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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산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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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갈 냥이 Aug 16. 2016

소설/산다는 건 7

예가체프를 마시는 날

민영이 좋아하는 아침 햇살이 부재중이고 창가로 우울함이 감도는 잿빛이 걸쳐져 있다. 창문을 열어보니 비가 내려 빨간 블록들이 다 젖었다. 비는 그쳤지만 여전히 우울한 하늘의 분위기는 민영의 기분도 함께 가라앉힌다. The Joy Of Life.... 는 언제나 좋다.


민영은 며칠 전 새로 사 온 도자기 드리퍼에 종이필터를 끼워 넣는다. 창밖으로 비가 또 내리기 시작했다.

오늘 민영은  3박자 커피믹스 대신 며칠 전 사온 커피 예가체프를 핸드드립 하려 한다. 오래간만에 솜씨 발휘를 하려니 잘 안된다. 민영이 3년 전 바리스타 교육을 수료하고부터는 가끔씩 핸드드립 한  커피맛을 즐기긴 하지만 워낙에 성격이 꼼꼼하지 못한 민영에게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땐 한참을 집중해야 한다. 그래도 그녀는 이렇게 비 오는 날은 나름의 솜씨 발휘를 해서 기분 낸다.


에티오피아의 귀부인이여!

그대의 향기

나를 유혹하니

어찌 그대를 향해 코와 입을 대지 않으리....

그대를 향하는

섬섬옥수 너무도 고와라

한잔

한잔을 두고

돌아서니,

아끼는 그대를 아쉬워함을 나의 흑심인가

자꾸만

입가에 그대가 맴도니....


이 마음...


처음으로 예가체프를 핸드드립 해서 뜸 들인 커피를 마시던 날, 민영이 예가체프의 향과 맛 그리고 여주인이 드립 하는 자태, 모든 것에 감동받았었다.  

그날 드립 포터를 들고 꼼꼼히 뜸 들이던 커피숍 여주인을 떠올려본다.  흰 손가락 그리고  예가체프위로가늘게 떨어지는 물줄기 똑 똑 똑.... 뜸 들이는 것도 여러 방법이 있지만, 그 커피숍의 여주인은 점찍듯이 물을 부었었다. 민영은 그녀처럼 뜸 들이는 것은 하지 못하고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으로,  나선형으로 원을 그리며 물이 끊어지지 않고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물을 부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녀에게 쉬운 일은 아니다.  예가체프의 향이 집안 가득 곳곳으로 스민다. 민영의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번진다. 민영은 커피의 맛보다는 커피의 향을 더 좋아한다.

그녀는 한 손에는 커피가 든 머그잔과 다른 한 손엔 어제부터 읽기 시작한  <이성과 감성>을 들고 소파로 향했다. 꽃잎이 내 맘을 흔들고~ 꽃잎이 내 눈물 적시고~

책장을 넘기려 하는 데 민영의 핸드폰에서  정은지의 하늘바라기가 흐른다. 민영이 핸드폰 벨로 지정한 곡이다.

"응~~ 연우야 "

"너 오늘 시간 되지?  누룽지 백숙 먹으러 백운호수가자."

"뭐 ~비도 내리는데...."

"야 ~비 내리는 날 궁상맞게 집에 있으면 모해 ,  백숙 먹으러  가자. 내가 너희 아파트로 11시까지 갈게 준비하고 나와 있어."

민영이 시계를 보니 8시 30분이었다. 시간은 충분했다.

서울에 적응하기 위해 무던히 애쓰던 시간들을 돌이켜보며 민영이 예가체프를 한 모금 입에 댄다.


서울은 집들이 딱지 딱지 붙어있어서 어느 시골의 집들보다도 거리는 아주 가까운데  반해 사람과의 거리감은  거피 한잔하며 수다할 이가 없는  삭막한 곳이라 민영이  생각했다. 혼자라도 자신의 할 일을 하면서 지내면 된다고 생각정리는 한지 꽤 되었지만, 그래도 민영은 가끔 앞집 뒷집 커피 마시러 가고 싶었다.

현우의 직업상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살다가  뿌리를  내려 살게 된 곳이 서울이다.

민영이 살던 곳을 떠나 굳이 서울을 택한 것은 현우 시험이 붙으려면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이 좋다는 점쟁이의 말이 70% 이상을 차지했다. 대학 때 친구와 부산으로 무전여행을 떠나서  길거리에서 우연히 점을 본 적은 있었지만 점이라는 것을 믿지도 않고 보지도 않는 민영이었었는데.....

민영은 SMS센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사귀게 되었고 모임도 하게 되었지만 나이 들어 사람을 사귀는 것이 쉽지 않음을 민영은 알 수 있었다. 돌아서면 허 한 사람들.....

그래도 그녀는 적응해 가기 시작했다. 돌아서면 허한 마음을 남겨 주어도 함께 커피라도 마시고 헛헛한 웃음이라도 날릴 수 있는 그런 상황이  때론 그녀에게 필요했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너무 고지식해서 자기에게 맞는 친구만 찾으려 해서 일수도 있다. 그녀는 그것을 안다. 그녀의 내면을 채워줄 친구가 없다는 것을...

