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May 18. 2022

영원한 사랑을 찾다


'그 후로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어릴 적, 동화는 늘 그렇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결혼을 하고, 오래도록 행복하게 사는 것으로 끝을 맺곤 한다. 그들은 우연하게 만나고, 첫눈에 반하며, 신분과 배경을 뛰어넘는 사랑을 한다.


경제력 차이가 많은 사람들이 우연히 만날 확률은 극히 낮으며, 그들이 사랑에 빠질 가능성은 더더욱 없으며, 둘이 행복한 결혼을 한다는 것이 동화이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었지만... 동화의 영향일까? 사랑의 완성형이 결혼이라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는 오래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사랑을 꿈꾸게 되었다. 사랑은 운명처럼 만나는 것이다. 사랑은 서로에게 대체할 수 없는 오직 그 사람이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상대를 지키기 위해서 아끼는 것, 자신의 남은 생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랑을 하고 싶고, 가능한 상대를 갖고 싶었다. 퐁당 빠진 순간부터 삶이 다 할 때까지 사랑할 오직 한 사람을 찾고 싶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변치 않는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책을 보고, TV를 보고, 온라인 세상 속 누군가의 사랑 기록을 살피고, 주변인들의 연애 경험담을 들었다. 서로가 같은 마음인 사랑도 있고, 한쪽으로만 흐르는 사랑도 있다. 오래도록 유지하는 사랑도 있지만 사랑은 일정 기간 머문 후에는 떠나간다. 열렬히 사랑하지만 헤어지기도 하며, 새로운 사랑에 쉽게 빠지기도 한다. 서로를 원하지만 이별하는 사랑도 있으며, 이별 후 한쪽만 잊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랑은 때로 욕망, 집착, 애증으로 변질된다. 사랑은 아름답지만 추악하기도 하며, 절망과 상처를 주기도 한다. 사랑은, 드물게 영원에 닿기도 하지만 아주 흔하게 영원하지 않다.



사랑의 다양한 변주를 들여다보며 실망도 했지만, 영원한 사랑에 대한 갈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내면 깊숙이 내려가 자리 잡았다. 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내 안의 견고한 고집 안에 머물렀다. 사랑을 위한 아무런 손짓도 없이 그저 가만히 그 자리에 머물며 영원한 사랑의 상대를 기다렸다.


어떤 이를 오래도록 마음에 품기만 하고, 반대로 어떤 이가 바라만 보도록 방치했다. 누군가 다가오는 걸 느끼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수차례 호감을 표시하던 그가 마음에 들었을 때에도 그의 진심을 궁금해했다. 주춤하고 물러서는 모습은 그에게는 거절의 의미가 되고, 반복되는 거절은 상대를 지치게 한다. 마침내 그가 멀어지고 나면 쉽게 끝낼 수 있는 그 정도의 마음이고, 우리는 인연이 아니라고 단정 짓곤 했다.



상대에게 표현하지 않는 마음, 혼자서만 펼쳐보는 마음은 외롭고도 안전했다. 함께 해야 증폭되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을, 시작이 있어야 영원한 사랑을 꿈꿀 수 있다는 것을 외면하고 있었다. 오직 한 사람에게만 모든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던 소망, 시작이 생의 마지막까지 이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은 간절하기에 더욱 비껴갔다. 나는 진실한 사랑을 갈구하는 순수한 어른이고 싶었으나 그저 사랑에 있어 어린아이, 사실은 실패가 두려운 겁쟁이에 불과했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사람을 잃고 싶지 않아서 잃지 않는 관계로 머물렀다. 그렇기에 되려 끝나는 인연이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마음을 다치지 않아서 괜찮다 여겼다. 갖지 못할까 봐 갖으려 시도하지 않았다. 인연이 아니므로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 느꼈다. 잃을까 봐, 다칠까 봐 끙끙거리며 단속한 덕분에 덜 잃고 덜 다치게 되었다. 더 얻고, 더 느끼고, 더 성숙할 기회를 지나쳐 왔다는 건, 오랜 후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안다. 실패와 상처를 감당할 용기가 없었던 것을 영원한 사랑에 대한 소망으로 감춰왔다는 것을. 나라는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이라는 감정에만 뛰어들 사람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 간절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절절한 감정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은 아무 걱정이나 갈등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받아들인다. 사랑의 지속은 서로의 성숙으로 함께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에는 끝이 있다.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질 때가 온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시간이 또 지나면 나라는 사람과 사랑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직 사랑에 희망한다. 사랑하는 마음을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오직 그 사람, 시간이 지나도 서로가 가장 좋은 사람, 가장 편하고 가장 즐거운 상대이며 나를 희생해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사람, 누구와도 대체할 수 없는 사람, 변함없는 진심을 서로에게 주는 사랑이 있었으면 한다.


하기 어려운 것, 희소한 것을 갈망하는 마음은 사랑에 있어도 다르지 않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는 동화의 결말은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까. 퍽퍽한 현실을 살아가다가 가끔은 사랑의 환상에 잠시 기대어 마음이 몽글몽글 따뜻해지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꿈이 보내는 신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