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카카오톡 메시지를 다시 본 적이 있는지? 몇 년쯤 지난 메시지를 읽다 보면 당시에는 알 수 없던 것이 보일지 모른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면.
휴대폰 저장 공간 확보를 위해 오래된 것들을 삭제하던 때였다. 남기지 않을 사진과 동영상, 쓰지 않는 앱 등을 제거하고, 이제는 소통이 없는 대화창들을 삭제했다.
나에게 버리는 행위는 느리게 이루어진다. 글을 읽듯 대화를 읽어본 후에 대화창과 영원히 안녕을 한다. 추억을 좇아 여러 감정이 오고 간다. 그때의 즐거운 일이 떠올라 미소를 짓기도 한다. 그때처럼 강렬하지는 않으나 후회와 미안함, 실망과 분노가 슬며시 스쳐가기도 한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알아낸다.
그것은 썸남, 친구, 가족, 동료 등 모든 대화에 나타났다. 때로는 주체가 되어 도드라지고, 때로는 소속 여부가 불분명할 정도로 드러나지 않기도 했다. 집단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보였지만 어느 집단에나 비슷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그건 바로 나라는 존재의 대화법이었다.
나는 감정보다는 사건에 주목하는 대화를 한다. 상대가 일상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나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됐는지를 묻는다. 감정표현을 전혀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감정 교류보다는 사건의 인과 관계나 전후 상황에 주목을 한다.
이야기할 당시에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상대에게 충분히 관심을 표현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당시의 내게서 분리한 상태로 대화를 읽다 보니, 사건에 주목한다는 건 꽤 냉정해 보이는 면이 있었다. 상대가 감정적인 사람일수록 대화에서 온도차가 느껴졌다.
나는 행동이 빠른 사람은 아니지만 나의 대화는 때로 상대를 앞서 나간다. 상대가 어떤 상황에 대해 얘기를 할 때, 나는 그 상황에 흠뻑 빠지기보다는 예상되는 다음 상황을 얘기하는 일이 흔하다. 이런 대화는 대화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상황 자체의 몰입도를 떨어뜨리기도 한다.
나에게 답을 요구하는 상황일 때는 여러 가지를 확인한 후에 확답을 한다. 이번 주 수요일에 시간이 있냐는 친구의 물음에 나는 그럴 거라는 대답을 머릿속에 한 상태로 시간과 장소에 대한 얘기를 한다. 시간과 장소를 확인한 후에 만남이 가능하다면 그제야 만나자는 답을 한다.
사건에 주목하는 나의 대화 방식으로 누군가는 몰랐던 사실을 알았다며 좋아한다. 앞서 나가는 나의 대화 방식에 네 말이 맞다, 어떻게 알았냐며 재밌어하는 경우도 있다. 확인 후에 확답을 하고, 답을 바꾸지 않는 나의 방식에 신중하다고 느끼는 이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대화는 상호작용이다. 이런 나의 대화 방식은 반복적으로 드러나고, 때로는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그 사건 자체에 빠지고 싶은 사람, 충분한 감정적 공유를 원하는 사람, 나중에 말을 바꾸더라도 빠른 답을 원하는 사람에게 나의 말은 냉정하고, 답답함을 준다.
우리는 각자가 모두 다르다. 어떤 모습이 더 좋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나를 숨기면서 상대에게만 맞출 필요도 없다. 그러나 나에게는 부족한 부분이 있다. 상대적으로 강한 면만 사용할수록 부족한 부분은 더 부족하게 된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보기로 한다.
비록 말을 바꾸게 될지라도 질문에 적절한 답을 해본다. 앞서 나가지 않기 위해 한 박자 쉬어도 본다. 상황보다 감정에 집중해본다.
상대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이고, 상대의 감정에 더 관심을 가지니, 상대의 말 뒤의 진짜 원하는 바가 보인다. 위로를 받고 싶고, 인정을 받고 싶고,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구나. 채워지지 않은 감정의 갈증을 나를 통해 채우려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 마음은 나도 다르지가 않다. 나도 갖고 싶기에 주지 못 했다. 상대를 인정하면 내가 더 모자란 사람이 될까 봐, 사랑을 표현하면 사랑이 비워질까 봐, 나는 그걸 붙잡고 있었다. 나와의 관계에서 원하는 감정의 양이 있는 사람과 주지 않으려 하는 나 사이에는 무언의 기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겉으로 표현되는 내가 얼마큼 달라졌을지는 모르겠다. 상대는 변화하려는 나를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나의 100 중에서 겨우 5 만큼이 변화했을 것이므로. 변화는 5에서 10을 향해 가다가도 다시 제자리, 원래의 나로 돌아가곤 한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상대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렸으므로 괜찮다. 나의 감정 표현도 앞으로 더 자연스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