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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말에 흔들리는가?

레몬그라스에게

by 그린딜라

말레이시아 곳곳을 여행하기 좋아하는 내가 감수해야 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모기에게 물려 얼룩덜룩해진 나의 가엾은 살갗. 안타깝게도 모기는 나를 너-무 좋아한다. 7년 전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때, 나는 모기들로부터 무차별 공격을 당했다. 그때 친구가 선물해 준 것이 레몬그라스 오일이었다. 현지에서 구하고 싶다면 동네 약국이나 토산품점에 가서 Citronella essantil oil 혹은 중국어로 시양마오요香茅油를 달라고 하면 된다. 그 후 어딜 가나 레몬그라스 에센셜오일로 만든 모기기피제는 나의 외출필수품. 그러나 모기들의 불시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특히 6월에 모기가 더 극성인 모양이다. 오늘 아침에도 8군데를 습격당했다.


오늘은 캄파에서 아침을 맞았다. 캄파는 중국 광둥지방에서 넘어온 중국인들의 후손들이 촌을 이루어 살아가고 있는 소도시이다. 그래서 광둥어가 이들의 일상어이다. "조우 싼(早晨)" 아침 산책길에 이방인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한 아주머니와 광둥어로 아침인사를 건넸다. 억양에서 현지인이 아닌걸 단박에 알아차리시고는 자연스레 몇 마디가 시작되었다. 남편은 돌아가시고 자녀들은 큰 도시로 나가고 혼자 살고 계신단다. 집 옆 공터에 카레잎(Curry leaf), 레몬그라스, 판단잎, 라임, 홀리 바질을 키우며 무료한 시간을 채워나가고 계셨다. 아주머니는 점심에 카레를 만들 거라며 레몬그라스와 카레잎을 따려던 참이라고 하셨다. 레몬그라스는 잘 자란다며 나에게도 몇 뿌리 뽑아줄 테니 집에 가서 키우라고 하셨다. 나는 못 이기는 척 마다하지 않았다.


레몬그라스는 이름 그대로 레몬향이 나는 풀이다. 줄기 부분을 사용한다. 이 풀의 시트로넬랄과 시트랄 성분이 레몬향을 내고 강력한 항균, 해열, 항염 효능이 있다. 모기는 시트랄 향을 싫어한다. 그래서 현지인들은 레몬그라스를 창가에 걸어두고, 레몬그라스 티를 자주 마신다. 모기를 떼어내고 싶다면 레몬그라스티를 자주 마시길 추천한다.

그나저나 나는 레몬그라스가 파뿌리 뽑듯이 쉽게 뽑힐 줄 알았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머리채 잡듯이 뿌리 부분에 가까운 줄기 한 자루를 두 손으로 온 힘을 다해 한참을 잡아당겼는데도 좀처럼 뽑히지 않는 게 아닌가! 미안한 마음에 괜찮다고 그만하시라고 했는데도 아주머니는 집에 들어가 삽을 가지고 나오셨다. 삽으로 옆구리를 깊숙이 찌른 후에야 겨우 몇 뿌리를 뽑을 수 있었다.


아주머니는 승리자의 미소를 지으며 "가져가서 심어봐." 나는 건네받으며 "아니, 만만히 봤는데 엄청 단단하게 박혀있네요!"


뿌듯한 마음으로 받아왔으나 어디다 심어야 한다? 우선 페트병을 잘라 레몬그라스뿌리를 물에 담가 놓고 한숨을 돌렸다. 뿌리가 잘린 레몬그라스 몇 개는 곧장 냄비에 넣고 뚜껑을 닫은 후 15분 끓여 한잔준비해 의자에 앉았다. 역시 금방 뽑아온 거라 향이 진하다. 이름 그대로 레몬의 상큼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그 맛을 음미하며 내 눈은 물병에 담긴 레몬그라스를 향해 있다.


'레몬그라스, 가냘프고 볼품없어서 만만하게 봤는데 너 엄청나게 단단한 아이구나!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 거야?‘


나의 내적 힘은 어느 정도 일까?


그럴듯한 말에 흔들흔들

상처 주는 말에 들썩들썩

내 마음은 비실비실


레몬그라스 너

볼품없어 만만히 봤는데

가냘파서 우습게 봤는데

아무리 잡아 뽑으려 해도

아무리 흔들어대도

땅을 꽉 움켜잡고 움쩍도 않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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