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드렁 찐수다 7화
일곱 번째 콘텐츠는 영화입니다. <셰이프오브워터>는 국내에 2018년 2월 개봉한 영화입니다. 아마 영화 좋아하는 분들은 제목이 익숙하실 텐데요, 2017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에 빛나는 영화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아카데미 수상 소식을 듣고 영화 개봉을 기다렸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제에서 상 받은 영화 기대하는 거.. 저만 그런 거 아니죠?)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비밀 실험실에서 일하는 언어장애를 지닌 청소부 엘라이자(샐리 호킨스)의 곁에는 수다스럽지만 믿음직한 동료 젤다(옥타비아 스펜서)와 서로를 보살펴주는 가난한 이웃집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가 있다.
어느 날 실험실에 온몸이 비늘로 덮인 괴생명체가 수조에 갇힌 채 들어오고, 엘라이자는 신비로운 그에게 이끌려 조금씩 다가가게 된다. 음악을 함께 들으며 서로 교감하는 모습을 목격한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는 그 생명체에게 지능 및 공감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실험실의 보안책임자인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는 그를 해부하여 우주 개발에 이용하려 한다. 이에 엘라이자는 그를 탈출시키기 위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
<셰이프 오브 워터>를 이야기하면서 감독을 빼놓을 수 없겠죠. <그래비티> 감독 알폰소 쿠아론, <버드맨> 감독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와 함께 멕시코 3대 명장으로 꼽히는 기예모로 델토르 감독입니다. 국내에서는 <헬보이>, <판의 미로> 등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그의 영화는 호러·판타지·동화 그 셋 어디 즈음에 위치합니다. 동화와 판타지는 그러려니 싶은데 호러가 함께 있으니 어딘가 어색하기도 합니다. 동화이지만 괴이한 생명체가 등장하고 결말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아플 정도로 현실적이기도 합니다. 그게 기예모로 감독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는 <판의 미로>를 참 재밌게 봤습니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전작과는 조금 다릅니다. 특유의 씁쓸함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묘하게 말랑말랑한 희망이 들어왔어요. 주제가 사랑이라서 그럴까요? 기예모로 특유의 씁쓸함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조금 아쉬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주인공과 주변 인물은 모두 소수자입니다. 언어 장애를 가진 주인공, 흑인 여성, 성소수자, 러시아 출신의 과학자 등등. 이들은 모두 1960년대 미국 사회에서 무시 받는 소수자입니다. 그런 소수자들이 힘을 합쳐 보란 듯이 주류 사회를 흔들어 놓습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연구소에 침입하여 아가미신을 데리고 나왔을 때, 연구소 보안 담당자는 아가미신을 빼돌린 자들이 특공대일 것이라 추측합니다. 아주 고도의 훈련을 받은 10명 이상의 특공대의 짓일 것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정체는 소수자 연대였어요. 주류는 소수자를 사람이 아닌 존재, 시야 밖의 인물로 취급합니다. 그러니 그들이 힘을 합쳐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하지 못하는 거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스트릭랜드는 상처를 치유하는 아가미신의 능력을 보고 “네가 신이구나” 말합니다. 스트릭랜드가 상상하는 신은 강자의 신, 파괴하는 신, 나아가 백인 남성의 신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진짜 신은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외모에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두 번째 수다거리에서 본 것처럼 이 영화는 소수자의 연대가 두드러지는 작품입니다. 사실 사랑을 빼도 전혀 문제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왜 영화에 굳이 사랑, 로맨스가 들어갔을까 궁금했습니다. 그 사랑을 굳이 섹슈얼한 장면까지 넣으면서 표현하거든요. 그 답은 감독 인터뷰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인터뷰 기록이 많아서 넘 좋았음) 감독은 인터뷰에서 다음의 이야기를 여러 번 언급합니다.
“기존의 동화는 사람이 아닌 존재를 사람으로 변신시킨다. 사람의 모습으로 두 주인공은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사랑을 사람 간의 교류로 너무 한정시키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이해하는 것,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상대가 조금 엉망일지라도 그걸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한 사람에게는 다채로운 모습이 있는데 다양한 모습을 무시하면서 하나의 이미지로 단정하는 것이 무섭다. 종이 다른 두 존재가 결합하는 게 최고의 소통이 아닐까.”
동화를 주요 소재로 활용하는 감독답게 기존 동화에 대한 통찰이 엿보이는 인터뷰입니다. 동화를 비틀고 싶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어요. 저는 이 인터뷰를 보면서 영화 <슈렉>이 떠올랐습니다. 슈렉도 괴물이 인간으로 변하여 공주와 결혼한다는 기존 동화의 공식을 비튼 작품이잖아요.
감독의 인터뷰는 영화의 제목이자 주요 소재인 ‘물’과 연관됩니다. 종교학자 엘리아데는 “물은 원천과 기원이며 모든 존재의 가능성의 모태이다. 물은 형태가 없는 것, 잠재적인 것의 원리로서 모든 우주의 토대이자 원초적 물질을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물과의 접촉은 재생을 포함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형태가 없다는 물의 특징은 모든 경계, 고정되고 딱딱한 것들과 반대됩니다. 영화 속 악당인 스트릭랜드의 곧은 곤봉, 아가미신이 갇힌 단단한 철문, 카드를 찍고 출입해야 하는 연구소의 구조의 정반대에 서 있죠. 아가미신과 엘라이자는 비가 내려서 바다로 흘러가는 물에 실려 세상의 경계에서 벗어납니다.
감독은 사랑 이야기라고 하지만, 영화를 보면 볼수록 다른 생각도 듭니다. 2018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이 영화는 완벽한 사랑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현실의 제약을 다 뛰어넘는 진실한 사랑 이야기라고요. 그런데 또 보니 다른 감상도 들었습니다. 주인공 엘라이자에게는 아가미신과의 만남이 진짜 사랑인 것 같은데, 아가미신도 사랑이었을까요?
아가미신은 엘라이자의 세계에서 전적으로 그녀에게 의지합니다. 물속에 살던 신이었으니 물 밖 세계에서 하루하루 죽어가는 건 당연한 일이겠죠. 엘라이자는 신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연구소에서 빼내고, 그를 바다로 돌려보내려 하고, (나중에는 살아나지만) 총을 맞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아가미신이 계속 챙김을 받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이야기가 끝나면서 상황은 변합니다. 이제 아가미신의 세상, 머나먼 아마존 바다에 엘라이자가 들어가요. 이게 쌍방 사랑이 되려면 그 뒤의 이야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덧붙여 엘라이자가 살던 현실 세상이 바뀌지 않고 둘이 바다로 떠나는 모습도 씁쓸했습니다. 현실에서 스트릭랜드로 대표되던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거나 둘의 사랑이 인정받는 게 아니라 엘라이자가 다른 세상으로 떠나버리니까요. 결국 묘하게 희망적이기는 하지만 결국 <판의 미로>의 결말과 비슷한 결말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이밖에도 영화 속 색감(초록색과 빨간색의 대비), 구두(소수자인 엘라이자가 유일하게 추구할 수 있는 욕구), 엘라이자가 살던 집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영화 <룻 이야기>에 숨겨진 의미 등등. 하나하나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