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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Feb 09. 2024

24. 2. 3.

깃발을 낮게 달았다.

센터 옥상에 걸린 기를 낮게 달았다. 조기게양, 조의를 표할 사건이 발생했을 때 깃면의 너비만큼 내려 깃봉에 단다. 어제 두 소방관이 순직했다. 한 분은 스물일곱, 한 분은 서른다섯. 뉴스에선 생전에 그분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나 영상을 비춰 보도했다. 내게 익숙한 옷, 친숙한 장비, 멀지만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박수훈 소방교는 특전사를 제대하고 소방에 왔다. 특전사를 제대하고 소방관이 되어 창원에서 근무하는 내 고교동창이자 동료인 녀석의 모습이 얼핏 보였다. 김수광 소방장은 작년에 인명구조사를 합격하고 구조대에 자원했다. 공개채용으로 들어온 경우엔 센터에 근무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구조대에 가고 싶었다고 했다. 나도 같은 이유로 작년에 시험을 봤고, 아쉽게 고배를 맛보고 올해 4월에 치를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문경에서 벌어진 화재는 멀지만 멀지 않게 느껴졌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지만 그분들의 생전 모습이 눈에 그려져서 주제넘게도 동질감이 들었다.

여기서 일하면서 느낀 건 생각이 많고 공감을 하려는 태도들은 꽤 성가신 감정일 수 있다는 것이다. 둥근 걸 둥글다, 모난 걸 모나다 얘기하는 걸 피하게 되면서 소방에 관련한 얘기를 하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다른 얘기는 모르겠지만 특히 우리 일에 관련해선 어떤 얘기까지 해야 할까, 어떤 부분까지 보여줘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깊다. 마찬가지 이유로 이번 순직한 소방관의 이름을 내 글에 거론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럽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들었던 말을 기둥 삼아 얘기를 이어 나가보려 한다. 그 문장은 이렇다. "적어도 우리는 이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이 말씀을 했던 주임님은 이십 년 전 홍제동 화재에서 동료를 잃었다.

올해 셋이다. 비통하게 하늘로 간 우리 동료가. 몇 달 전 제주에 한 분, 그리고 이번에 문경에서 두 분. 왜 매년 누군가 하늘나라로 가는 걸까. 장비는 점점 좋아지고, 선배님들도 "위험한 현장엔 함부로 진입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매번 이런 사고가 벌어지는 걸까. 그러다 '그냥 그렇기 때문에'라는 결론에 닿았다. 우리 일이 원래 그러니까. 추운 곳에 일하면 아무리 조심해도 한 순간 동상에 걸릴 수도, 더운 곳에 일하면 한 순간 탈수증상이 찾아오듯, 우리도 그냥 상황이 그러니까. 현장에 나가면 크고 작은 위험들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 가벼운 상황이 많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러면 적당히 위험하지 않는 선에서 현장활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출동에 나가서 발생하는 모든 변수를 차단하고자 하면 현장에서 할 수 있는 게 제한된다. 저번 근무 때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차량이 다리 밑으로 추락했다는 신고였다. 현장에 도착하니 다리 높이는 대략 아파트 2~3층 높이였고, 사고차량인 파란색 다마스는 추락 당시 충격으로 보닛 부분이 심하게 찌그러진 채로 교량 밑에 쓸쓸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밤이었고, 비도 추적추적 내렸다. 위에서 손전등을 비춰보니 운전석 쪽에서 구조대상자가 피를 흘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로프를 타고 내려갈지, 비탈길을 조심스레 짚어가며 내려갈지. 우리는 찰나의 고민 이후 펌프차 위에 실려있는 복식사다리를 꺼냈다. 땅이 질척거렸지만 그 정도는 감내해야 했다. 다리 주변 비탈길에서 사다리를 완전 전개하니 밑에 있는 땅에 겨우 닿았다. 땅이 울퉁불퉁하고 풀이 많아 평지만큼 완벽하게 고정되진 않았다. 하필 비도 와서 땅이 많이 미끄러웠다. 최대한 고르고 딱딱한 곳에 사다리를 고정시켰고, 위에선 팀원들이 양옆으로 사다리를 꽉 잡아 고정시켰다.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확인하니 구조대상자는 다행히 호흡과 맥박이 있었다. 최악의 상황은 아니었다. 이윽고 한 명, 한 명씩 구조대상자를 구하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고, 들것에 고정시켜 구조대상자를 끌어올려 병원에 보낼 수 있었다.

구조대상자를 구급차에 인계한 뒤 펌프차에 앉자 그제야 쿰쿰한 냄새가 코를 스쳤다. 다리에서 추락한 그 차는 음식차였다. 차의 뒷면엔 '학교 납품 환영, 장어탕 배달 전문'이라고 쓰여있었다. 차량이 사고 당시 몇 바퀴 구르며 내부에 실린 음식통도 함께 굴렀을 것이고 구조를 위해 차문을 열었을 때 내부는 음식물 찌꺼기 범벅이 되어있었다. 사고가 일단락되고 센터로 복귀할 때가 되니 몸에선 알 수 없는 냄새가 났고, 추적추적 내린 비에 바지와 신발엔 진흙이 묻어있었다. 센터로 돌아와 빨래통에 더러워진 옷을 넣었다. 주황색 소방복이 세탁기 물살을 따라 뱅글뱅글 돌아갔다. 옷들 사이에 나부끼는 주황색을 한참 동안 쳐다봤다.

이번 순직사고가 벌어진 뒤 부산소방학교 교관님께서 글을 한 편 썼다. 그 글을 오래 두고 읽었다. 담백하고 솔직하지만 조금 아린 글, 그 글엔 동료를 떠나보낸 적이 있는 사람의 손길이 아련하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고선 나올 수 없는 글이었다. 교관님의 글엔 본질이라는 단어가 담겨있었다. 피하고 싶고, 내키진 않지만 이 일이 우리의 본질이라는 것. 그러니 계속해야 한다는 것. 작가가 글을 쓰고, 교수가 학생을 가르치는 것처럼 우리는 현장에 나가는 것이 우리 본질이다. 그걸 두려움이나 망설임으로 덮고 싶진 않다. 혹여 언젠가 개인적인 트라우마가 생겨 본질을 뒤덮게 되면 현장에서 물러나야지. 그게 옳은 길이자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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