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와 학구열(2)

by 그루터기

이 장마철 한가운데 비단강 최고 수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는 별도의 기계장치나 시스템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기준은 오로지 눈대중이었다. 수위가 '기바위, 용바위, 영의정을 넘어섰는가'가 공식적인 잣대였다.

우리 고향에서 목재 나룻배로 비단강을 건너는 뱃길은 4개 노선이 있었다. 호탄, 윗 봉곡, 아랫 봉곡, 덜기기가 바로 그것이다. 수위가 일정한 수준까지 오르면 아랫 봉곡 노선을 제외하고 3곳은 일찍이 모두 폐쇄되었다. 오늘이 바로 그런 형편이 닥친 날이었다.

이제 비단강을 가로지르는 유일한 교통수단은 아랫 봉곡과 여의정에서 200여 미터 떨어진 미루나무 군락지를 오가는 뱃길밖에 없었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규모로 불어난 검붉은 흙탕물 급류에 나룻배는 아래로 떠밀려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양쪽 선착장이 달라졌다. 평소 선착장인 봉곡리 동네 앞쪽에서 한참이나 거슬러 올라간 강선대 아래에서 출발하여 윈당리 쪽에서 흘러내려 강과 합류하는 곳에 도착해야 했다. 승객을 내린 나룻배는 빈배로 다시 상류로 끌어올려졌다. 그래서 기바위에서 출발하여 용바위와 충돌을 잘 피한 다음 봉곡리 동네 앞에 겨우 닻을 내릴 수 있었다. 말하자면 평소 직선 운행 경로가 자연스럽게 사선으로 바뀌는 것이었다.


이외에 평소 나룻배의 운행 행태와 장마철의 그것은 확연하게 달라지는 점은 또 있었다. 평소 교대로 사공 일을 이어가던 배@식 배@식 두 형제가 모두 한꺼번에 출동했다. 비상사태에 대처하기 위함이었다. 훈련 상황이 아니라 실제 상황이었다. 이 두 사공 형제는 여름날 뜨거운 뙤약볕에 검게 그을린 피부에다 구릿빛 얼굴을 자랑했다. 게다가 울퉁불퉁한 이두박근 삼두박근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는 모습이 눈에 쉽게 들어왔다. 조끼 러닝 복장 덕분에 체력을 쏟아붓는 모습이 멀리서도 쉽게 지켜볼 수 있었다. 근육질 덩어리의 상체 실루엣이 가감 없이 드러났다.

6·25 전쟁 흥남부두 철수 당시 '메러디스 빅토리호'가 보다 많은 피난민을 태우려 했던 것을 방불케 했다. 앞으로 장대비가 얼마나 더 퍼부을지 몰랐다. 이후 나룻배가 한 번의 추가 운행이 가능할지 장담할 수 없었으니 이는 당연했다. 평소 적정 승선 인원은 그리 큰 의미가 없었다.

사공은 선단과 후미에 각각 1명씩 배치됐다. 이들은 운행코스를 결정하고 유사시에 대비하느라 빗방울보다 굵은 땀방울을 연속해서 떨구었다. 나룻배 좌우 양쪽엔 힘깨나 쓴다는 장정들 예닐곱이 질서 있게 자리를 잡았다. 냇가래로 강물을 계속해서 힘껏 뒤로 밀쳐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에 딱 들어맞았다. 중고생들은 물론 조무래기 꼬맹이들도 따라나섰다. 찌그러진 양재기나 박을 쪼개 만든 표주박을 손에 들었다. 나무 재질의 나룻배 이음새 틈으로 새어들어 배 안에 고인 검붉은 흙탕물을 퍼내는 데 젖 먹던 힘까지 보탰다. 나룻배 안은 빗방울과 땀방울이 뒤범벅이 되었다. 모두가 목숨을 건 사투였다.

강 건너 동네 친구들은 장마철에 갑자기 불어난 비단강 수위를 핑계로 등교를 접어도 별 문제가 없을 듯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배우기 위해 기를 쓰고 등굣길에 나서려고 나룻배에 올랐다. 이는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학구열 때문이었다.


이젠 이 마지막 메인 노선마저 작동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기록적인 폭우가 계속되었다. 이 정도면 친구들은 등교를 포기하고 보금자리에서 빈둥거려도 될 듯했다. 하지만 나룻배도 이 도강을 감당하지 못하는 마당에 오직 자신의 힘만으로 비단강을 건너는 친구가 딱 한 명이 눈에 띄었다. 평소 단련된 체격에다 다부진 몸집을 자랑하는 친구 명섭이가 있었다.


최근 모교 수영반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여 장래가 기대되는 친구였다. 명섭이는 변변한 수영팬티 하나 없이 낡은 반바지 하나만 걸치고 강을 가로지르기에 결연히 나섰다. 투명한 요소비료 비닐포대에 넣어 지푸라기로 꼭꼭 동여맨 책보를 크로스로 자신의 상체에 묶어냈다. 남보다 유달리 빠르고 스윙이 큰 '몸돌이 헤엄’ 실력을 발휘하여 감히 비단강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지켜보는 이들의 심장이 쫄깃쫄깃해졌다. 이엔 감히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체력이 바탕이 되었고, 학구열이 더해져 상승작용을 했다. 우리 모두는 인간 승리의 장면을 지켜보느라 손에 땀이 흥건해졌다.

이렇게 장맛비가 계속되는 동안 강 건너 친구들은 부득이 등교가 어려운 날이 많았다. 학교에선 이를 천재지변으로 보아 교장 재량으로 출석으로 인정했다. 그런데 이 중학교 설립자는 이때를 자신의 특유한 캐릭터를 내외에 과시하는 기회로 맘껏 활용했다. 교장 교감 교사도 아닌 호메이니로 불릴만했던 설립자는 이 장맛비 시즌에도 나룻배 선착장까지 나온 학생들만 출석으로 인정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방침을 세웠고 이를 줄곧 지켜냈다. 나룻배가 뜨지 못한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듣고 그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뒹군 친구들은 나중에 개근상을 받을 수 없었다.

"형님, 저희들은 2배 이상이나 되는 시간을 들여 돌고 돌아가는 방법으로 강을 건너지 않고 등교를 했지요. 그것도 어려워 부득이 학교에 가지 못한 경우엔 그래도 출석으로 인정받아 3년 개근상을 받았어요."

학구열이 남달랐던 말 그리 출신 한 후배의 최근 증언이었다.

결국 장마철은 친구들의 학구열을 시험하는 시즌이었다. 기록적으로 쏟아붓던 장대비도 우리 친구들의 불타는 학구열을 꺼뜨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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