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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OX Jul 26. 2024

그는 오늘만 살지만 그녀는 오전만 산다

: 쓸데없이 재미있게 살아볼게


‘니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 

영화 <아저씨>의 주인공 원빈이 악당에게 복수를 다짐하며 전화를 겁니다. 


‘오.늘.만. 산다’


삶에 대한 기대가 없기에 내일 따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전직 특수요원의 암울하고 비장한 말입니다. 


‘아몰랑.. 다 모르겠고 난 그냥 오늘만 살고 죽을란다.’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으로 더 이상 잃은 것도 없고 희망도 없는 막다른 인생. 살고 싶은 의지도, 살아갈 힘도 없는 주인공이 던지는 외마디 절규입니다. 사실, 이 비장한 말이 내 심장의 좌심방과 우심방에 꽂혔던 이유는 희망 없이 그저 '오늘만 산다'가 아닌 '내일 말고 오늘만 즐.겁.게. 살란다.'는 바람 때문입니다. 원빈의 절규에는 반대합니다. 그렇게 폼나게 머리를 자르는 모습도 꼴 보기 싫습니다. 아! 물론 원빈이 잘생겨서는 시샘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뭐 그 정도는 흔한 얼굴이잖아요. 동네 어귀마다 다 있는 얼굴입니다. 


2018년 겨울 급작스럽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허망한 죽음였습니다. 지방소재 작은 종합병원에서 심장스텐트 시술 도중 돌아가신 겁니다. 명백한 의료사고였습니다. 책임을 물을 수도 있었지만 그 지난한 공방이 억울하게 돌아가신 아버지를 다시 살려내지 못하기에 더는 책임을 묻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연로한 어머니께 더 큰 아픔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가슴.. 아니 몸 전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습니다.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해 봄엔 30년 친구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녀석 또한 급작스러운 암 전이로 인해 선고 2주 만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아버지의 빈소를 함께 지켜준 친구입니다. 죽음은 준비를 기다리지 않습니다. 


가까운 사람들이 연이은 죽음을 접하니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생겼습니다. 

‘열심히 산다! 치열하게 산다! 잘 산다! 돈 많이 벌며 산다! 이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개 풀 뜯는 소리다.’ 


내일의 시간이 운 좋게 내게 주어질 수도 있지만 그 내일 떠오르는 해를 못 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게 또 인생이니 말이죠. 그래서 <아저씨>의 원빈보다는 좀 더 즐겁게 살아보려 합니다. 


신나는 일 없어도 신나게 놀다 보면 진짜 신나 집니다. 내일 따위 고민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바로 이 순간에 충실히 놀면 되는 겁니다. 운 좋게 내일이 주어진다면 또 내일만 살면 그만입니다. '잘'사는 하루가 아닌 '즐겁게'사는 그런 하루하루가 모이고 모여 인테그랄로 쌓으면 또 그게 인생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 문과지만 이과의 쓸모가 철학이 되는 순간입니다. 매 순간 각 분절이 축적되는 게 삶이니까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조르바는 자신을 고용한 가방끈 긴 젊은 고용주에게 말합니다. 


‘두목… 나는 말요… 금방 죽을 것처럼 삽니다. 산다는 게 이런 것 아닙니까? 죽기 전에 즐겨야죠! 서둘러야죠! 나는 매 순간 죽음을 생각합니다. 어제 일어난 일은 생각 안 합니다. 내일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도 않아요.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지난날을 반성하고 내일을 준비해라… 그래야 남들보다 돈 많이 벌고 성공한다 이런 뻔한 자기계발적 스테로이드 타입의 이야기보다 어제와 내일 사이에 있는 오늘만 즐겁게 살겠다는 그의 말이 더 와닿습니다. 1000권의 자기계발서보다, 유명 TV 강사의 말보다 더 끌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사냐구요?

한가한 오후라면 버스정거장에 갑니다. 무슨 계획이 있는 건 아닙니다. 두 번째 오는 버스를 타고 10번째 정류장에 내려 제일 먼저 보이는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를 합니다. 남들이 보면 정신 나갔다고 합니다. 점심시간 편의점에 들어가 캔 하이볼 한잔 꿀꺽합니다. 오후가 즐겁고 퇴근시간이 금방 옵니다. 잠자는 짝꿍의 오른쪽 발톱에만 페디큐어를 발라 놓습니다. 짝꿍의 오른쪽 새끼발가락이 참 고와 보입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만 삽니다…만…, 모아둔 돈도 없고, 어려운 경기에 망해가는 광고회사를 심폐소생시킬 방법에 찾지 못해 등골에 얼음덩어리 굴러가듯 서늘할 때도 있습니다. 내일만 바라보며 살았던 '노동총량'을 다 채웠으니 이제 좀 오늘만 살아볼까 합니다. 


오늘만 더 살겠다고 회사 접을까 말까 이 궁리 저 궁리 고민을 할 때마다 그녀가 응원의 말을 집어던집니다.


‘오빠! 무슨 걱정이야… 너무 걱정 마… 지금까지 잘 해왔잖아!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 양가 부모님 생활비랑 용돈 좀 드리고, 고등학생 딸 학원 4개 정도만 보내고…아 참! 오빠 요즘 노안에 오십견인가? 그래서 어깨로 못 들고… 무릎도 안 좋은데… 실손보험료 좀 내고, 자동차 팔고 걸어 다니면 되지. 은행 이자 7%면 행운의 숫자네… 올여름 70년 만에 폭염이라는데 전기세 나오면 얼마나 나오겠어? 너무 걱정 마! 아참… 오빠! 나 아르바이트 좀 할까? ’


아! 그녀는 오.전.만 살고 있었습니다. 



P.S.

놀고 싶어서 2015년부터 1년에 한 달은 휴가인 광고회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점점 망해가고 있습니다. 



image : familybritches.com




* 옛날부터 그린제이 님 그림을 좋아하는데, 그중 제일 좋아하는 글과 그림입니다. 

'신나는 일 없으면 어때요. 추다 보면 신나는 일 없어도 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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