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유불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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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고교동기 삼총사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는 분기에 한 번 정도 여의도 인근에서 점심이나 저녁식사를 같이 하고 있었다. 여의도 @@증권빌딩 지하음식점이 약속장소로 정해졌다. 회전초밥집이었다. 메이저 방송사에 근무 중인 친구 상준이가 식사티켓을 얻었다며 오늘 점심식사는 자신이 책임지겠다며 짐짓 자랑을 하고 나섰다.
식당 안은 많은 손님들로 매우 북적였다. 우리는 70년대 후반 유행했던 스탠드바를 연상시키는 둥근 타원형 식탁에 자리를 잡았다. 우리가 오늘 친구의 티켓으로 주문할 수 있는 메뉴는 ‘회전초밥’으로 한정되었다. 메뉴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옵션이 추가되었다. 보다 많은 손님을 유치하기 위함인지 식당 이용시간도 45분을 넘을 수 없었다. 컨베이어시스템처럼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는 접시에 담긴 생선초밥 중 자신이 원하는 접시만을 골라내고 다른 것은 통과시켜 버리는 시스템으로 작동되고 있었다.
우리 친구 세명은 식성에도 공통분모가 있었다. 육식보다는 바다생선을 상대적으로 선호하는데 일치했다. 결혼식 피로연 등 각종 뷔페식에 비해 제한시간이 매우 짧았다. 그럼에도 45분이란 제한시간은 보통 사람이 어느 식당에서 다른 메뉴를 택하더라도 식사를 마무리하는데 그리 부족한 시간은 아니었다. 우리는 종래 모임처럼 자연스럽게 식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특별히 속도를 높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제한시간을 전혀 의식하지는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이 좋아하는 생선초밥으로 한 끼 식사를 온전히 즐길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초밥 하나하나를 입안으로 가져가는 속도를 눈에 띄게 올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럼에도 가끔씩 식당 측면 벽에 걸린 벽시계를 힐끔힐끔 쳐다보는 자신들을 발견했다. 이윽고 점심식사를 마친 우리는 이곳에서 제법 떨어진 각자의 사무실로 복귀해야 하는 관계로 오늘은 식후 티타임을 생략하기로 했다. 상대적으로 시간 여유가 있는 저녁 모임하고 달랐다.
사무실로 복귀한 지 두어 시간이 흘렀다. 내 뱃속에선 이상신호가 감지되었다. 제한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평소 대비 식사속도에 무의식적으로 신경을 쓴 탓으로 보였다. 몇 끼 식사를 거른 사람처럼 생선초밥을 게걸스럽게 해치우지는 않았다. 하지만 45분이란 제한시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명치 부분이 답답해졌고 이어 아랫배 쪽에서도 묵직한 느낌이 시작되었다. 나의 고향 300번지식 표현을 빌자면 내 뱃속에선 이미 ‘구라파전쟁‘의 전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곧 급체 등 배탈의 전형적인 증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경로가 예상되었다. 이런 경우엔 내가 평소 꺼내 들던 대처방법이 하나 있었다. 이어지는 다음 끼니를 거르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준수야, 뭐 남동생 결혼에까지 신경을 썼어. 어쨌든 고맙네. 그래서 말인데 오늘 저녁 마곡지구에 있는 동수네 @@식당에서 저녁이나 같이 하자. 철규도 그리 오기로 했으니 7시 정도에 보자고.”
이러던 차에 고향 여자동기 윤주가 나를 호출했다. 오늘 저녁시간엔 별도의 일정은 없었지만 나는 선뜻 내키지 않았다. 제한시간 옵션이 붙은 오늘 회전초밥집 사건 때문이었다. 내 뱃속에선 이미 ‘구라파전쟁’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고향 친구들은 과식이나 상한 음식등으로 뱃속에 트러블이 생긴 경우를 ‘구라파전쟁 발발’에 가져다 붙이는 것이 오래된 일이었다.
자칭타칭 ‘골수 영업맨’이라 불리던 나였다. 이번 주도 빠듯한 외부일정이 잡혀 있는 관계로 윤주가 제안한 식사초대를 거절하거나 다음으로 미루기도 여의치가 않았다. 그래서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윤주에게 엉거주춤하게 동의를 해주고 말았다.
이곳 마곡에 자리한 @@뼈다귀 해장국집은 우리 고향 남녀 동기가 동업으로 꾸려가고 있었다. 고향친구들의 크고 작은 모임 단골 장소로 자주 이용하고 있었다. 동기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나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윤주와 철규를 이곳에서 마주 앉았다. 감자탕 큰 것을 이미 대령해 놓고 두 친구는 벌써부터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과속 운행한 점심식사 때문에 생겨난 뱃속 트러블은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었다. 윤주가 자신의 남동생 결혼식에 성의를 표한 우리들에 대한 답례로 마련한 만찬이었음은 물론이었다. 이렇게 식탁 앞에 자리한 지금도 내 몸 상태를 감안하면 오늘 바로 이 저녁식사는 그저 건너뛰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러나 친구 윤주의 호의를 차마 거절할 수는 없었다. 나만 생각한다면 그저 수저를 뜨다 말 듯이 식사량을 줄여야 했으나 이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본디 연기력이라곤 바닥 수준인 나로선 더욱 그랬다. 마지못해 친구의 초대에 응한 것처럼 보일 것이 뻔했다. 그래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초대자인 친구 윤주에 대한 나름 예의라는 생각에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