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어서 말하자면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 또는 어떤 글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목표또는 지향점, 아니그렇게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단순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 희망이나 동경의 대상, 즉 "글 모델"을 잃어버린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작가나 장르는 있다. 밝고 위트 넘치는 에세이, 그리고 경쾌하면서도 반전 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의 저자 하완 님과 신간 "마흔에 글을 쓴다는 것"의 작가 권수호 님(현재 내가 유령회원으로 활동 중인 글쓰기 모임 라라크루의 리더)의 글결을 좋아한다. 해외 작가 중에는 "퇴사하겠습니다"의 이나가키 에미코와 "공중그네"로 유명한 오쿠다 히데오의 팬이며 지금도 가금 생각날 때마다 그들의 책을 꺼내서 읽곤 한다.
2021년 가을, 처음 브런치를 열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도 이들처럼 피식피식 유쾌한 웃음이 새어 나오는 글을 써보겠노라는 가열찬 열정을 품었더랬다.
그러나 밝은 글을 쓰기엔 내겐 생각보다 어두운 부분이 많았다. 위트 있는 표현이 바로 튀어나올 만큼 센스 있는 사람도 아니었다. 하루아침에 제대로 된 흥미로운 글이 나올 수 없는 건 당연지사겠지만, "내 안의 나"를 재료 삼아 밝고 위트 넘치는 에세이를 쓸 만큼 애초에 밝고 위트 넘치는 부류가 아니었던 것이다. 오히려 글을 쓰면 쓸수록 쓸데없이 진지한 구석이 삐죽삐죽튀어나왔다.
그렇다면 차라리 차분한 글을 좀 써볼까 싶었다. 그런데 마음속 깊은 곳까지 내려갈 때마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해야 해서 머리가 지끈거렸다. 순간순간 마음의 상태를 무언가에 빗대어 표현하는 것은 그나마 할 만했으나 긴 호흡으로 끌어나가기엔 그 깊이가너무나도얕았다. 이따금 어두침침한 글이 나오면 마음마저 우울해져서 퇴고하고 싶지도 않았다. 힐링될 만한 글을 쓰기엔 나 스스로가 그다지 긍정적인 사람이 못 되었다.
이 세상에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없는 듯 보였다. 내 삶을 쓰고 싶은데 쓰지 못하니 괴로웠다. 어느덧 친구처럼 다정했던 글쓰기는 원수로 변했고, 천사같이 친절했던 글쓰기는 악마처럼 보였다. 짝사랑하는 이를 바라보듯 달콤한 미소 사이로 씁쓸한 눈물 자욱이 스몄다.
하지만 이별은 쉽지 않았다. 원수라도 악마라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짝사랑의 괴로움에 놓아버린다면 20년 후에, "글쓰기라도 꾸준히 해볼걸"이라며 허탈하게 껄껄 웃는 할미 껄무새가 될 것 같았다. 내가 원하는 인생 후반의 모습은 아니었다. 두려웠다.
그래서 일단 도전해 보기로 했다. 내가 아닌 "상상의 인물"을 재료로 삼아 주제넘게도 남의 인생을 이야기해 보는 거다. 글쓰기도 초초초초초짜인 주제에 말이다. 한 유명 블로거가 자신의 행동지침이라 말했던 '확 그냥, 막 그냥'의 정신으로 내 입맛에 맞는 경쾌하고 반전 있는(있어야 할 텐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글쓰기를 포기하기 싫어서 소설을 쓰다니, 이상하고도 기묘한 반전이 아닌가? 그런데소설 쓰기가 생각보다 재미있다. 이것이야말로 대반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