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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Aug 03. 2022

공간을 찾아가는 행위에 대하여

저는 지금 제주예요.

제주에 왔다.

살면서 처음으로 3박 4일의 짧은 여행을 ‘혼자’하는 중이다.

남편이 적극 찾아봐 준 게스트 하우 슨 서귀포 쪽에 위치한 사람들의 발길이 드문 곳이다. 반면 사장님은 아주 쾌활하셔서 조용한 동네를 한껏 밝게 띄운다.


숙소에서 걸어 10분 거리에 있는 마트에서 1인분 어치의 먹을거리를 사들고 사방이 뚫린 루프탑 바에 앉았다. 표현할 길 없는 태양빛이 구름 사이사이를 물들여놓고 있을 때, 축축한 바람이 살결에 닿을 때 잠잠한 평화가 찾아왔다. 말을 잃어버려도 좋을 거 같은 순간 눈물을 지그시 누르고 밤공기를 눈이 시리도록 바라봤다.


숙소2층 루프탑


이 공간에 지나가는 손님으로 첫발을 딛는 순간, 나는 다시 오리라는 것을 예감한다. 곳곳에 놓인 먼지 쌓인 만화책과 한 데 모아 놓은 미니어처 장난감들 깨끗하게 정돈된 방에서 포근한 향이 났다. 날이 밝으면 노련한 손끝에서 탄생하는 숙소의 시그니처 조식은 사장님의 자부심이 듬뿍 담겨 오성급 호텔 조식이 부럽지 않다. 처음 보는 이들과 조심스러운 인사를 나누며 함께 조식을 먹는다. 예의와 배려를 두른 사람들은 함께 머문 공간에서 두터운 동지애로 각자의 여행을 돕는다.


오늘 조식은 갓 나온 빵과 과일 샐러드


운진항으로 향했다. 다시 한번 찾아가는 가파도. 내가 사랑하는 공간. 내게 있어 여행은 사랑하는 ‘공간’을 다시 한번 찾아가는 행위와 같았다. 아니 어쩌면 공간에 대한 집착과 짝사랑이 다인지도 모르겠다. 말없는 공간에 대한 애절함으로 답변 없는 이 작은 섬에 오고 싶어서 제주에 왔다. 자전거를 빌려 특별한 나의 가파도를 돌아보고 싶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작은 상점들을 놓치지 않고 자전거를 세웠다. “오늘 너무 덥지 않나요?” 검게 그을린 얼굴로 섬사람이 물어오면 “아뇨, 전 더위는 잘 참는데, 추운 건 끔찍해요” “저도 그래요” 하얀 치아가 유난하게 빛난다. 내 얼굴을 꼭 기억하겠다 했던 분과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자전거 페달이 굴러간다.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덮는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뭉게구름이 아기의 살처럼 뽀얗다. 바다의 짠내와 비린내가 코끝에서 초록잎들이 눈앞에서 넘실거린다. 황화코스모스가 펄펄 끓는 태양열 아래에서 바닷바람에 나부끼며 춤을 춘다.

가파도의 한여름이다.


날 것 가파도


공간을 찾아가는 행위. 무엇도 하지 않은 채로 오래오래 머물고만 싶어서 찾아가는 곳. 그 공간이 당도했다는 기쁨과 충만함 기어이 보러 왔다는 쓸모없는 자부심. 공간에서 피어날 추억과 감정, 새로운 나에 대한 탐색과 경험이 가능하니까. 오래 머문 채로 그날의 지는 석양 앞에 서 있으면 내 여행은 사소하게 완벽했다. 나는 의외로 게으른 여행자였다.


우리들의 블루스 촬영지

가파도 #꼬닥꼬닥걸으멍 카페에서 2시간째 앉아서 끄적였어요. 퇴고를 작가님들처럼 많이 하진 않지만 그래도 대여섯 번은 하는데 이건 그대로 올려요. (하든 안 하든 부족한 글입니다. ㅎㅎ)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감사한 것들이 많은 여름을 보내는 중이에요. 내내 행복하시고 평안하시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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