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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디오키드 Sep 09. 2021

그땐 처음이니까, 너나 나나


  한여름, 한 소년은 잠자리채와 채집통을 들고 할머니와 함께 공원을 올랐다. 몇 년을 땅속에서 기다리다 나온 매미라는 존재들은 어찌나 답답했던지 공원이 떠나가도록 울어댔다. 소년은 그런 매미들을 노리는 사냥꾼이었다. 소년은 까치발을 들고 나무에 있던 매미를 잡아서 통에 계속 넣었고 높은 곳에 있는 매미들은 잠자리채를 이용해 기가 막히게 낚아챘다. 그렇게 잡았으니 채집통은 매미로 가득했고 소년이 움직일 때마다 통에서는 자지러지는 소리가 났다. 소년은 그제야 집으로 돌아갈 준비 했다. 공원 입구에서 부채질하던 할아버지들은 소년의 채집통을 보더니 “이놈아 너 때문에 매미 씨가 마르겠다.”라고 장난이 섞인 호통을 쳤다. 소년은 부끄러운 듯 웃으며 할머니와 함께 공원에 내려갔고 집에 돌아가 한 마리씩 날려 보냈다. 매미들은 어두워진 하늘을 곡예비행 하듯 그렇게 날아갔다


 그 소년은 바로 나다. 어릴 적부터 곤충부터 시작해서 동물까지 무서워하지도 않고 그저 보고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항상 곤충을 연구했던 장앙리 파브르를 존경했고 침팬지와 소통하던 제인 구달을 동경했다. 책으로 동물과 곤충을 보거나 가끔 TV에 동물들이 나오면 나는 깊게 빠져버렸다. 이런 내가 꿈꾸고 원하던 것은 바로 강아지 키우기였다. 강아지를 키운다면 나는 무조건 잘해줄 자신이 있었고 행복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와 마음이 맞던 누나와 합심해서 엄마에게 강아지를 사달라고 조르기도 했다. 한마디로 ‘책임’을 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엄마는 단호했다. 키우자고 한 건 우리지만 결국 ‘책임’은 엄마 본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한다는 것을 꿰뚫어 본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나는 옥상 마당이 있는 집에서 오래된 아파트로 이사를 떠났다. 그때가 내가 11살 때였다. 어느 날 엄마와 누나 단둘이 외출을 했고 나는 TV와 컴퓨터를 오가며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문이 열리고 엄마와 누나를 마중하러 나간 내가 본 것은 다름 아닌 강아지였다. 강아지는 엄마 품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누런 장판에 어울리지 않는 순백의 강아지였다. 한참이나 신기해서 엎드려서 난 강아지가 움직이는 걸 구경했다. 만지고 싶었지만 만지면 내 손에서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먼저 앞섰다. 작은 덩치로 좁은 우리 집을 구경하던 강아지는 물도 먹고 사료도 먹으며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우리 집에는 강아지가 살게 됐다.


강아지의 이름은 큐비였다. 큐비라는 이름은 강아지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엄마가 인터넷 작명소에서 몇만 원을 지급하고 나서야 받은 이름이었다. 큐비는 그렇게 우리 집 식구가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온 지 3일이 지났을 무렵 큐비의 움직임은 현저히 느려졌고 사료도 먹지 않았다. 큐비 입 앞으로 사료를 가져다주어도 큐비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비상이 걸렸고 엄마와 누나는 큐비를 데리고 동물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다시 집에 돌아왔을 때는 통조림 하나와 다른 사료가 엄마 손에 들려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이것마저 먹지 않는다면 파양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고 엄마는 말했다. 환불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나의 첫 강아지이자 이제는 가족인 큐비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한참이나 나는 사료 한 알을 들고 큐비와 함께 누워있었다. 혹시나 큐비가 먹을까 말이다.

이틀 뒤 내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사료와 배변 패드만이 집에 덩그러니 남아있었다. 이곳저곳을 뒤져보아도 큐비는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었다고 내게 말했다. 나는 한참이나 큐비의 사료를 바라보았다. 조금이라도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헤어짐보다는 아쉬움이 먼저 들었다. 엄마는 내게 원래 아프던 강아지라 어쩔 수 없었다며 위로를 건네고는 배변 패드를 접어 쓰레기통에 버렸고 큐비가 있었던 흔적을 차차 지우기 시작했다. 여동생 큐비가 생긴 지 아니 우리 가족이 된 지 5일 만에 큐비는 홀연히 떠났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우린 모두가 처음이었다. 누나와 나에게 강아지가 가족이 되는 것은 처음이었고 큐비도 2개월도 채 되지 않고 엄마 품을 떠나 새로운 사람들의 가족이 된다는 것도 처음이었다. 엄마로서도 아픈 강아지를 키우는 것보다 분양비를 환불받고 돌려보내는 게 제일 나은 선택이 아니었을까? 짧은 시간이었지만 큐비를 만나 행복했다. 지금도 큐비가 생각나는 것 보면 그 순간이 어린 나에겐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 슬픈 마음보다 아쉽고 후련한 마음이 들었던 것은 이기적인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집이 꽤 힘들다는 걸 알고 있었고 큐비가 엄마의 또 다른 짐이 되지 않길 바랐다. 그래서 마음껏 엄마에게 짜증을 내고 우는 누나와 달리 그저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큐비가 건강했으면 좋겠고 밥도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여전하다. 나의 첫 번째 여동생이자 처음이었던 강아지 큐비는 행복했을 것이다. 좁은 우리집 아파트가 아닌 넓은 잔디마당이 있는 곳에서 뛰어놀며 견생을 보내며 맛있는 것도 마음껏 먹고 잠도 많이 자는 그런 삶을 살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래야 처음이라 못 해준 것이 너무 많으니까.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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