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동 감독은 <시>를 통해 어떤 말을 하고 싶었나.

영화를 경유한 성장, 그 첫 번째 이야기

by 가예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이창동 감독은 영화 <시>를 통해 한 번 더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강력하게 전했다.


영화 속 '미자'라는 인물은 자녀를 대신해 손자와 단둘이 살아가고 있다. '미자'의 역할은 윤정희 배우로, 영화 속에서도 고고한 품위를 지닌 채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이 무엇인지 연기하고 있다. 세월의 흐름과 함께 자연의 섭리로 늙어가는, 혹은 낡아가는 모든 것들을 그대로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인물이다. 세월의 흔적 속에서도 화려한 자태를 추구하며 뽐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시> 속 미자는 유독 형상화된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쫒는 인물이다. 그런 그가 처음 '변화'를 위해 내딛는 발걸음은 '시'를 쓰겠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된다. 극의 초반부 미자는 '시'를 쓰기 위하여 형상화된 아름다움에서 한 발자국 더 깊이 들어가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감독은 세상이 단연코 아름다움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거듭해서 깨닫는 미자의 모습과 함께, 마지막 문화원에서 그녀가 두고 간 시를 통해 증명해 보인다.


시상은 언제 오냐는 미자의 물음에 문화원 강사는 시상을 직접 찾아갈 것을 말한다. 여기에 또 다른 조언으로 시상을 찾기 위해서는 먼저 '느낄 것'을 권유한다. 이 말을 들은 미자는 모든 사물을 바라볼 때 감각하기 위해서 오랜 시간 들여다본다. 점차 떠오르는 조각들을 긁어모으기라도 하듯 미자는 끊임없이 메모를 하며 자신의 시상이 담긴 노트를 만들어 간다.


맨드라미 꽃을 본 미자는 '피 같이 붉은 꽃'이라 표현하며 한 자 한 자 눌러 담아 글을 쓴다. 어절들이 모여 하나의 구가되듯 '새들의 노랫소리 무엇을 노래 하나' 혹은 '시간이 흐르고 꽃들도 시들고'와 같은 미자만의 시 세계가 구축되어 간다. 이렇듯 지금까지 미자가 지향하며 담고자 하는 자신의 시 세계는 어여쁘고 겉으로 화려한 것들의 모음에 불과하다.


시를 통해 변화하는 미자, 변화한 미자가 시를 쓰는 법


그러나 영화는 중반부를 달려가며 미자의 '아름다움'을 단계적으로 짓밟는다. 성폭행을 가담한 손자 종욱의 소식을 들으며, 또 피해자 합의를 위해 모인 가해자 부모들의 일말의 죄책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덤덤함을 보면서 말이다. 이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자신이 간병하고 있는 환자에게 관계를 요구당하면서 말이다.


손자의 합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모시던 간병인에게 끝내 자신의 몸을 던질 때, 이미 그녀는 자신이 추구하던 '아름다움'과는 멀어졌다. 해당 부분에서는 미자가 낭송회에서 경찰의 시를 폄하하며 모독이라 덧붙였던 장면이 다시금 떠오른다.


"시를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움을 찾는 것이 잖아요"라는 그녀의 확고한 가치관이 담긴 말.

하지만 그녀는 결국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관으로부터 얼룩졌다.


더욱 아이러니한 것은 미자가 '아름다움'으로부터 멀어진 뒤에서야 비로소 시를 완성한다는 것이다. 이창동 감독은 시를 사랑하는 것이 곧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이라 했던 미자가, 아름다움으로부터 벗어나서도 시를 완성하였다는 결말을 통하여 옅게나마 희망을 제시한다. 이는 영화가 초반, 이미 문화원 강사의 말을 통해 제시한 것과 같이 시를 쓰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즉 내면의 것이라는 시인의 '사유'를 강화하며 끝맺는다.


영화 <시>는 관객들에게 아름다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시를 통해 변화하는 미자의 모습을 보며 해답을 제시한다.


미자가 피해자 희진을 기리며 적어 내려 간 <아녜스의 노래>는 처음 미자의 목소리로 낭송을 시작하여 희진의 목소리로 끝난다. 영화는 첫 시작과 끝에, 물길 위로 떠오르던 희진의 모습에서 다리 밑의 강물에 떠내려가는 미자의 모자 씬을 각각 배치함으로써 같은 대목에서 관객들을 멈칫하게 한다.


영화의 엔딩 장면, 다리 밑 강물을 내려다보는 미자의 시점 쇼트에서 물결은 끊임없이 흐른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미자는 자신을 감추었지만 앞선 쇼트의 물결과 같은 메타포를 통해 관객은 그녀가 어딘가에서 물길 흐르듯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희망을 품는다.


<아녜스의 노래> 중 미자가 고백한 작별의 시간은 생의 작별이 아닐 것이다. 끊임없이 쫒았던 미자의 '아름다움'과의 작별일 것이다. 그리고 완성한 시를 희진에게 바침으로써 미자는 자신을 옥죄었던 죄책감으로부터 작별을 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녜스의 노래>에서 현재 상황을 비유하는 듯한 '검은 강물'에서도 '햇빛 맑은 아침'이라는 구절로 끝나는 것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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