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이것은 아주 규모가 큰 법인고객이나 VVIP고객분들만 드리는 것입니다. 2억 이상 되는 고객들에게만 배정되는 것이라서...”
“그럼 저도 2억을 들고 오면 그 달력 주실 건가요?”
“물론입니다. 제가 책임지고 드리겠습니다.”
내가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발을 들여놓던 해 11월 중순경이었다. 나는 신규고객 상담 창구에 근무 중이었다.우리 지점과 거래를 새로이 트고자 하는 고객들을 상대로 상품 상담을 하고 통장을 발급해 주는 업무를 주로 맡고 있었다. 방금 전 내 담당 대리가 VVIP고객에게 우리 회사 액자달력을 건네던 모습을 바로 코 앞에서 지켜보던 사모님과 나 사이에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우리 회사는 매년 달력을 벽걸이, 데스크용, 액자달력 이렇게 3가지 종류를 제작하던 시절이었다. 이 중 앞의 두 종류는 물론 우리 회사의 액자달력은 다른 일반 기업체는 물론 은행 등 타 금융권의 그것보다 훨씬 세련되고 멋진 디자인을 자랑했다. 이래서 고객들의 선호도가 매우 높았다.
3가지 모두 다 경쟁력이 있었지만 그중 액자달력은 단연 압권이었다. 외형도 고급졌고 희소성도 있었다. 서양화나 동양화 등 풍경화, 인물화 대신 아주 정제된 꽃사진을 엄선해서 모아놓았기 때문에 이 달력의 인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법인고객이나 개인고객을 가리지 않았다. 우리 직원과 인연이 닿는 고객들은 이 액자달력을 얻으려고 무던 애를 썼다. 이 액자달력은 벽걸이나 데스크용에 비하여 그 제작비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고가였다. 그래서 영업점별로 사전 수요 조사 후 회사 전체 물량을 취합하여 제작에 돌입했다.
법인고객에도 타이트한 배정기준을 적용했으며 개인고객은 그야말로 이른바 VVIP고객에만 기회가 돌아갔다. 이미 배포된 이력이 있는 고객에겐 그다음 해는 액자 내지만을 배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어느 책임자는 액자달력을 자신에게 @@정도 배정해 준다면 거액자금의 유치도 가능하다고 공언까지 하던 시절이었다.
“사모님, 정말 약속하신 대로 2억을 가져오셨네요?”
“저번 약속대로 그 액자달력인가 그것 하나 주실 수 있지요?”
“당연히 드려야지요.”
지난번 수수한 옷차림의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 고객분이 거금 2억짜리 수표 한 장을 들고 신규창구의 나를 다시 찾아왔다.
“남편이 사업을 시작했는데, 저도 이렇게 큰돈을 만질 수 있는지 몰랐어요, 정말 꿈만 같습니다.”
이래서 나는 당당히 담당 대리의 허락을 얻고선 이 사모님에게 창고 한 편에 고이 보관 중이던 고급진 액자달력을 기분 좋게 건넬 수 있었다. 모름지기 사람의 외모만으로 재력을 판단해서는 아니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순간이기도 했다.
엄동설한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같은 해 12월 중순이었다. 영업점 철제셔터가 내려진 후 판촉담당 차장은 우리 지점 남자사원 5명을 모두 불러 모았다.우리 점포 인근 병원을 여나무개 선별하여 직원별로 액자달력을 할당했다. 실외에선 손을 호호 불며 녹이거나 장갑의 신세를 지어야 손이 곱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정도의 맹추위가 계속되고 있었다. 차장이 미션을 하달했다. 각자에게 배정된 병원을 들러 원장의 얼굴을 본 후 인사를 올리고 병원 내부 눈에 잘 뜨이는 곳에 이 달력을 걸어주고 복귀하라는 것이었다.
우리 모두는 무척이나 순진했다. 감히 원장의 면담은 언감생심이었다. 우리를 맞은 간호사는 귀찮아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우리의 용무를 이미 전해 들은 간호사는 원장의 알현엔 전혀 관심 밖이었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들고 온 이 고급진 액자달력을 그리 반기지 않았다.턱끝으로 가리켰다. 자신이 지정해 준 병원 객실 한쪽 구석에 세워두고 돌아가란 신호를 우리에게 보내는 것이 전부였다.
다른 이들은 이 고급진 액자달력을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 무던 애를 쓰는데 우리가 방문한 병원의 간호사의 달갑지 않은 응대에 우리는 적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오랜 기간 사법시험 수험생 시절을 보낸 나로선 당혹스러웠고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렇게 고급진 판촉물을 자진하여 상납하려 행차했음에도 문전박대 수준의 대접밖에 받지 못했다. ‘의사란 직업이 무어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하는 생각에 미치기도 했다. 더구나 간호사의 푸대접까지 받는 신세로 전락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회사나 금융기관의 달력이 이미 벽 한 곳에 자릴 잡고 있으면 그것을 떼어내고 우리의 고급진 액자달력으로 교체하여 걸어주라는 세부 행동강령을 받은 우리였지만 이에서 한 걸음도 더 나아갈 수 없었다. 이 액자달력을 들고 들어서면 다른 곳의 개인고객은 물론 법인소속 직원이 반색을 하고 맞이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곳 병원에선 우리는 잡상인 취급을 당한 것이었다. 당시로선 지금처럼 가히 망국적인 의대쏠림 현상이 없었음에도 병원에선 우리는 제대로 된 대접을 받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