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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행 Jun 14. 2024

외계인을 위한 지구 사용 설명서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이 지.구.는 말이죠…


수십만 광년을 여행하고, 수많은 은하를 지나 방금 이 멋진 지구에 도착한 외계인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시차가 수십만 광년이다 보니 밤낮이 뒤바뀌어 어질어질 하시겠지만, 이 지구… 특히 이곳에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해서 이 설명서를 전달합니다. 


먼저 지구에는 수많은 생명체가 있습니다. 움직이는 녀석은 동물, 가만히 있는 녀석은 식물이라 부르죠. 가만! 눈이 수백 개 달린 네모나고 커다란 저 녀석은 식물이 아닌 아파트라는 것인데, 주로 인간이라는 동물이 저곳에서 살아갑니다. 인간은 남자와 여자로 나눠져 있습니다. 여러분처럼 자웅동체라면 참 편할 텐데 서로 생각과 성격이 달라 아웅다웅 자주 다투고 싸우면서도 또 함께 살아갑니다. 이해가 잘 안 될 거예요.


우선 남자라는 동물은 호전적입니다. 태어나면서부터 머리를 사용할 줄 모르고, 몸만 사용합니다. 예전에는 저 몸에 붙어있는 팔과 다리로 뛰어다니며 사냥을 해서 먹을 것을 구했습니다. 지금은 팔에 달린 손가락만 깔딱거리며 사냥대신 돈이라는 것을 벌어먹고 삽니다. 아! 돈은 먹는 것이 아니고… 그저 모든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 정도로만 기억해 주세요. 여자라는 동물은 주로 몸보다는 머리를 사용합니다. 그래서 몸만 쓰는 남자를 조종할 줄 압니다. 그렇죠! 저 아파트라는 거주지의 실질적 지배자들예요. 이들은 나이가 들수록 더 강해집니다. 


아! 그렇다고 엄청나게 오래 사는 것은 아니고 겨우 백 년을 살지 못합니다. 백광년이라고 해봐야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인간을 아득바득합니다. 좀 더 살아보겠다고,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엄청 신경 쓰고 관리합니다. 요즘 이들의 관심은 바디 프로필입니다. 저 볼품없는 몸을 울퉁불퉁 만들어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며 자랑을 합니다. SNS는 인간들의 보잘것없는 네트워크인데 이곳에 사진을 올리고 다른 인간이 좋아요를 누르면 아주 기뻐합니다. 이런 인간을 이들은 관종이라 부릅니다. 


아! 저것은 회사라는 겁니다. 인간은 저곳에서 돈을 법니다. 그렇죠. 요즘은 남자, 여자 모두가 벌어야 이 지구에서 유기활동이 가능합니다. 이 동물은 인생의 대부분을 저기에서 보내야만 해요. 저 창가에 앉아있는 머리가 벗어지고 몸집이 큰 동물은 부장이라 불리는 빌런입니다. 일종에 감시자 같은 동물인데 인간들은 이들을 꼰대라고 부릅니다. 기억과 언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자꾸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만 반복합니다. 물론 저들도 그 위에 또 다른 감시자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아주 비생산적인 방법으로 번식하고 생산합니다. 개체분화한 작은 동물을 아이라도 부릅니다. 이 끔찍한 동물은 어렸을 적엔 끊임없이 울며 끊임없이 무언가를 요구합니다.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 금쪽이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이 생산한 작은 동물이 성체가 될 때까지 학원비와 등록금, 생활비를 몽땅 쏟아붓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또 다른 이름은 호구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생산한 작은 동물이 부장이라는 큰 동물이 되기를 바랍니다. 


원시적이고 보잘것없는 수준이지만 이 동물들도 상상이라는 것을 하며 예술이라는 것을 만듭니다. 이 지구에서 유일하게 예술을 한답시고 자부심도 제법입니다. 저 저주파로 웅얼거리는 것은 노래라고 합니다. BPM이 빠른 노래를 틀고, 번쩍거리는 빔을 쏘며 촉수처럼 달린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는 것은 춤이라 불리는 행위이고 이곳은 클럽이라는 곳입니다. 남자와 여자 동물은 이곳에서 도파민과 페로몬이라는 원시 화학 물질을 발산하며 서로의 짝을 찾기도 합니다. 


좀 더 비활동적인 인간은 그림과 글쓰기라는 비생산적인 활동은 하는데, 이들의 상상이 얼마나 쓸데없는지 고작 몇천 년도 가지 못합니다.  


자! 다음 설명은...


에? 뭐요? 정말 쓸데없는 우주생명체라구요? 

아.. 안 돼요… 쓸모없다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시키거나 우주개발 고속도로를 낸다고 지구를 밀어버리진 말아 주세요. 그것만은 사양입니다. 


우주에서 보면 우리는 또 어떤 외계인일까요? 

큰 오해가 없도록 '지구 사용 설명서'를 미리 써 놓아야겠습니다. 오늘 쓸데없는 지구 걱정입니다. 



P.S.

부푼 꿈을 안고 처음 광고회사에 입사한 친구들은 대략 3개월간 인턴으로 활동하며 회사의 분위기를 익혀 나갑니다. 


'아! 끝없는 야근에... 미친 팀장에... 지랄 맞은 광고주에... 이게 광고회사인가?' 


현실의 회사는 자신이 생각한 멋지고 이상적인 회사가 아닌지라, 가끔 폭파되거나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내 광고회사 힘들다 했잖아!


지구를 지켜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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