그녀의 외로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그녀 자신도 알 수가 없다.


연우는 약속시간보다 30분 전에 도착했다.

민영이 차에 타면서 연우의 차가 바뀐 것을 보고는 한마디 했다."아직은 더 탈만했잖아."

"그래도 그게 10년 탄 거야. 회사에서 남편 앞으로 차가 나와서 새로 장만했다."

"몇 년 전에 여러 차종들을 따져보고는  내가 갖고 싶었던 것이 아우디였는데.... 거금 들었겠네. "

 연우집 신발장이 그녀의 신발로 가득 채워져 있어도, 명품가방이 많아도, 명품 브랜드의 옷을 입어도, 그녀의 집이 고가의 아파트라도, 그녀를 부러워하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흰색 아우디를 운전하는 연우가 아주 많이 부러웠다. 민영의 복잡한 마음이라도 아는지 비가 더 쏟아지기 시작했다.

연우의 핸드폰이 울린다.

 "어머니, 네 서울에 오신다고요. 갑자기 그러면 안되는데요. 제가 그때 없어요."

" 왜? 어머니 오신대?"

"응 오늘 갑자기 서울 오신다고 하네. 난 이틀 뒤에 딸 하고 미국 다녀와야 하는데."

"뭐 그럼 오셔서 아들과 지내시면 되잖아"

"난 내가 없을 때 내 살림 누가 손대는 것 싫어"

연우가 시어머니에게  확실한 의사표시를 하는 태도가 부러우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는 민영이다.


백숙집에 도착하니 그들을 반기는 사람이 있었다. 민영은 처음 보는 얼굴이라 어색했지만 연우의 친구인 듯해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민영은 낯선 사람과 밥 먹는 것을 싫어한다. 썩 좋아하지 않는 백숙이지만 연우와 오랜만에 함께 하는 식사자리라 거절하지 않았는데 낯선 사람이 함께 하니 민영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연우의 친구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연우가 미안해하며 말을 건넨다.

"민영아 미안, 부득이하게.... "

"누군데"

"ㅎㅎ 고향 소꿉친구. 너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민지하고는 우연히 술을 함께한 적이 있다. "

"근데  너 친구들은 다~ 하나같이 능글맞아 보여서..."

"야 , 넌 외모를 은근 따지더라. 내 친구들은 다 능력 있는 애들이야.ㅎㅎ 하긴 니가 애들을 감당하기엔...."

"내가 언제 외모를 따졌어. 너 친구라는 사람들이 다 내 상식에서 벗어나서 그런 거지"

"알았어. 그래두 오늘은 쌀쌀 떨지 말구, 해맑게 있어줘. 잰 성격도 좋구 능력도 있고 아주 괜찮은  친구야. 재는 우리 신랑 회사와 관계있어서 어쩌다 보는데, 개인적으로 친한 친구는 아냐."

연우의 고향 친구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는데  친구들이 너무 심한 농담들을 해서 민영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연우가 친구 데리고 나온다고 하면 민영이 거절하거나 나가지 않았었는데 오늘은 친구랑 나온다는 말이 없었다. 그리고 둘만 있으면서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민영이였는데.....

민영은 말없이 닭백숙을 먹으면서 은근 짜증이 났다. 연우는 고향의 남자들은 다 만나고 다니냐고 바빠 보이는 것 같다. 도대체 그들과의 교류가 얼마나 깊이 있게 친분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우를 즐겁게 해주는 것은 민영이가 아니라 연우의 남자들인 것만큼은 확실하다.

자리로 돌아온 성진이는 의외로 민영이와 취향이 비슷한 데가 있었다. 성진이가 던지는 이야기들은 민영이 공감되는 이야기 들이 많았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입을 열수밖에 없는 자리가 있고 입을 다물고 아무 생각 없이 있게 되는 경우가 민영에게는 종종 있다. 오늘은 민영이 연우 보고 투덜댄 것이 미안할 정도로 많은 말을 했다. 성진이 백숙 값을 다 낸 상태라 연우가 2차 커피를 쏜다고 해서 민영 일행은 분위기 있어 보이는 커피숖으로 자리를 옮겼다.

커피 값이 장난 아니게 비싸다.

"세상에 말도 안 된다. 뭔.... 커피가 우리 점심 먹은 값보다 비싸냐"

"내가 너 그럴 줄 알고 내가 커피 산다고 한 거야. 너를 어쩌니..."
민영은 웃으면서 연우를 쳐다본다. 그리고 민영 자신이 커피 산다고 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커피값에 필요 이상의 돈을 쓰는 것은  별로 였다.

