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선생님이 제 심정을 아세요?"
"그럼요, 저도 갑상선암으로 수술받았어요."
셔츠를 목 밑으로 쓰윽 내리자 아직 붉은기가 가라앉지 않은 수술 자국이 보인다.
환자의 눈이 동그래지며 불평을 멈췄다.
이렇게 나는 질병을 진료에 활용하기도 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삶을 살고 있다.
나는 영화도 좋아하고, 야구도 좋아한다.
그러니 2011년에 개봉한 '머니볼'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영화였다.
이 영화는 브래드 피트 주연의 미국 메이저리그에 관한 영화이다.
만년 꼴찌 팀을 저예산으로 우승시키기 위해 단장인 브래드 피트가 분석적으로 선수들을 영입하여 팀을 꾸린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래드 피트가 직관한 경기는 패배하는 징크스가 있었기 때문에, 늘 제대로 경기를 보지 못하고 도망치게 된다.
영화 중간에 브래드 피트의 딸이 기타를 치며 Lenka의 'The show'를 불러주는 장면이 나오는데, 영화의 말미에 이 노래가 다시 나오며 영화는 끝이 난다.
노래 가사를 개인적으로 느낀 대로 의역해 보았다.
난 길을 잃은 것 같아
인생은 미로 같고 사랑은 수수께끼
어디로 가야 할까
떠나려 했지만 혼자는 못하겠어
이유도 모르겠고
난 그냥 길 잃은 여자애거든
무섭지만 티 내지 않을 거야
이해도 안 되고
이런 생각이 날 우울하게 만드는 걸 알아
이제 걱정 그만해야 해
그냥 쇼를 즐길 거야
그래, 힘들어
내가 아닌 무언가 되려 한다는 건 말이야
나는 바보야
항상 사랑이 충분하지 않거든
시간을 돌리고 싶어
시간을 돌려줘요
시간을 돌릴 수 있을까
그냥, 쇼를 즐기는 거야
잘 만든 노래,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삶에서 무엇이 바른 길인지도 모르겠고, 무섭고 우울할 때도 있지만 뾰족한 이유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차피 시간을 돌릴 수 없고, 돌릴 이유도 없다.
그냥, 지금을 사는 것 그것만이 유일하고 명확한 명제일 것이다.
우리 딸은 아직 어려서 내가 수술을 받고 나서 갑자기 목을 껴안지 못하게 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수술 후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엉엉 울며 계속해서 목을 만지려고 해서, 나도 울고 남편도 거의 울다시피 한 날이 있다.
잘 살아가다가 한 번씩 그렇게 무너지는 날이 있다.
앞으로도 그런 날들은 예고 없이 찾아올 것이다.
그래도 그냥.
쇼를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