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승처럼 일만 하다 죽으라고???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 <빠삐용>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앙리 샤리에르라는 사람의 자전적 소설이 바탕이다. 살인 누명은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은 주인공 빠삐용. 그는 억울하다. 분하다. 프랑스령 기아나의 악명 높은 감옥에 갇힐 사람은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쯤 난 파리의 카바레에서 놀고 있어야 해! 그런데 다른 놈이 그곳에 있고, 내가 이곳에 있다니!’
그러니 탈출할 수밖에! 어라? 그런데 이 사람 운도 복도 없다. 탈출을 밥 먹듯 하는데 밥 먹듯 다시 붙잡혀 밥 먹듯 독방행이다. 2년 독방, 5년 독방, 탈출할수록 독방의 마일리지는 쌓여만 간다. 원룸텔과 고시원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독방이란 곳이 원래 고통이다. 먹을 것도 햇빛도 없다. 그래서 그의 메인 요리는 언제나 바닥에 기어 다니는 벌레다. 그렇게 단백질 보충을 하던 어느 날, 비몽사몽 꿈을 꾼다.
멋진 모자와 슈트 차림의 빠삐용이 사막 한가운데를 홀로 걷는다. 신기루처럼 일렁이는 모래 지평선 너머 10여 명의 배심원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억울하다. 분하다. 억울함을 끌어모아 배심원들에게 호소한다.
‘나는 무죄요!’
‘아니 유죈데!’
‘왜요? 왜? 내 죄가 뭔데요?’
‘네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의 죄지’
‘그게 대체 뭐냐구요?’
‘인생을 낭비한 죄!’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 다시 사막으로 되돌아가며 혼잣말을 되뇔 뿐이다.
‘…그럼 유죄군요! 유죄… 유죄… 유죄’
토요명화였나? 주말의 명화였나? 어릴 적 TV에서 본 이 장면은 나이가 든 지금도 두고두고 머릿속에 또렷하다. 말하자면 내겐 ‘반려 무비씬’인 셈이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 삼수를 하면서 죄책감이 들었고, 취업이 안 될 때는 머리를 쥐어박으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회생활을 하며 나 보다 먼저 앞서 달려가는 사람들을 보았을 땐 나 스스로 유죄, 유죄를 외치며 살았다. 그렇게 사막에서 죄인으로 평생을 살았다. 어쩌면 단 한 번도 무죄라고 생각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억울하다. 분하다.
인생을 낭비한 죄는 대체 뭘까?
인생을 헛되이 보냈다는 걸까? 인생을 헛되이 보냈다는 기준은 그럼 또 뭐란 말인가? 남들처럼 돈 많이 벌고, 한강뷰 아파트에 외제차 없는 인생을 말하는 걸까? 무언가 결실을 맺어야 하는데 이루지 못했다는 걸까?
그것이 인생을 낭비한 진.짜. 죄라면 아마 난 명백한 유죄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변호하려 한다.
누구나 자기 인생을 자기 방식대로 살아간다. 내 기준은 이렇다. 나이 마흔에, 쉰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듣고 싶은 것을 듣고,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놀고 싶은 것을 놀 줄 아는 삶…그래서 죽는 날! 아! 참 잘 놀다간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인생이 ‘인생을 낭비하지 않은 삶’이라는 생각이다.
인생을 낭비한 죄는 공부만 하다가, 일만 하다가, 하고 싶은 거 한번 제대로 해보지도 못하고 쭈글쭈글, 쪼글쪼글 독 짓는 늙은이가 되는 삶이다.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면 자식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만을 바란다. 고통스럽게 참고 견디고 인내하는 삶을 살아라! 아가! 너는 커서 수도승이 되렴! 절대 이러지 않는다.
그렇다! 하고 싶은 것 못하고 평생 일만 한다면 그것이 바로 유죄다. 그러므로 인생을 낭비한 죄는 하고 싶은 거 못하고, 놀고 싶을 것 못 놀고 나이가 들어 후회와 함께 무덤에 들어가는 삶이다.
그러니 놀아야 한다. 뭐… 배부르고 한가한 소리라고?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그런 ‘인생’도 한 번쯤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싶다.
짝꿍과 나는 그런 이유로 놀 공간을 찾아 헤맸다. 모아둔 큰돈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놀고 싶었다.
기왕이면 사람들 많고 함께 어울려 놀기 좋은 아주 아주 물(?) 좋은 장소를 몇 달간 물색했다. 성수동에 뚝도시장이라는 곳에 월세 60만 원짜리 단독주택을 놓치고 후회도 했다. 서울숲 앞 사무실은 계약 당일 갑자기 임대료를 올리겠다고 해서 무산되기도 했다. SM 앞이라 실컷 연예인 좀 보려 했는데 말이다. 결국 돌고 돌아 20년간 생활한 강남의 어느 낡은 빌딩의 옥탑방을 계약했다. 이건 순전히 놀기 위한 모험이다.
한편으로 두렵다.
‘인생을 낭비한 죄’
나와 짝꿍이 해석을 잘못한 것인지도 모른다. 되돌릴 수 없는 막다른 길이면 어쩌지? 막다른 길을 ‘막장’이라 한다. 탄광에서 석탄을 캐기 위해 뚫어놓은 갱도의 막다는 길말이다.
그렇다면 나와 짝꿍이 앞으로 써 내려갈 드라마는 ‘막장 드라마’ 일 테다.
그처럼 흥미진진한 볼거리가 또 있을까?
인생… 다시 되돌아온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직 유무죄는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이제부터 신나게 놀아볼 생각이다.
인생을 낭비하며 일만 했던 지난날의 유죄를 뉘우치면서 말이다.
뽀로로 말이 백번 옳다. 노는 게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