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맛비와 학구열(1)

by 그루터기

"아이고, 이 많은 비를 맞아가며 먼 길 오느라 고생했다. 그런데 이걸 어쩌지, 이 비가 곧 그치지 않을 것 같네. 어서 집으로 다시 돌아가야겠어."


천신만고 끝에 불타는 학구열을 앞세워 교실 문을 들어서는 친구에게 담임 선생님이 일렀다. 이는 또 하나의 ‘청천벽력’이자 ‘도루아미타불’이었다.


내가 중학교 2학년 여름이었다. 장맛비가 시작된 지 벌써 일주일을 넘어서고 있었다. 매년 6월 말부터 7월 중하순까지 게릴라성 집중호우는 지속되었다. 비단강 상류가 내 고향인 이곳은 해마다 장마철이 찾아오면 학교 학사 일정이 제대로 굴러가지 못했다. 검붉은 흙탕물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장마철 한가운데 여러 가지 진풍경이 연례행사처럼 벌어졌다.


비단강 건너에 사는 친구들도 위험을 무릅쓰고 나룻배 신세를 져서 등교할 수 있는 날은 정상수업에 별문제가 없었다. 3개 초등학교 출신 친구들이 모인 중학교는 비단강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강 건너 동네 친구들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등교를 하지 못하는 날이 길게는 도합 10일 내외나 되었다. '강 건너 동네'란 사실상 어찌 보면 상대적인 개념이었다. 하지만 중학교 소재지를 기준으로 따지자면 그 구분이 명확해졌고 학교 수업에 제대로 참여할 수 있느냐를 놓고 보면 더욱 그랬다. 등교 가능 여부가 장맛비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가는 곳이 강 건너 동네였다.

비단강 상류인 강 건너 동네는 다시 크게 두 개 권역으로 나뉘었다. 상류 쪽은 주로 천태초교 출신들이 사는 곳으로 호탄리, 누교리, 명덕리가 이에 해당했다. 반면 조금 아래 하류 쪽엔 양산초교 출신 거주지인 봉곡리, 구강초교 출신인 죽산리, 말그리가 섞여 있었다.

지금처럼 중학교 후문 쪽에서 강선대 입구 쪽으로 하늘을 찌르듯이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콘크리트 다리가 없던 시절이었다. 이 커다란 다리가 들어서기 전 천태 쪽은 잠수교가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이도 우리가 중학교를 졸업한 이후였다.

그래서 장맛비가 계속되면 강 건너 친구들은 목숨을 걸고 나룻배의 신세를 져야만 강을 건너 교실문을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나룻배의 역량으로 감당이 되지 않을 정도로 비단강 수위가 오르면 아무리 학구열이 넘치는 친구라도 등교를 포기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장마철이 아닌 평시에도 나룻배로 두 번이나 강을 건너야 등교가 가능한 곳도 있었다. 면 단위 행정구역을 달리하는 말그리에 사는 친구들이 그들이었다. 비단강 줄기가 말 그대로 ‘구절양장’이라는 말처럼 꾸불꾸불하여 생긴 기이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이 친구들은 아예 강줄기를 계속 타고 걷는 특정한 경로를 택하면 강물을 한 번도 건너지 않고 학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는 작은 아이러니의 하나였다.


하지만 이렇게 나룻배의 신세를 한 번도 지지 않고 등교를 하자면 엄청난 수고와 대가를 치러야 했다. 두 번이나 배를 이용하여 강을 건너 학교에 도착하는 거리의 두 배 이상의 다리품을 팔아야 했다. 양강면 마포리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뒤편 야산을 넘어 우회 통과하여야 겨우 모교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엄청난 폭우로 나룻배도 거동을 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사태에도 학구열에 불타는 일부 친구들이 굵은 빗줄기를 뚫고 교실로 들어서던 순간이었다. 이후 더 많은 장대비가 예고되어 있음을 이유로 학교 측은 이 친구들이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귀가시켰다. 강물의 수위가 더 높아지면 아예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으니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강을 건너지 않고 등교할 수 있는 동네에 친인척을 둔 친구들은 자신의 친인척집에서 하루 이틀 저녁 신세를 지기도 했다. 그러지 못한 친구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가지 못하고 여의정을 임시 숙소로 정했다. 몇 권의 책을 포개어 베개로 갈음했고 여벌의 옷에 이불의 역할을 맡겼다.


강을 건널 일이 없이 등교할 수 있었던 운 좋은 친구들은 면소재지 등 몇 개 부락 학생들로 전체 인원 대비 그 비중은 70%에 육박했다. 하지만 천재지변인 장맛비로 강을 건너지 못하여 등교를 할 수 없는 친구들 비중이 30%나 되다 보니 정상적인 수업의 진행은 어려웠다.


그저 오전 4교시 단축수업으로 학사일정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과목마다 진도를 뽑을 수가 없었다. 결국 4교시 내내 자습으로 메꾸었다. 말이 자습이지 공부와는 거리가 먼 잡담이나 장난을 치는 것이 대세였다. 정상적인 진도를 뽑는 정규수업 시간과는 달리 선생님도 그저 못 본 척하고 넘기기 일쑤였다.

강을 건너지 않고 등교하는 친구들은 일주일 모두를 오전 수업만으로 갈음하다 보니 하루하루가 그저 토요일과 다름이 없었다. 이러니 대부분의 친구들은 장맛비가 그치지 않고 계속 이어지기를 내심 바랬다. 하루도 끊어지지 않고 일주일 내내 집중호우가 지속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비단강 수위가 나룻배를 띄울 수 있는 수준으로 떨어지면 정상 수업일이 중간중간 끼어들 수 있었다.

집중호우가 쉬어가는 구간 중 작은 개울엔 일시적으로 수위가 낮은 맑은 물이 흐르기도 했다. 우리는 등굣길에 멀쩡한 공책 한 장을 부우욱 찢어냈다. 그래서 종이배를 접어 흐르는 개울물에 띄우고 이 배의 속도에 발맞추어 등굣길을 이어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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