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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라미 Mar 22. 2024

아름다운 할배들을 떠올리며 쓰는 글

관조

오전 10시. 카페 앞에 도착하니 7~8명 가량이 줄을 서 있었다. 구글맵에는 분명 '평소 대비 한산'이라 나와 있었기에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다. 2박 3일간 스마트한 녀석이라며 기특해했던 오달진 마음이 쏙 들어가 버렸다.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오는 항공 일정이 이미 정해져 있는 데다 8명이 이 시간에 캐리어를 끌고 딱히 갈 곳도 없어 일단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5분쯤 지났을까? 중후한 나잇대라고 하기엔 좀 더 허리가 구부정한 일본 할아버지 한 분이 밖으로 나오셨다. 하얀 셔츠에 까만 정장팬츠, 그리고 넥타이가 깔끔하고 격식 있는 인상을 주었다.


8명이라고 했더니, 공간이 좁아 두 팀으로 나눠 앉아도 되냐며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연신 허리를 굽신거리신다. 나는 괜찮다 말하며 할아버지의 리듬에 맞춰 덩달아 허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반복했다.


30분 가량 지난 후, 할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로 우리를 안내했다. 실내는 하릴없이 고전적인 향기가 풍겼다.  멋대로 시대를 하염없이 거슬러 어느 화가의 그림에서 본 듯한 19세기 유럽의 카페를 떠올렸다.


오픈형 주방에는 또 한 분의 할아버지가 커피와 토스트를 만들고 계셨다. 그러나 만석이 이어지는 카페의 주방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손놀림은 비현실적으로 평화로웠다. 평화를 머금은 공기는 1인석에 둘러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이나 신문을 읽고 있는 할아버지들과 이어져 있었다. 시선은 그날의 신문이 꽂혀 있는 테이블 옆 바구니로 옮겨갔다. 그마저도 가지런하고 정갈했다. 그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완전무결한 조화를 이루는 듯했다.


홀 담당 할아버지는 한 명 한 명 앞에 정성스럽게 물컵과 앞접시를 내려놓고는 테이블 냅킨 4개를 가져와 이 또한 하나씩 펼쳐서 깍뜻하게 한 명 한 명의 손에 전달해 주셨다. 면소재의 냅킨에서 보송보송한 감촉이 느껴졌다. 정성스럽게 빨아 충분한 시간을 들여 말려놓았음이 분명하.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시간은 천천히 흐르다 못해 멈춰 섰다. 그래서일까?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블랙커피는 한없이 진했고 카페오레용 우유는 한없이 고소했다는 기억뿐이다. 때로는 스쳐가는 이야기가 중요하지 않을 때도 있다. 진한 향기와 고소한 맛으로 마음까지 채울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함께 여행했던 친구 부부가 카페를 나오면서 말했다.

 

"우리 사실 어젯밤에 조금 다퉜는데 할아버지들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는지 마음이 다 녹아버렸어. 어느새 우리 둘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고 있더라고."


그들의 시간마저 돌려 세운 그곳의 풍광은 아직 겨울이 웅크리고 있던 마음에 봄을 선물해 주었다.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온기가 온몸을 감싸는 기분이  들었는데, 찰나 힐링으로 스쳐 지나 않도록 이 감각을 붙잡아두고 싶었다. 혼혼함을 오래도록 머물게 할 단어를 쥐어짜다 쇼펜 하우어가 떠올랐다. 차갑게 뼈를 때리며 마음을 데워주었던 문장  그 말은 아름다움이었다.

달은 왜 아름다운가. 이는 우리가 달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욕망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고통이지만, 욕망에서 벗어난 순수한 관조의 눈으로 보면 세상은 아름다움이다.
- 사는 게 고통일 때, 쇼펜 하우어 (박찬국)

#라라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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