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 찐수다 4화
** 본 콘텐츠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에 주의하세요!**
오늘 수다 떨 콘텐츠는 테드 창 작가의 <당신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테드 창 작가는 SF소설 좋아하는 분이라면 좋아하실 작가입니다. 최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있다면>의 김초엽 작가가 유명세를 얻으며 한국 SF 소설이 각광받고 있는데요, SF소설 인기의 출발이 테드 창 작가라고 할 수 있겠네요.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SF소설이 받을 수 있는 모든 상을 받았습니다. SF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최고의 권위상 휴고상을 비롯해 네뷸러상, 로커스상, 스터전상 등등. (전 SF소설 분야에 상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상의 후광을 제외해도 책은 대단합니다. 2017년쯤 처음 이 소설을 읽었는데 그때의 충격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과학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 50% 정도만 이해했는데도 좋았어요. ‘이런 사람이 천재구나’ 싶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총 8편의 단편 소설로 이루어진 소설 모음집입니다. 여기서 종교학 찐따 J와 고전문학 찐따 K의 눈길을 사로잡은 단편 소설 두 개를 뽑아 내용을 준비했습니다. 각 분야 찐따 아니랄까봐 딱 각자의 전공에 맞는 이야기를 골랐는데요, 바로 지옥은 신의 부재와 네 인생의 이야기입니다. 두 찐따의 수다를 소개합니다.
‘악은 선의 결핍이다’라는 아우구스투스의 고백록이 떠오르는 제목입니다. 천사의 강림이라는 모티프가 최근 개봉한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요. 종교학 찐따 J가 푹 빠진 단편 소설 지옥은 신의 부재를 소개합니다.
천사의 강림이 있는 세계, 천사를 본 자는 앓던 병이 낫거나 혹은 그 빛에 눈을 잃기도 하는 세계가 배경. 주인공의 부인은 천사의 강림으로 목숨을 잃고 천국으로 간다. 주인공은 부인을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에 천국에 갈 방법을 고민한다. 우여곡절 끝에 천국에 갈 방법을 찾아 죽는데 주인공은 천국이 아닌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 이유는 누구도 알 수 없다. 작가는 ‘진정한 신앙이란 본디 이런 것이다’라며 소설을 마무리한다.
작가는 후기에서 <욥기>를 보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죠. 욥기는 ‘선한 사람에게 왜 고통받는가?’라는 신정론을 다루는 이야기입니다. 신은 선하고 전지전능한데 왜 세상에는 악한 일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거죠.
<욥기 간단 정리>
옛날 신에 대한 믿음이 좋고 부유한 욥이 살았다. 욥은 가족들과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과 사탄이 내기를 시작한다. 사탄은 욥을 보면서 과연 욥이 지금처럼 행복하지 않아도, 불행해도 신을 믿을까? 질문을 던진다. 그 말을 들은 신은 사탄이 가서 욥을 시험해보라 한다. 그렇게 욥은 하루아침에 가족과 건강과 재산을 잃고 고통에 휩싸인다. 고통받는 욥 앞에 여러 친구들이 나타나 고통의 원인을 놓고 논쟁한다. 누군가는 욥이 잘못해서 고통을 받는다 하고, 또 누군가는 더 큰 신의 뜻이 있는 거라 한다. 욥은 친구들의 말에 수긍하지 못한다.
하루는 신이 욥의 앞에 나타나 "나의 뜻을 모르면서 너는 왜 나를 탓하느냐?"고 묻는다. 욥은 신의 위대함을 깨닫고 고통의 이유 묻기를 멈추고, 신은 잃었던 가족과 재산을 다시 욥에게 돌려준다.
작가는 욥기에 의문을 던집니다. '죽은 가족이 살아나고 잃었던 재산을 되찾으면 욥이 느꼈던 고통은 사라지는 건가?, 아픔은 다 치유되는 건가?' 싶은 거죠. 그러면서 욥기가 '용기가 없었다'고 얘기합니다. 주제의식을 끝까지 밀고 가지 못했다구요. 사실 테드 창이 가진 이 의문, 즉 선한 욥은 왜 고통을 받았으며 회복되는 결말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는 선서를 연구하는 분들에게도 중요한 주제입니다.
