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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X Aug 02. 2024

꽃보다 삼겹살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치사하게 엄마 아빠만 고기 먹냐?


어라? 어떻게 알았지? 옷에 냄새라도 밴 건가? 안 들키게 페브리지라도 뿌리고 왔어야 했는데… 토요일 저녁, 방에서 공부를 하는지 누워있는지 모를 고등학생 딸을 두고 짝꿍과 저녁을 먹고 들어오자 문 앞에서 도끼눈의 딸이 말을 겁니다.


‘너는 우리보다 오래 살 거잖아! 그러니 우리가 더 맛난 거 먹을 거다! 어쩔래?’


부아가 치밀었는지…


‘아니…다른 집 엄마 아빠는 딸자식 받드느라 정신없는데 너무 한 거 아냐?

무슨 엄마 아빠가 이러냐?’


아.. 그런가?


다른 집 사정이야 알 바 아니니 모르겠지만 우리는 늘 이런 상황이 일상입니다. 우리가 먼저입니다. 좋은 것, 맛있는 것, 보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후순위가 늘 딸아이다 보니 이 날은 억울했던 모양입니다. 그렇게 억울하면 네가 먼저 부모로 태어나던가…


사실 그렇게 천륜을 저버린 극악무도한! 9시 뉴스에나 나올만한 못된 부모는 아닙니다만… 이건 분명 나름의 철학입니다. 너는 우리보다 오래오래 살 거니까, 빨리 죽을 엄마 아빠는 그래서 더 좋은 거, 맛난 거 먹고 마시고 놀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아이야 좋은 거, 맛난 거 더 먹고 마실 날이 앞으로도 우리보다 더 많을 테니 말이죠. 그리고 그래야 아이도 나중에 자식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것이라는 아주 큰 그림이랄까요. 어쨌든.


혹시 이런 경험 있으신가요?


부모님은 만나고 오는 길은 늘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세월에 어느새 노인이 돼버린 부모를 보면 한없이 아리고 속상합니다.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좋은 것, 맛있는 것, 보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 다 해보지도 못하고 자식만 바라보고 산 부모입니다. 이제 홀로 되신 노모를 보면 더 그렇습니다. 


무겁고 아픈 마음은 꼭 늙어버린 부모의 모습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그럼 왜? 왜지? 왜 이렇게 뜻 모를 아픔의 쓰나미가 몰려오는 거지? 왜 죄스럽지? 나만 그런가? 우리만 그런가? 


모든 부모는 모두 자식바라기입니다. 


내 자식 갓난아이땐 길가에 유모차만 보이고, 유치원생일 때 노란 승합차만 보이고, 초등학교 다닐 땐 학교 앞 문방구에서 게임하는 아이만 보이고, 중학생땐 교복만 보이고, 고등학생땐 학원과 독서실만 보이고 대학생 땐 연애하는 커플만 보이고 군대 가니 뉴스에 군인들만 보인다고 합니다. 


다 큰 자식이지만 군대 가면 군대 가서 걱정, 졸업하면 취업 못해서 걱정, 취업하면 결혼 못해서 걱정, 결혼하면 아이 안 낳아서 걱정, 아이 낳으면 또 둘째 걱정, 걱정, 걱정... 비 오면 비 와서 눈 오면 눈 와서 더우면 더워서 추우면 추워서 자식 걱정만 하다 세월 다 가고 늙어버린 부모입니다. 


그러니 늘 고향집에서 올라오는 길은 마음이 쓰리고 아파옵니다. 시골길은 눈물 로드입니다. 죄스럽습니다. 또 나 살기 바쁘니 뭐 해드릴 수도 없고 그래서 또 또 슬퍼집니다. 일방적으로 사랑만 받았는데 되갚을 자신이 없습니다. 마음에 부채만 잔뜩 지고 파산 직전이니 언제나 슬플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무슨 카드론이나 무담보 대출이라도 있어서 그 빚을 갚아줬으면 좋겠는데 세상에 그런 대부업은 찾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짝꿍과 꿍꿍이입니다. 우리 딸은 엄마 아빠한테 마음에 부채 없는 깨끗한 우량 성인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 부모님은  '지행아 너만 잘 먹고 잘 살면 돼!' 했지  '니 자식을 위해 좋은 것, 맛있는 것은 다 희생하렴... 이  엄마 아빠는 그게 행복이란다' 하지 않았습니다. 자식한테 대물림하지 않으렵니다. 그래서 딸도 어른이 되고 부모가 되더라도 자식 바라보지 말고 엄마 아빠처럼 혼자 잘 먹고 잘 살았으면 좋습니다. 손주 따위 관심 없습니다. 


그리고 먼 훗날 우리 부부가 꼬부랑 늙수그레 노인네가 되어 딸아이가 우리를 만나고 가는 날 슬퍼하지도 마음 아파하지도 않기를 희망합니다. 엄마, 아빠 참 잘 살다 갔네. 나도 잘 살아야지! 이런 아주 이기적인 마음가짐을 희망합니다. 


아! 그러기엔 아직 멀었을까요? 사람 앞은 모를 일이잖아요…그리고 삼.겹.살.은 짝꿍과 둘만 몰래 먹는 게 제일 맛있습니다.



P.S.

광고 기획팀 전체 회식인데 지들끼리만 먹으러 갔습니다. 아! 마음 상하네요!



image : soban.ktow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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