜯기도 전에 "찢어졌어요" 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아직 "어디 뜯어야 해요?" 묻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래도 어딥니까? 하기 싫어하는 아이가 없다는 것이!
시작하기 전에 단단히 일러둡니다.
이번 활동을 할 때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고 얘기해줍니다. 8개의 행성을 조립하기 위해서는 특별히 필요한 덕목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열정이요! 긍정이요! 성실이요! 유머요! ...."
"인내입니다."
"아!"
"4가지 인내가 필요합니다."
"네?"
"왜 그럴까요?"
"많아서요."
"잘 찢어져서요"
"잘 잃어버려서요"
마지막 한 개는 찾기가 어려운가 봅니다. 저 뒤에서 작은 목소리로 여자 아이가 말합니다.
"작아서 인내가 필요해요."
"네! 작은 행성은 조그만 조각을 조립하는데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해요."
조각이 많아서
조각이 잘 없어져서
조각이 잘 찢어져서
조각이 아주 작아서
인내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해주고, 모두다 끝까지 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줍니다.
아이들과 교실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가장 흔하게 보이는 모습들이 있습니다. 도화지에 선 하나 잘 못 그렸다고 "틀렸어요" 하며 하기 싫어합니다. 조금 실수해서 망가졌다고 못하겠다고 합니다. 친구들보다 조금 못한 거 같으면 손에 힘이 빠집니다. 마음이 힘들어집니다. 완성을 못합니다. 올해는 이런 아이들도 모두 힘내서 해내는 반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이미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합니다. 조각이 많지만 인내해서 한 고비 넘겼다고 합니다. 찢어졌지만, 테이프로 붙여서 붙였다고 합니다. 아주 작지만, 꺼이꺼이 잡아서 잘했다고 합니다. 사소한 찢어짐과 실수들은 인내하면서 해냅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조금 더 찢어지고, 조금 더 찢어지고, 더 찢어집니다. 애써 해놓은 것도 쓰러집니다. 아이들 표정은 점점 좋아지지 않습니다.
찢어짐이 많아질수록 인내도 바닥이 납니다. 처음에 인내하겠다고 단단히 마음 먹고 하지만, 인내가 바닥이 나면서 그만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어 집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인 거 같습니다. 조금씩 안된다고 할 때는 그래도 어떻게든 해볼려고 합니다. 하지만, 실패가 여러 번 되면 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고, 점 점 손을 놓게 되고, 아예 안하게 되는 상황이 됩니다. 아이들과 수업할 때 마다 아이들에게 이런 생각이 아이들의 마음에 먹구름처럼 번지게 되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이 살아갈 날들에는 이런 좌절들이 올 날이 있을 겁니다. 그럴 때마다 무기력으로 아예 하지 않는 상황이 되지 않는 것을 일 년 수업 중 한 번이라도 배우게 되길 소망해 봅니다. 행성의 크기를 배우는 시간에 행성보다도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배워보기를 바래봅니다.
그래서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완벽한 행성을 만드는 게 아닙니다. 행성의 크기를 비교하기 위해 좀 찢어졌지만, 너덜너덜하지만 크기를 알아볼 수 있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이프 좀 붙이고, 풀 좀 붙여서 완성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라구요.
그러다보면 완벽하지 않은 행성이 크기 비교하기에 더 만지기 좋고 수월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쉽게 되진 않습니다. 많은 격려가 필요합니다.
"괜찮아! 떨어져도 좀 붙이면 돼"
"괜찮아! 좀 삐뚫어져도 행성 모양이 나는구나!"
"괜찮아! 다 한 친구가 조금 도와줄거야"
"괜찮아! 힘들지만, 한 개만 더 하면 되겠구나!"
"다 돼 가는구나!"
"이제 마지막이구나!"
"조금 만 더"
"대단하다 너!"
"와! 쫌 삐뚫어져도 실망하지 않고, 해냈구나!"
"끝까지 하느라 고생했다"
"선생님! 저 해냈어요. 좀 이상하지만,"
"와! 이상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해 낸 게 중요한거야"
"좀 찢어지고 했지만, 끝까지 완성한 친구 일어나 보세요."
3명 빼고 모두 일어납니다.
살펴보니 3명도 완성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일어나지 않았나 봤더니 만들었는데, 한 두개가 찌그러져서 쓰러졌다고 합니다. 완성하기만 한 친구들은 일어나라고 했는데, 본인 스스로 만족이 안되는 듯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 기준이 높은 친구들은 다 했더라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본인이 인정해주지 않으니 제가 인정해주어야 할 차례입니다.
"쓰러져도 넌 다 완성한거야"
조금 틀린 그림도 어떻게든 완성해보고, 조금 모자란 성적들도 그 다음에 더 올려보고, 이미 실패로 얼룩진 인생도 그럼에도 살아보다 보면 그것이 더 좋은 밑거름이 되어 더 발전할 수 있는 힘이 될 수도 있겠지요? 더 발전하지는 않더라고, 그렇게라도 살아보면 사는 것 자체가 즐거울 수도 있지요.
아이들도 완벽하지 않으면 버리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보면서 성취감을 얻어가길 바래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도 되는구나!를 느껴보길 바래봅니다.
"도움을 주어서 고마운 친구가 있으면 말해볼까요?
"도영이요."
8명의 친구 이름이 불립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도중에 그만 하고 싶었는데, 도움을 받고 나니 다시 할 마음이 생겼다고 합니다.
힘들 때는 옆에서 살짝만 거들어줘도 혼자 할 수 있는 힘을 얻어가나 봅니다. 아이들 옆에서 저도 하나 배워봅니다. 티나지 않게 살짝 거들어주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