작가는 이 단편 소설을 통해 질문에 대한 자신만의 대답을 내립니다. 소설은 욥기와 비슷한 도입과 전개를 가졌지만 결말이 전혀 다릅니다. 욥기의 보상이 소설에는 없습니다. 신의 존재와 사랑만 느끼면 불행에 대한 보상은 없어도 된다는 거죠.
종교학 찐따 J는 <지옥은 신의 부재>를 읽고 테드 창은 욥기를 비틀기 위해 소설을 쓰지 않았나, 싶었다고 합니다. 지옥에 가서 천국을 염원하는 게 아니라 지옥에서 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게 테드 창이 생각하는 신앙인 것 같다구요. 소설을 읽고 충격을 받아 10분 정도 천장을 바라봤다고 했습니다. (뭐 J는 워낙 충격을 자주 받아서 놀랄 일도 아니지만..) 평소 종교에 깊은 관심을 가져서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요.
또 이 소설의 묘미는 천사의 강림을 묘사하는 방법입니다. 천사의 강림이라고 하면 평화로울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는 천사의 강림에 불치병을 고치기도 하지만 또 누군가는 눈을 잃고, 돌을 맞아 죽습니다. 연상호 감독의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에서 천사의 강림이 소설과 똑같습니다. 이동진 평론가도 연상호 감독이 이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지 않았을까 싶었다고 해요.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는 "종교적 열장과 성스러움은 두려움과 관련있다"고 했습니다. 두려움과 위험함이 경외롭고 매혹적일 수 있다는 거죠. J는 천사의 강림을 보면서 딱 그 말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소설에서 천사가 두려우니까 사람들이 더 열심히 신을 믿게 되고, 천사의 강림을 본 사람들끼리 모이면서 신앙심이 깊어지기도 하니까요.
이렇듯 <지옥은 신의 부재>는 종교적 배경지식이 있으면 훨씬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 배경지식이 없는 자(저, K)와 있는 자(J)가 느끼는 감동의 스펙트럼이 다를 정도니까요. 개인적으로 소설보다 소설을 읽은 J의 반응이 더 재밌었습니다. 추가 설명을 들으니 더 잘 이해됐구요. 콘텐츠와 성서의 깊은 연관 관계를 다시 한 번 깨달은 시간이었습니다.
고전문학, 국문학과 찐따 K가 고른 소설입니다. 영화 <컨텍트>의 원작이기도 하죠. 언어를 통해 사고방식이 바뀐다는 설정의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 소개합니다.
어느 날 지구에 외계인 헵타포드가 찾아온다. 인간은 외계인이 지구에 온 이유와 체류 계획을 궁금해하지만, 그들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 인간들은 그들의 언어를 공부할 여러 학자를 모으기 시작하고 주인공 또한 이 그룹에 속해 헵타포드의 말을 공부한다. 주인공은 헵타포드의 말을 배우면서 그들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헵타포드가 갑자기 찾아왔던 것처럼 갑자기 떠난다. 주인공은 헵타포드와 헤어진 후에도 그들처럼 생각하며 세상을 살아간다.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외계인 '헵타포드'는 7개의 다리라는 그리스어입니다. 이는 그들의 생김새와 깊은 연관이 있는데요. 그들은 앞과 뒤가 구분되지 않아요. 눈이 여러 개 거든요. 인간은 눈이 달린 측면을 앞이라고 하잖아요. 헵타포느는 눈이 전후좌우 등 곳곳에 있어서 어디든 앞인 거죠.
