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그루터기 Mar 22. 2024

시 배달 서비스(2편 완)

                          

시배달서비스 작업흐름도 결코 간단하지는 않다. 먼저 내가 보유 중인 종이책 시집을 가장 기본적인 텍스트로 삼아 눈에 들어온 작품을 찾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 다음 이 작품을 포털사이트에서 검색한다, 이어 이를 편집하고 저장해 두는 것이다. 그런데 이엔 또 일정한 검증이 필요하다. 내가 전에 구독자들에게 한 번이라도 보낸 적이 있는 작품이거나 아니면 누군가로부터 이미 받은 작품을 일단 걸러내야 한다. 여러 개의 단톡방에 이미 올라 있는 작품이라서 내 구독자에게 이미 노출되었을법한 작품도 덜어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엄선한 시 이외에 때론 내 글을 가끔 슬쩍 끼워 넣어 배달하기도 한다.   

  

발송대상자와 발송시각도 잘 골라야 함은 물론이다. 이미 지면에 발표된 시이지만 만의 하나 미투의 소지가 있는 예민한 작품은 여성회원에게 발송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세웠다. 주요 독자는 고향친구, 고교 대학동기, 회사 선후배로 구성되었다. 너무 이르거나 늦은 시각엔 발송을 삼갈 수밖에 없다. 단체톡방의 배달은 자제하기로 했다. 여러 가지 예상치 못한 설화에 휩쓸릴 가능성이 개인톡보다 훨씬 높아 보였다. 단체톡방이 겸상이라면 개인톡은 독상을 받는 것으로 보였다. 독자들로하여금 자신들이 보다 대접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최종 낙점한 작품을 저장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면 별 문제가 없을듯하다. 그런데 이 정도에서 작업을 마무리하기란 쉽지가 않다. 옛날 학창 시절 영어 단어 공부를 할 때 방식을 떠올려 보았다. 종이책 사전을 뒤적여 특정 단어를 찾아내선 유사어 반의어는 물론 명사, 형용사, 부사, 동사 등 각 품사의 단어를 살피고 동사의 경우엔 원형 과거형 과거분사형 등을 두루 익히고자 하는 패턴에 딱 맞았다.  

    

하나의 작품만을 발굴해서 저장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특정 시 인의 대표작등 다른 작품, 같은 테마의 다른 시인의 작품을 연이어 검색해 발굴하다 보면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게 된다. 이러다 보면 나는 미로에 빠진다. 맨 처음 발을 들여놓았던 입구를 찾아내어 작업을 종료하고 그만 빠져나와야 함에도 들어온 입구를 찾아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미로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입구엔 들어선 날은 하루에도 여러 번 늪에 빠지곤 한다.  

    

이 시인의 또 다른 이렇게 좋은 작품이 있었어, 아니 이와 같은 테마에 관한 다른 시인의 좋은 작품도 있었네...’

라고 혼잣말을 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금맥을 새로이 발견하여 계속 채굴작업에 몰입한 나머지 철수할 최초의 입구를 잃어버리고 갱도에 갇힌 신세가 된 광부에 다름이 아니다.      

이러다 보면 이 시배달서비스에 쏟아붓는 시간은 엄청나게 늘어나게 마련이다. 주객이 전도되는 꼴이 되어버린다. 게다가 점입가경이다. 이제껏 미처 알지 못했던 훌륭 한 시인의 좋은 작품을 만나면 종이책을 갖고 싶은 무모한 욕심마저 발동된다. 이른바고비용 저효율로 다시 돌아갈 우려마저 있다

       

내 스마트폰 공간엔  구독자들에게 출격명령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엄선된 좋은 시가 최소한 3개월분이 항상 장착되어 있다. 여기서 군수물자 비상식량 산업필수 원자재등 예비물량을 항상 비축해야 는 것이 떠올랐다. 화물차운행에 꼭 필요한 요소수 확보가 화두가 되었던 시기에 버금갔다.   

  

내 본적지 300번지 시절 그 기나긴 겨울을 나기 위해 월동준비를 하던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3 접이나 되는 배추와 무를 동원하여 김장을 담그는 것은 가장 기본이었다. 간장 된장 고추장을 커다란 단지에 든든하게 채워야 했고 땔감용 장작을 초가집 굴뚝옆에 자리한 헛간에 가득 쌓아 올렸다. 19공 연탄을 300여 장이나 비축했고 무시 못할 화력을 자랑하는 왕겨를 부엌 한편에 수북이 쟁여놓았다. 이런 뒤에야 안심을 했던 아버지 어머니의 겨울나기 준비작업에 다름이 아니다.      


나의 이 시배달서비스란 대가를 바라고 하는 일이 아니다. 이른바 전혀 '돈이 되지 않는 일'이다. 그저 내가 좋아서 작정하고 나선 것이다. 좋아서 하는 일과 살림에 보탬이 되는 일이 일치한다면 좋으련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것이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아부어야 할 부문은 수험공부와 글쓰기이다. 이들에 비해 시배달서비스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3번째 일이 첫째 둘째 미션에 적지 않은 부담을 주더라도 나는 이 시배달 서비스를 계속 이어갈 작정이다.     


3개월분 시를 비상식량이나 겨울나기 대비용 땔감인 장작이나 19공 연탄처럼 비축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오늘도 부족하지 않게 채운 기분이다. 오늘도 나는 시배달서비스 준비작업을 위해 종이책 시집을 독서대에 올리고 스마트폰을 손에 쥔 지 벌써 3시간을 넘어서고 있다. 이제야 겨우 좋은 시를 캐내기 위해 미로를 벗어나 처음 들어섰던 입구를 어렵게 찾아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준수야 네 글을 여기저기 많이 퍼 날라 써먹고 있다.”

형님이 매일 보내주는 시 등 좋은 글은 혼자보기 아까워서 여러 곳에 전파하고 있는데 반응이 매우 좋습니다.”

선배님 덕분에 제 친구들로부터 인문적인 소양이 많다는 칭찬을 받고 있어요

이런 주위의 평가는 내가 이 시배달서비스를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추동력이 되고 있음은 물론이다.           

작가의 이전글 시 배달 서비스(1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