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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하늘 Jun 11. 2024

250610

유월 둘째 주 생각들

<1>
소방관 마음 상담을 했다. 결과는 아주 정상. 상담사분께서 내게 이것저것 물어보셨다. 요즘 힘든 것은 없는지, 가까운 목표가 무엇인지, 어떨 때 좌절감을 느끼는지 등등. 대답을 하면서 느꼈는데 나름대로 스트레스 조절을 잘하는 것 같았다. 난 내가 어떻게 하면 맘이 상하지 않는지 아는 것 같다. 우선, 난 기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어떤 걸 선물로 주면 그걸로 끝. 내 손을 떠난 물건은 거기서 마무리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다시 선물을 받고 안 받고는 그 사람 마음이다. 내 마음은 전달해 주는 행위에서 끝난 것이고, 그 사람이 선물을 다시 건네든 안 건네든 그 일은 내 영역 밖의 일이다. 마찬가지로 어떤 사람 관계에서도 다른 사람에게 크게 기대하지 않는다. 기대하면 실망하게 되더라. 기브 앤 테이크에서 테이크를 덜어내서 생각하는 편이다.

<2>
싫은 건 싫다고 얘기한다. 난 이게 가장 어려웠고, 현재도 어렵다.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으나 내가 느낀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절대 개인을 배려해 주지 않는다. 내가 내 의견을 충분히 피력하지 않으면 난 누군가의 소모품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예스, 아니면 노라고 얘기한다. 할 수 없는 걸 긍정했을 땐 대가가 참혹했다. 우선 내가 하기 싫으니 의욕이 생기지 않고, 의욕이 생기지 않으니 성취도가 떨어졌으며, 성취도가 떨어지니 일을 맡긴 입장에선 실망했다.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난 내가 못 할 것 같은 일은 어떻게든 힘들 것 같다고 확실하게 얘기한다. 다만 그래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땐 한다. 그때 내 기준은 잘하는 게 아닌 남들만큼만 하는 것.

<3>
나도 모르게 내 얘기를 술술 풀었다. 그렇게 얘기하며 이 편안한 마음 상태의 시작은 어디일까 찾아봤다. 난 분명 1년 차까지 부단히 힘들었다. 특히 공문 접수하고, 기안하고, 선임들과 얘기하고 풀어나가는 생활이 어려웠다. 윗사람들에게 잘하는 성격도 아니고, 손도 빠른 편이 아니니 사실 윗분들이 볼 때 난 이쁨 받는 후임은 아니었다. 그래서 1년 동안 힘들었다. '동기들은 다 잘하는데 난 왜 이럴까'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러면서도 생각한 건 '하나는 잘하자'였다. 사람 관계에 센스가 없으면 일이라도 잘하자고 다짐했다. 닥치는 대로 소방 관련 업무를 공부하고 훈련했다. 구급대원은 아니지만 구급 관련 내용을 선임 반장님께 묻기도 했고 화재 관련 내용을 공부하고, 훈련했다. 사무실에선 쭈뼛대더라도 출동 나가선 내가 최고였으면 좋겠다고, 하늘이 있으니 든든하다는 말을 반드시 듣고 싶었다. 사무실에선 꼴등, 현장에선 1등을 내심 바랐다. 그러던 중 저번 근무 수난 출동을 나갔을 때였다. 바다에 익사자로 추정되는 시체가 있다는 신고. 우리 관할이었던 바다 앞에 출동했다. 슈트를 입고 현장에서 진입 준비하는 동안 마음은 떨렸지만, 한편으론 두근거리기도 했다. 내가 열심히 배운 것들이 여기서 쓰이는구나. 출동 복귀 후 장비를 정비하는 동안 부장님과 주임님께서 주고받던 얘기를 들었다. "임하늘이 있으니, 윽수로 든든하대." 머릿속에서 펑하고 폭죽이 터졌다.

<4>
한 동생이 자기는 인정욕구가 열정의 원천이라고 얘기했다. 그 말을 들으며 난 그렇지 않다고 내심 생각했다. 이렇게 자기 객관화가 어렵다. 춤출 듯 기뻤던 나를 보며 나에 대한 생각을 다시 정리한다. 난 인정을 받을 때, 동료들이 내가 믿음직하다고 말할 때, 그때 가장 희열을 느낀다. 사는 건 늪이다. 잘살아 보려, 멋있어 보이려 허우적댈수록 점점 발이 빠진다. 그런 욕심이 없으면 펄에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 자리에서 정지하겠지만. 난 좀 더 믿음직한 후임이, 동료가 되기 위해 허우적거린다. 펄에서 벗어나면 다른 펄에 뛰어 들어갈 거다. 다시 그곳에서 영차영차, 몸을 굴리고 얼굴에 진흙을 묻히며 허우적거릴 거다. 현재 내가 있는 펄이 수난 구조 펄이면, 다음 늪은 화재진압 늪. 난 계속 내가 허우적거릴 어딘가를 부단히 찾고, 구르고, 헤집으며 살아가려 한다. 그냥 동료 임하늘보다 내 믿음직한 동료 임하늘이 더 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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