 성진의 회사는 연우의 남편회사  협력업체였다. 그래서 연우와의 관계가 친구이기 이전에 비즈니스 관계에 가까워 보인다. 연우는 편하게 대하는 듯한데 성진은 너무 성심성의껏 연우를 잘 모시는 듯해 보인다. 민영은 그 모습들이 낯설어 보이면서도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는 말이 그냥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는 생각을 한다. 다 엣말로 치부하기엔 현실적으로 너무 많은 것이 민영의 눈에 들어온다.

여러 가지의 복잡한 심사로 생각을 굴리고 있는 민영을 보며 연우가 말을 건넨다.

"민영아 너 담도암, 췌장암 결과는 어떻게 되었어"
"아 ~~ 다음 주에 병원 가서 찍어봐야 알아. 그날 결과를 보고 결정해야지"

"너는 무슨 남의 말하듯.."

" 집착하면 뭐하겠어, 결과보고 수술하던지 치료받던지 하면 되지.ㅎㅎ 이런 일 겪으니 알겠더라.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것을... 남 탓할 일 도 없고 그냥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다. 한점 후회 없이...ㅋㅋ 마음만 , 사실 잘 안돼"

" 초기 암이라 해도 요즘은 완치율도 높으니 걱정 마시고 심신을 편히 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성진이 긍정적인 말을 건넨다.

" 민영아 너 상태를 봐도 암이 아닐 확률이 더 클 것 같다. 걱정 붙들어 매고 , 자 그럼 비싼 커피 맛나게  마시자."

성진의 전화벨이 울린다. 성진이 전화받으러 자리를 뜬다.

"연우야 너 ~ 저 사람 너무 부리는 거 아니니."

"아니야, 재가 너랑 아침에 통화 끝내고 준비하는데 전화 왔어. 아무래도 이따 우리 신랑 만날 건가 봐. 나도 미국 간다고 하니까 ㅎㅎ 돈봉투를 주려나.... 얼마 주려나"

"야 , 그러다 무슨 일 생기면 어쩌려고"

"야 이지지 배야. 어차피 다 그래. 그리고 우리가 요구하는 것도 아니거든, 계속 유지를 잘 하기 위한 처신을 하는 거지. 가끔 쟤 와이프가 나 골프 접대도 한다."

"친구라면서..."

"야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 ㅋㅋ 다쳐 "

그때 성진이 온다. "아무래도 나는 먼저 가야겠다. 연우야 트렁크에 실었다. 민영 씨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연우랑 술 한잔해요"

"아 ~녜."

"알았어. 다음에 보자."

성진이 떠나고 연우가 민영을 보며 웃으며 말을 한다

"옴마~쟤가 웬일이니, 여자 보고 술을 다 하자고 하고, 민영이 너가 맘에 들었나."

"그냥 인사 치레지."

"아냐 재는 빈말 안 해. 그리고 성진이는 여자 보고 술 먹자고 하는 경우가 없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정말 너 뭘 받았어. 아무래도 일내겠다."

"야 ~참외 받았다. 참외~~ 쟤가 아침에 참외 가지고 온다고 해서 ㅎㅎㅎ"

"뭐야 아까는 돈봉투 이야기하고 골프 접대도 받는다고 하더니"
"ㅋㅋ 너한테 장난친 거야. 너는 순진한 데가 있어서 가끔은 놀려주고 싶거든 ㅋㅋ. 가끔 부부동반으로 골프는 치긴 해. 너도 이따 참외 가지고 가ㅋㅋㅋㅋㅋ."

배꼽 빠져라 웃어대는 연우를 민영은 예쁘게 흘겨본다.


연우가 두고 간 참외 색이 오늘따라 더욱 노랗고 예뻐 보인다. 연우는  딸과 함께 미국 가기 때문에 집에 먹을 사람 없다고 참외를 몇 개만 봉지에 담아 가고 박스채 민영이 집에 두고 갔다. 민영은 참외는 잘 사는 편이 아니었지만, 싱싱한 참외를 보니 군침이 돌았다.

"카톡"

진숙언니한테서 톡이 왔다.

"나 지금 심각하게 아프다"

"어디가요"

"마음이"

"또 왜 그려"

"너 혼자만 연우랑 백숙 먹고 와서 그런다 ㅎㅎ"

'어....어떻게 알았어요. 내가 여진이랑 백숙 먹으러 갔는지"

"ㅎㅎ 내가 친구랑 갔다가..ㅎㅎ 니들이 있길래 다른 곳으로 갔어"

"왜 어때서요. 혹시 우리가 알면 안 되는 사람과..."

"아니야 효석이랑 갔는데, 연우도 있고 어떤 남자도 있어서, 괜히 말들 만들까 봐 소"

"그런가, 친구인데 어때서 "

"ㅎㅎ 그러게, 낼 예술의 전당 그림 전시회 갔다 오자 "

"알써 , 낼 아침에 다시 통화하자"

톡을 접고 나서 민영은 진숙언니에게 무슨 일은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쓸데없이 밀려드는 걱정을 떨치며, 부엌 창가로 밀려오는 햇살을 향해 미소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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