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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Dec 13. 2023

아프고 바빠도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핑계와 무리 사이

해마다 11월이면 혹독한 겨울맞이가 시작된다. 


조금만 얇게 입고 나가도 찬 공기는 금세 몸을 휘감고, 머리를 약간만 덜 말려도 찬 바람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집안이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 이불 교체 시기가 조금만 늦어져도, 난방 온도를 높이는 타이밍을 살짝 놓쳐도 자비 없이 체온 조절에 실패한다. 


팔뚝에 으슬으슬한 기운이 스친다 싶어 옷을 껴 입고 목도리를 둘둘 감아도 이미 늦었다. 따뜻한 차를 주야장천 마셔보지만 별다른 차도 없이 화장실 가는 횟수만 늘어날 뿐이다. 이내 목이 따끔거리다 콧물이 줄줄 나온다. 몸살약 한 알로 끝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부정하고 싶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최소 3박 4일은 끙끙 앓아야 지나가는 겨울맞이 불청객이 찾아왔다는 것을. 이비인후과로 향한다. 


감기가 물러갔다 싶으면 어김없이 그 자리엔 장염이 찾아온다. 항생제의 끝자락에는 늘 배탈이라는 악마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 감기가 나았다는 안도감에 그쪽에는 미처 신경 쓰지 못하는 틈을 악마가 놓칠 리 없다. 아이스 라테 한 잔에 실려 사악한 미소와 함께 내장에 들어앉는다. 이번에는 내과에 갈 차례다. 


올해는 무사히 넘어가주길 바랐지만, 지난해에 비해 살 날이 365일 줄어든 만큼 몸이 드라마틱하게 건강해졌기를 바라는 건 욕심일 것이다. 불청객 감기와 장염 악마는 올해도 찾아왔고, 11월의 대부분은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한 채 이들에게 지배당해 버렸다. 


브런치 글쓰기는커녕, 일기장도 제대로 들춰보지 못한 채 11월이 지났다.



12월이 되어 컨디션이 돌아온 만큼 밀린 일을 해야 했다. 한창 보고서를 쓰던 중에 감기가 시작되었고 곧이어 장염까지 앓게 된 통에 틈틈이 작성해 두었어야 할 보고서는 한산하다 못해 황량했다. 목차만 덜렁 남겨진 보고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한숨이 나왔다. 


보고서 마감일은 코 앞으로 다가왔으나 예전에 찾아놨던 자료들을 다시 들춰보아도 도무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분명히 그때 미리 스터디해두었지만 다시 백지상태로 돌아온 것이다. 본디 공부의 기본은 몰입이건만, 몰입의 전초 단계인 집중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좋아. 집중해 보는 거야!"라고 파이팅을 외쳐본 들 집 나간 집중력이 돌아올 리 없었다. 


일주일을 이렇게 흘려보냈다. 


예전에는 마감일이 다가오면 초인적인 힘이 발휘되기도 했었는데,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지금은 어째 합리화할 요령만 늘은 듯하다. 초능력을 빌어봤자 내 몸만 상한다는 걸 여러 번 경험한 터라, "보고서는 원래 던져 버리는 것"이라는 만고의 진리가 먼저 떠올랐다. 게다가 연말이 아닌가. 모두들 실적 채우기에 여념이 없는 시기인 만큼 트렌드 동향 보고서는 유심히 살펴보지 않을 것이다. 쉬운 길로 가기로 했다. 디자인 따위 세심하게 신경 쓰지 말고 단순하게, 참신한 내용을 넣는 답시고 고생하지 말고 무난하게 말이다. 자칫 난해한 방향으로 흘러갔다간 질문만 유발할 뿐이니까.


쉽게 쓰기로 했어도 작성에 필요한 물리적인 시간은 필요했다. 


글쓰기는 또 후순위로 밀렸다. 12월도 절반 가량 지나버렸다.



늘 그랬다. 


아프거나 바쁠 때면 글쓰기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아플 땐 돈벌이하는 것만으로도 애를 써야 했고, 바쁠 때 역시 돈벌이하는 것만으로도 이빨을 꽉 깨물어야 했다.


쉬어야 할 때 글을 쓰는 것은 안 그래도 없는 에너지를 끌어다 써야 하는 일이었고, 일해야 할 때 글을 쓰는 것은 정신 나간 일이 아닐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 년에 한두 번은 꼬박 아프고, 일 년에 서너 번은 정신없이 바쁘니 일 년에 대 여섯 번은 글쓰기를 멈추게 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글쓰기를 취미로 삼았던 지난 2년간도 그랬다.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쓰고 싶지만 무리해서 쓰는 것은 미련 맞아 보여서 자연스레 멈추었다. 


그러나 멈추기를 선택한다면, 다시 돌아왔을 때 멈춘 곳이 아닌 한 발짝 뒤에서 다시 시작된다는 것 또한 수용해야 한다. 쓰다만 보고서를 멍하니 바라보던 것처럼, 요 며칠 나는 뭐부터 써야 할지 몰라 하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다 창을 닫아버리곤 했다. 새삼 글쓰기가 낯설어졌다. 아프거나 바쁘다는 핑계 대지 말고 계속 써볼 걸, 후회가 밀려왔다.  


글쓰기는 진짜 '무리'였던 것일까? 아니면 '핑계' 뒤에 슬그머니 숨고 싶었던 것일까?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꾸준한 글쓰기의 어려움을 다시금 절감하는 날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감기가 걸려도 머리가 아파도 꾸준히 쓰는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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