이런 특징은 그들의 언어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이 전방이 없기 때문에, 어디든 앞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처음과 끝이 없이 어디서 시작해도 완성되는 언어를 사용합니다. 햅타포드는 두 개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하는 음성 언어(헵타포드A), 시각적인 문자 언어(헵타포드B). 음성언어 헵타포트 A는 어순의 없다는 겁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는 어순이 있습니다. 이걸 문법이라도 하죠. 우리나라는 "나는(주어) 밥을(목적어) 먹었다(서술어)"의 어순이라면 영어는 "I(주어) eat(동사) bread(목적어)"의 어순을 갖죠. 다들 조금씩 다르긴 해도 어쨌든 어순이 있습니다. 하지만 헵타포드A는 어순이 없습니다. "빵 먹는다 나, 나 먹는다 빵, 나 빵 먹는다" 뭐든 괜찮은 거죠. 이게 간단하게 세 단어만 가지고 얘기를 하면 쉬운데 문장이 길어진다고 생각해보세요. 어순이 없으면 (우리의 입장에서) 문장을 이해하기 정말 어려울 거예요.
문자언어 헵타포트B는 조금 더 복잡합니다. B는 2차원적 문법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문자는 1차원적 문법을 가집니다. 가로로 쓰거나 세로로 쓰거나 어쨌든 선만을 사용해요. X축과 Y축만 존재하는 거죠. 2차원은 선과 면으로 이루어집니다. X,Y축이 동시에 존재하는 거예요. 인터넷에서 자주 보이는 "가장 먼저 보이는 세 단어는?" 이런 거 생각하면 좀 이해가 쉬우려나요.
헵타포드의 A,B의 특징을 합쳐보면 이렇습니다. 어디서 시작해도 말이 되면서(어순 없음) 2차원 문자를 한번에 뿌려야 한다. 그렇다 보니 헵타포드들은 글의 처음과 끝을 모두 알고 있어야지, 설계도가 있어야지만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여기서 헵타포드와 인간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생깁니다. 헵타포드는 처음과 끝이 없기 때문에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시간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인과 관계도 중요하지 않게 돼요. 인과 관계라는 게 결국 처음과 끝이잖아요. 1이 있어서 2가 있고 그 다음에 3이 존재한다 식의 생각이 인과 관계입니다. 그런데 1-2-3이 필요없게 되면? 인과 관계도, 시간도 그들에게는 부질없어 집니다. 그 결과 우리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헵타포드는 미래를 알 수 있는 존재로 비춰집니다. 비유하자면 닥터 스트레인지 같은..? 아마 우리 인간은 그들을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그들의 세계관으로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헵타포드 세계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적입니다. (인간의 입장에서) 미래를 예측하는 그들에게 결과는 상관없어요. 주인공은 헵타포드의 말을 배우면서 그들처럼 사고하게 됩니다. 그리고 결과에 상관없이 목적 의식만 가지고, 헵타포드의 세계관으로 접하는 유일무이한 존재가 그녀의 딸입니다.
소설은 딸의 잉태와 탄생, 성장, 독립, 죽음을 모두 보여줍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딸의 삶과 미래를 보여주는 거죠. 딸을 낳아서 행복한 일만 있지 않을 거고 싸우기도 할 거고, 독립하고, 결국은 일찍 죽는다는 결정된 미래. 하지만 그걸 다 알면서도 주인공은 딸을 갖기로 선택합니다. 얼마나 착한 딸이 될 것인가? 얼마나 오래 살 것인가?라는 결과가 아닌 딸을 사랑하니 낳겠다라는 목적만을 중시한 결과인 거죠.
국어국문과를 나오고 기호학을 공부해 본 입장에서 이 소설은 너무 흥미로웠습니다. 소쉬르가 말하는 시니피앙(기표)와 시니피에(기의)가 바로 떠올랐어요. 기표로 기의가 바뀌다니..! 흥미진진했어요. '인간은 생각(시니피에)을 문자(시니피앙)으로 100% 표현할 수 없다, 그래서 항상 약간의 상실감과 근본적 우울을 갖는다'라는 라깡의 말도 생각났구요. J는 운명을 알면서도 그 길을 꿋꿋하게 걷는 주인공이 참 감동적이었다고 합니다.
별점 : ★★★★☆
한줄평 : 맛있는데 까기 귀찮은 꽃게 같은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