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pr 27. 2022

두 번째 직업은,


'두 번째 직업은 내가 원하는 일이어야 한다.'   

   

육아 휴직으로 직업을 이어나갈 수 없는 처지에 놓였을 때, 두 번째 직업 찾기에 돌입했다. 틈틈이 검색도 하고 짧은 강의도 들으며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고민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두 번째 직업 선택의 조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두 번째 직업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니, 이렇게 쉽고도 어려운 일이 있을까? 어렸을 때는 분명히 그런 게 있었는데 지금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주 오랜만에 내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잘하는 것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지? 사람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는 변명으로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은 주제였다. 직업을 찾으려다가 나를 찾는 일에 빠졌다.

      


나는 내성적이다. 진지하고, 분석적이다. 사람들 얘기를 잘 들어준다.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한다. 어렴풋한 느낌 대신 글로 기록하자, 나에 대한 이미지가 뚜렷해졌다. 이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표현하면 작가와 상담사이다.

     

초등학생 때 글쓰기로 두어 번 상을 탄 적이 있다. 그것이 계기가 되었는지,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시도 끄적여 보고, 도중에 포기했지만 소설도 한두 장쯤 시도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책을 읽을 때면 작가의 기량에 감탄하고, 나의 무능함에 좌절했다. 어린 시절 입상의 경험이 뛰어난 재능을 증명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접은 줄 알았던 작가의 꿈, 그 꿈이 나를 찾는 과정에서 되살아났다.

      

상담사라는 직업은 나를 찾기 시작하면서 떠올랐다. 나는 타인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니까 상담사가 되면 어떨까. 직업을 통해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에 그치지 않고, 누군가의 삶에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성향에 맞고,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로 상담사를 선택했다.

     

인생이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는 알 수 없다. 나의 능력과 의지, 가능성에 대한 불신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할 때, 첫 번째 직업의 기회가 다시 왔다. 나는 안정적인 그 길을 선택했다.

      

꿈은 나를 떠나갔을까? 아니, 조급한 마음을 내려놓자 기회가 찾아왔다. 나에 대한 탐구는 가족과 이웃 등 사람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다.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의문이 들 때, 에니어그램이라는 성격 심리 도구를 만났다. 그리고 나는 에니어그램 1급 자격증을 취득했다. 상담사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었다.

     


작가는 어떨까? 사람을 매혹하는 어휘, 뛰어난 문장력, 치밀한 구성력을 갖추지 못한 나의 무능에만 초점을 맞추니 자신감을 상실했다. 나는 나만의 언어로 글을 쓰면 되는 것 아닌가. 글쓰기 연습도 없이 작가가 되겠다던 허황된 마음은 내려놓고 글쓰기부터 해보기로 한다. 글을 쓰며 마음을 정리하고, 몰랐던 것을 깨닫는 시간이 좋다. 좋아하는 일을 하다 보면, 책을 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를 실현할 날도 오지 않을까.

     

준비된 자만이 기회를 잡는다. 누군가는 마음먹은 일을 하기 위해 곧바로 직접적인 실행에 옮긴다. 누군가는 미적미적 미루다가 영영 기회를 잡지 못한다. 후자는 하지 못 할 핑계도 참 많다. 나는 후자의 입장에서 전자를 부러움의 눈길로 바라봤다. 내가 비록 즉각적인 행동파 인간으로 변신은 못 하지만, 기회를 놓치고 후회하지는 말아야지. 마음의 준비가 우선, 조금씩 실행을 하다 보니 기회가 보인다.

     

이전의 나는 두려움과 핑계가 많았다. 이제 나는 도전과 성취의 즐거움을 안다. 느림보 거북이지만, 멈춰 있지 않으니 새로운 지점에 도달하더라. 앞으로는 어떤 일들을 만나게 될까. 기대와 희망을 안고, 오늘도 느린 한 걸음을 뗀다.

작가의 이전글 두려움 저 편의 날개를 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