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린딜라 Mar 29. 2024

체념한 표정으로는

Life overtakes me

‘잠을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그 들개의 표정, 어딘가에서 본 듯한 그 표정은 뭐지?'


다큐멘터리 <체념증후군의 기록>이 생각났다. 주변의 상황이 너무나 끔찍해서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순간, 아이들에게 미스터리한 일이 벌어진다. 깊은 잠에 빠지는 것이다.


활발한 아이였던 7세 다리아. 공포스러웠던 자신의 나라를 가까스로 빠져나와 스웨덴으로 넘어와 이제 살았다고 안심했던 다리아는 난민신청이 거절됐고 추방될 것이라는 말을 듣게 된다. 처음엔 말을 안 하고 누워만 있다가 잘 먹지 않더니 아예 먹고 마시는 것을 중단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넷플릭스 <체념증후군의 기록> 한 장면 촬영

지난 20년 동안, 스웨덴 거주 난민 아동 수백 명이 망명절차를 진행하는 동안 비슷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혼수상태와 비슷한 상태에 빠지는 데 어떤 아이들은 그 기간이 수년동안 이어진다고 했다. 충격적이었다. 그런데 더 충격적인 사실은 다리아가 다시 깨어나는 과정이었다. 다리아의 가족은 끝내 난민신분이 인정되어 스웨덴 거주 허락을 받았다. 그 후 부모의 굳어진 표정은 밝아졌고, 판결문을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우리가 쫓겨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니 아이가 반응을 보인다. 엄마아빠의 목소리 톤에서 그 말이 진실이라는 것을 느낀 건지 불안감이 가득했던 방 안의 공기가 안도감과 희망으로 채워지니 아이가 차츰 깨어났다. 혼수상태에서 엄마아빠의 목소리 톤의 변화, 방 안 분위기의 변화까지 느낄 수 있는데 1년 넘게 잠을 잘 수 있다니 인간은 신비롭다.


아이를 다시 깨운 약은 '희망'이었다. 6개월 후 아이는 회복되어 다시 놀이터에서 뛰어놀고 자전거를 탄다.

넷플릭스 <체념증후군의 기록> 한 장면 촬영


'체념한 아이는 산송장이 될 수 있다'는 무서운 사례이다.


다리아는 경험으로 세상은 위험한 곳이라고 배웠다. 그래서 세상에서 물러나는 것이 내가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세상에서 도망하는 길이 잠이라고 믿었던 걸까? 학자들은 이러한 새로운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인간생명, 인생은 복잡하다. 온전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평범한 한 인간인 내가 과학자들이 말하는 인생이 무의미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말에 기운이 빠졌던 것은 사실여부를 떠나 그들의 톤에서 우리가 특히 아이들이 '어차피 인생에 의미도 없는데 뭐!‘ 하며 체념을 배울까 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멀쩡한 사람을 산송장으로 만들 수도 있으니까!


나는 8살에 바다에서 놀다 파도에 떠밀려 죽을 뻔한 기억이 있다. 나는 아직도 바다에 대한 공포가 있다. 그래서 바다에 들어가는 것을 꺼려했었다. 최근 '다중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기후변화, 글로벌 경기침체, 난민문제, 전염병, AI로 대체되는 일자리 등 불확실한 미래는 점점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이러한 세상이 지속되어 체념증후군을 앓았던 이 아이들이 20세, 30세, 40세가 되어 “Life overtakes me.” 삶은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고 느끼고 세상이라는 바다에서 또다시 깊은 잠을 선택해 버리는 건 아닐까! 그런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점점 늘어나서 지금의 암만큼 흔해지는 건 아닐까! 생각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누군가 분명하다고 말할 때, 생각의 길을 틀어, 다른 그림을 그려보라! 원하는 세상, 원하는 내 모습을 그려보라! 그것도 인간의 능력이다. 그러나 체념한 표정으로는 다른 그림을 그리기 어렵지 않겠어!


"분명한 것은 결코 분명하지 않다. 분명해 보이는 것마저도 그렇다. 아니, 분명해 보이는 것일수록 더 그렇다....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은 새로운 가능성으로 향하는 길을 열어준다."   [리미널씽킹中]

매거진의 이전글 걸어 다니는 고깃덩어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