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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위티 Nov 19. 2022

군인에겐 '퇴사'가 없다

'휴직'도 없다

* 이번 글은 상반기에 저를 힘들게 했던 공황장애라는 녀석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수직적인 관료제 집단에 있거나, 경직된 분위기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제 글을 읽고 위로를 받으실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쓰다 보니, 글을 쓰며 치유가 되는 효과도 있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공황장애가 나타난 이유에 대해서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전혀 알지 못했다. 물론 아직도 그 이유를 추정할 뿐, 정확히 알지 못한다. 이전의 글인 '엄마, 숨이 잘 안 쉬어져요' 글을 참고하다 보면 알 수 있듯이 과거의 나는 그러한 공황장애의 전조증상들을 무시하고 부대에 복귀했다.




어느 순간부터, 그러한 숨이 안 쉬어지는 증상과 순간적인 어지러운 증상들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심할 때는 헛구역질까지 할 정도로 힘들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있는 부서가 부대 내 핵심 부서였고, 과장인 나는 내가 행정 업무 종합과 순기에 따른 사업들을 계획하고, 예산 편성 및 협조 업무들을 전반적으로 실시해야 하기 때문에 쉴 수 없었다. 당장 내 밑에 있는 담당들만 40명이 되었고, 내가 확인하고 신경 써야 하는 인원들은 400명이 넘는 인원이 있다. 내가 아프다고 당장 내 일을 하지 않으면, 예하에 있는 부서와 인원들이 고생하는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사관학교 생도 때 마음가짐 그대로 '아픈 것은 나약함의 상징이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픈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꾹꾹 참다 보니 어느샌가 망가져있는 내 모습이 보였다.



마음속 깊이 남아있는 우울감은 나의 주변인들에게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우울감에 잠식되어 가기 시작했고, 주변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기피하기 시작했다. 그때 남자 친구와도 헤어지고, 나는 퇴근을 하면 밖에서 허겁지겁 식사를 급히 때우고 집에 가서는 그냥 곯아떨어져서 자기 시작했다. 그 시기에는 정말 극단적인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출근하기 전에는 출근이 너무 하기 싫어서 그냥 교통사고가 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3주라도 입원해서 쉴 수 있지 않을까. 하루 종일 울리는 전화에 점점 예민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업무도 인간관계도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군인의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는, 군인은 퇴사가 안된다는 것이다. 퇴사를 한다고 해도 바로 퇴직이 되지 않는다. 특히나, 나처럼 의무복무기간을 갖는 사관학교 출신 군인은 더더욱 그렇다. (이는 군 의무복무 기간이 긴 장교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상황일 것이다.) 내가 이 집단을 바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의가사제대 말고는 없다. 퇴사라는 것이 없는 군인 집단에서, 출근을 하지 않는 것은 무단 군무 이탈이라는 어마 무시한 중징계 징계 사유에 해당되었다. 감히 추측 건데, 군대에서 수많은 극단적인 사고가 나는 이유도 우리에겐 "퇴직"과 "휴직"이라는 선택지가 어떠한 "중대한" 사유로 보고되지 않는 이상 불가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그때만 해도 모두의 사랑을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랬다. 그래서 회식 때도 여군이 술을 잘 마시면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았기에 숙취해소제도 꼬박꼬박 먹으며 열심히 회식을 다녔고, 선배들이 무엇을 시켜도 군말 없이 하려고 노력했다. 그것이 나에게 손해였던 행동이어도, 나는 하는 편에 속했던 것 같다. 그만큼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해서 지켜냈던 나의 평판, 나의 이미지를 한순간에 나락으로 보낼 수 있는 행동들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행동에는 나의 공황장애 증상들을 말하는 것이 있었다.



군에는 생활기록부가 있다. 이 생활기록부는 여태까지 같이 근무했던 인원들에 대한 상급자들의 평가가 있다. 만약 그 피평가자가 술을 좋아서 이전에 술을 마시고 실수를 하면, 생활기록부에는 술을 좋아해서 관련해서 사고를 쳤던 이력이 있다고 적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인원의 생활기록부를 읽는 모든 사람들은 그 피평가자에 대한 인상을 '술을 좋아하고, 사고를 칠 가능성이 높은 인원'으로 인지할 것이다. 나 또한 나의 부서에 있는 담당들이 처음 전입을 오면, 생활기록부를 정독하기 때문에 '생활기록부 = 첫인상'이라는 공식을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힘들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00 과장, 요즘 힘든 일 있나?"

"아뇨, 없습니다!"




나의 삶은 그렇게 망가져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더 지옥 같았던 순간들은 그 순간마다 내가 힘들었다는 것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서울에만 오면 나를 자랑스러워하는 부모님 앞에서 힘들다고 할 수가 없었다. 내 밑에 있는 40명의 담당들은 나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는데, 그들 앞에서 죽겠다고 할 수가 없었다. 동기들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느라 힘들었다. 내 주변 친구들은 나를 안타까워했지만, 그들은 나의 입장을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집을 둘러보니 24평이나 되는 아파트는 온갖 짐과 정리되지 않은 옷들로 너저분하게 있었다. 쓰레기도 방치가 되어 있었다. 4 kg나 빠져있는 몸은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없어 보였다. 주변 담당들도 내 모습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과장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

"요즘 실연당해서 힘이 없나 봐요."


다시 자리에 앉아서 힘없이 일을 하다가 다시 정신이 아득해졌다.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고 정말 죽을 것 같이 심장이 뛰었다.



해답이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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