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선 '우리'라는 세상, 작은 나에서 큰 나로.
실존적 딜레마. 끝이 어딘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우주 가운데 지구라는 행성에서 작고 작은 나라는 존재는 도대체 무엇일까. 점이나 먼지같은 존재도 아닌 내가 살아있다고, 여기 이 땅 위에 존재한다고 과연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사색에 빠질 때면 나는 조금은 공허하고, 삶이 무의미하다고 생각되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치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유의미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The self delusion'에서는 우리가 숨쉬는 데 필요한 산소라는 분자는 어디에서 왔을까? 우주에서 날아온 것일수도,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빠져나온 산소일수도 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고, 사고가 확장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내가 해왔던 고민에 대한 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그저 자연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것. 계속 순환되는 자연 속에서, 혼자서는 독립할 수 없는 연결된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일 뿐이라는 것. 자아라는 존재는 매우 유동적이기도 하다. 고정된 자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적 맥락에 따라, 상황에 따라, 사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것이 우리의 자아라고 설명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가 놓여진 환경과 문화, 관계되어진 사람들, 연속된 사건들이 현재의 우리를 만든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매 순간마다 누군가와, 아니면 자연적 존재와 연결되어 살아가는, 독립된 개채로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이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무언가를 통합적으로 사고하게 만든다. 누군가에 의한 일들이, 말이, 행동이 세상의 어떤 부분에서 그 효과를 일으킬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제한된 자아 속에서 머물러 있는 것이 이 아니라, 좀 더 나아가 우리의 주변을 생각하고, 나라를 생각하고, 전 세계를 생각하게 한다. 작은 나에서 커다란 나를 만난다.
'작은 나'와 '큰 나'라는 상태 사이를 또는 독립된 자아 정체성에서 확장되고 연결된 자아정체성 사이를 오가는 변화는 고무적이다.
Confirmation bias(확증편향). 마이클 하얏트의 초생산성에서는 우리가 연결될수록 더 똑똑해진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편향된 시야 속에 갇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자꾸만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기중심주의에 의존해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가 있다. 마틴 셀리그먼의 긍정심리학에서는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왜곡된 믿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편협된 사고 속에 갇혀서 멀리 보지 못하고, 그저 눈 앞에 놓인 일에 급급해 내 자신을 괴롭혔던 적이 얼마나 많은가?우리가 연결되어있다는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개인적 관점에서 벗어나 우리라는 세상을 보고 상황적 맥락에 따라, 전체적 관점 전환을 통해 서로를 더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타주의에 의존해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207.p)
이처럼 폭넓은 연결성을 인식하고 연민을 가지고 접근하려고 개인의 관점을 바꾸는 것이 우리 사회에 폭넓은 변화를 일으키는 첫걸음이다.
나는 등산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지만, 등산을 한다는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나무그늘에 앉아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나를 상상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내가 자연의 한 부분이기에 그러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상상 속의 자연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생태계는 내가 모르는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현재진행이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결과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야 함을 이 책을 통해 깨닫는다. 세상은 너무나 복잡해서 언제 어떤 나의 행동이 세상에 해를 끼칠 수도,유익할수도 있다. 이 사실을 이해하면 내 행동에 신중해야 함을 상기시킨다. 우리는 연결되어있다. 복잡한 세상 속에서 혼자가 아닌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 내 바운더리를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커다란 나'로, 더욱 더 교양과 지식을 쌓고 성숙한 '우리'로 거듭나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