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들의 반란
점심시간을 넘긴 그녀의 배속이 급 허기지다. 스파게티를 해 먹을 요량으로 야채칸을 열어서 버섯을 들고 보니
쬐금 야채들이 엉망이다.
그녀가 처음 사 올 땐 분명 싱싱하고 싸서 욕심내고 이것저것 사 온 것인데... 누구에게 인지 모를 미안함이 드는 건 왜 인지. 아마 집에 돈 벌어다 주는 남편과 아깝게 버려 지는 야채들 때문....^^(착한 척~)
그녀도 욕먹을 시기가 왔나 보다.
요즘 자꾸 버려지는 야채들이 많아진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그녀 나름 알뜰하기도 하고 부지런도 했었는데, 부엌보다 컴퓨터에 들러붙어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냉장고에 야채들 관리가 안 되는 것 같다.
예전엔 애들이 음식이라도 남기기라도 하는 날은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의 예를 들어가며 습관처럼 아이들과 나누던 대화들이 무색해졌다.
"아프리카 애들은 먹을 게 없어서 굶고 있다는데 이렇게 남기면 어떻게 "
그럼 그녀에게 돌아오는 큰아이의 말이 가관이다.
"엄마 그 아이들을 위해서 남겼어요. 남긴 음식을 비행기로 보내주세요 ㅎㅎ."
"야~~~ 먹던걸 어떻게 보내, 그리고 비행기 값이 더나 간다."
"그러게요, 어머니 저희들에게 음식을 조금 씩만 적게 담아 주면 안 될까요"
큰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다.
조금만 신경 써서 적게 담으면 되었지만, 큰아이가 생각보다 말라서 많이 먹이려는 욕심에
음식을 많이 담는 편이었다.
그 녀석들은 어렸어도 엄마와 어머니를 상황에 따라 잘 활용해서 불렀다.
그녀에게 간곡한 것을 부탁하거나 아쉬울 때, 용서를 바랄 때 그들은 어머니라고 그녀를 부른다.
그녀 또한 아이들이 어머니라고 부르면 아이들을 섣부르게 대할 수 없었다.
그 아이들은 참으로 반듯하게 잘 컸다. 말도 관대하게 하고 또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다. 그런 건 누가 가르친다고 되는 것이 아닌 성품인 것 같다.(아들 자랑을... 팔푼이)
그런 큰아들이 군에 간 뒤부터 냉장고에서 야채들이 자꾸 시들어 나간다. 그녀 나름 쬐금은 핑계를 대본다.
이건 누구의 잘못인가?
냉장고에 이상이 생긴 걸까?
그런데 어디서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그녀는 갸웃거리며 말소리가 들리는 냉장고 문을 연다.
그녀가 야채실에 가만 귀 기울여 본다.
"야, 노란 파프리카! 이집 안주인 정말 이상하지 않니?"
"그러게 말이야, 우리를 사 온지가 일주일이 넘었잖아. 싱싱한 우리를 쭈그리고 만들 작정을 했나 봐"
"그럼~ 빨강 파프리카와 주황 파프리카, 너희들도 주인 여자가 요즘 야채들에게 소홀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래 요새 우리 야채칸을 거의 열지도 않잖아 뭘 먹고사는 거야"
"과일이 담긴 칸은 아침에는 드르럭 되더만"
"그리고 자기가 파프리카도 아니면서 노란색은 매일 왜 입고 다니지"
야채칸에서 크게 웃는 소리가 들린다.
"푸하하하 그러게..."
그녀가 야채실을 연다.
파프리카 셋이 입을 다물고 빤히 그녀를 쳐다본다.
"왜 ~하던 말 계속해봐. 이것들이.... "
"......................."
"내가 분명 들었거든 너희들이 한 말을 "
그녀는 노란 파프리카를 꺼내 본다.
"특히 너 날 보구 노란색 옷 입는 다고 놀렸지, 그리고 너 아직 멀쩡하구먼. "
깻잎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한다
"나를 봐 이젠 피부색이 까매지고 있어, 나 좀 어떻게 좀 해봐. 냉장고가 매일 나 구박해, 냉장고 속 더러워진다고."
그녀가 깻잎을 들어보니.... 깻잎이 변해가고 있다."너에겐 미안하다"
오이도 인상 찌 부리며 말한다.
"저도 어떻게 해줘요. 전 냉장고에 들어오면 안 되는데... 이젠 거의 탈진 상태예요. "
오이도 꺼낸다.
"아 ~미안하구나"
그녀는 굳게 결심한다.
'다음부터는..... 시장 쪽으로 다니지 말자.'
그녀가 다니는 시장은 마트보다도 야채가 싸고 많이 준다.
싸다 보니 그녀가 욕심내고 사지만, 먹지 않다 보니 싼 게 무슨 소용인가 , 마트에서 조금 더 비싸도 조금만 사는 게 더 났다. 꼭 돈을 아끼기보다는 버려지는 야채들이 아까워서 그런다.
그녀는 큰아들이 군에 간 다음부터는 저녁을 혼자 먹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그녀가 야채들을 사 오긴 했어도, 혼자 먹자고 다듬고 씻고 하면서 준비하게 되지 않는다. 그녀의 남편은 저녁을 먹고 오고, 작은 아들은 저녁시간과 맞지 않다고 먹고 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녀의 큰아들은 엄마 혼자 먹는다고 함께 와서 저녁 먹고 나가더만... 에구(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 애의 용돈 사정 때문에 먹고 간 경우가 많다. 하지만 엄마 혼자 먹으니 함께 먹고 간다고 말은 천연덕스럽게 하고 다녔다.)
그래도 그 말 때문에 그녀는 기분 좋아했었다.
오 마이 갓~~
야채가 말을 한다고 생각하니,
그 애들을 씻고 썰고 하는 것도 소름 끼치고, 먹는다고 생각하니 더 기절할 것 같다.
아주 오래전 그녀가 상추를 씻어놓고 쌈 싸 먹으려다, 통통한 애벌레가 상추에 붙어있는 것을 보고는
기절할 듯이 놀란 것도 사실이지만 한동안 상추 먹지 못했고 상추 씻을 때 고무장갑을 꼈었다는 전설이....
그리고 그 후로 상추를 씻을 땐 꼭 안경을 쓴다는 철칙을 세웠다.
양파김치 해보려고 양파 많이 사려했는데....쬐금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