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실’을 마주하는 모든 감정은 진실하다.
「시골 소녀들」 (1960/2024, 은행나무, 정소영 역),
「8월은 악마의 달」 (1965/2024, 민음사, 임슬애 역)).
에드나 오브라이언은 아일랜드의 작가로 엄격하고 종교적인 가정에서 성장하여,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학교에 다니며 가톨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표지의 작가 소개 중) 작가 자신을 모티브로 한 「시골 소녀들」(1960)과 「8월은 악마의 달」(1965)은 그녀의 초기 소설로, 억압적인 가톨릭 풍토를 향한 여성들의 저항을 가감 없는 내면적 감정 세계의 파동으로 다루고 있다.
아일랜드의 시골 마을, 아버지의 술과 폭력으로 어머니를 잃은 소녀 캐슬린은 친구인 바바와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진학한다. 총 5년의 기간 중 3년을 보낸 어느 날, 캐슬린과 바바는 일부러 문제를 일으켜 퇴학당하고, 도시인 더블린으로 옮겨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상실’ 한 후라, 그들은 더욱 자유분방하게 세상으로 나아가려 한다. 나이 많고 돈 많은 남자를 사귀고, 시골 동네에 사는 아버지뻘 되는 젠틀먼씨와 몰래 만나는 등. 하지만 이 역시 소녀들에게 또 다른 ‘상실’을 안기고, 그렇게 소녀들은 어른이 되어간다.
「8월은 악마의 달」은 전작인 「시골 소녀들」이 성장하여 어른이 되며 맞닥뜨리는 또 다른 ‘상실’을 이야기한다. 별거 중인 엘런은 아이와 남편이 여름휴가 차 캠핑을 간 사이, 파리의 휴양지 칸으로 휴가를 떠난다. 뜨거운 햇볕과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며, 엘런은 어릴 때부터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며 회개를 강요하던 끔찍했던 마그달렌 세탁소 시절을 회상하곤 몸서리친다( ※ 마그달렌 수용소라고도 부른다. 로마 가톨릭 주관으로 18세기부터 20세기 후반까지, ‘타락한 여자들’을 가둬두고 강제 노동을 시킨 곳이다. 1993년에 수용소 자리에서 여성 155명의 시신이 발견되어 큰 논란이 되었고, 2013년 아일랜드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 p38, 각주 참고). 엘런은 그동안의 모든 ‘상실’을 떨치려고 욕망을 향한다. 일탈의 부질없음에 욕지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사랑받으며 자기를 잊고 싶은 간절한 ‘위로’를 꿈꾼다. 하지만 엘런은 아들을 잃으며, ‘상실’의 세계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제 생의 여름이 지났음을 느낀다.
아일랜드는 국민의 대다수가 가톨릭신자로, 가톨릭이 교육, 문화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 결국 영향력은 권력이 되었고, 권력은 지배와 피지배, 선과 악 나아가 예배와 삶의 괴리를 확연하게 했을 뿐임을, 작가는 여성의 감정적 흐름을 통해 이야기한다. 당시의 정서로는, 가톨릭교회를 욕보이고 성적으로 문란하다 하여 작가의 소설은 금서로 지정되고 불태워지기도 하였다. 종교적 억압으로도 순결한 가정 논리로도 해소될 수 없었던, 여성들의 ‘상실감’은 가히 가부장적 사회 유지에 큰 걸림돌이 되었으리라.
여성의 불편한 생득적 조건에도, 행복과 불행, 좌절된 욕망과 상실까지 끌어안으려는 외롭고 절박하고 때때로 수치스러운 상황에 놓인 여자들의 감정적 진실은 시간을 훌쩍 넘어, 여전히 ‘상실’을 마주하는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