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arenB Oct 06. 2022

당신의 특이함을 사랑합니다.

나는 그저 '나'인 채로 존중받아야 하죠.

 두 번째 악몽을 꾼 건, 남편과 다툰 이틀 뒤 거실에서였다.  


고등학교 때 자주 가위에 눌렸던 건 예민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18평 작은 집에서 시계의 초침 소리만이 귀에 박히거나, 목을 감싸는 이불의 촉감이 꼭 귀신이라 불릴 수 있는 존재가 내 주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런 느낌이 진한 날에는 반드시 가위에 눌렸다. 아무도 모르는 그 전쟁 같은 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는 거였다. 몸은 꼼짝 할 수 없어도 정신과 마음은 압도당하지 않도록 고요 속에서 처절하게 외쳤다. 성인이 되고서는 잠이 편안해졌다. 가위에 눌리는 일도 적었다. 결혼하고서는 더 이상 없었다.  


 결혼 생활에서 부부싸움은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다투지 않고 사는 부부는 없지 않을까. 나를 송두리째 잡아먹던 사랑의 황홀경이 사라지고 현실의 퍽퍽함이 더 오래 내 감정을 뒤흔들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우리가 나누던 '사랑'을 오래 기억하고 삶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의 행복을 유지하고자 서로의 애씀을 보며 동지애를 느낀다. 최근 다툼에서 남편이 뱉은 말을 끝없이 생각했다. 그 생각을 잘근잘근 씹어먹으며 심판대에 '나'를 세워두고 하나하나 따지다 보니, 그날 밤 악몽을 꾼 건가 싶었다.   


 가을이 제 옷을 잘 입고 기분 좋은 공기를 실어 나르던 저녁이었다. 우리의 다툼에 '정신병자' '사회 부적응자' '보통 사람' '특이함' 이와 같은 단어들이 등장했다. 일반적이지 않다, 는 그의 말을 처음 들은 것도 아닌데 조금씩 그 말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아니 대놓고 이젠 그 말이 불편하다고 말했다. 자연스러운 것에 익숙해진 탓에 마치 그게 당연하다는 듯 무엇이 조금만 달라도 시선과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들의 무자비한 말들을 불편해하기로 마음먹었다. 비장애인인 우리가 장애인을 보는 시선이 이와 같은 불편함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라는 말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남편의 그런 말이 실망스러웠다. 물론 존경하기를 마다 하지 않던 그지만 역시나 남편의 그런 가치관은 도무지 수용이 되지 않았다. 그럼 어떤 말을 해야 나도 보편적 다수의 사람일까. 골이 딩딩 거려 그들이 말하는 보편적 다수의 사람들 속에 속하길 거부하기로 했다. 우리는 일반적이기도 하고, 특이하기도 하고, 독특하기도 하다. 또는 그 무엇이 아니라 해서 잘못이 아니다. 중요한 건 고유한 인격체라는 사실. '무엇'으로 사람을 속단할 수 있을까. 사람을 가를 수 있는 권리가 우리에게 있나.


 나는 '화'를 아주 많이 냈고, 그 화는 좀처럼 식지 않았고, 아마도 그날 밤의 악몽을 데려 왔던 듯싶다. 목과 겨드랑이 주변으로 이리 와 이리 와 하던 끔찍한 촉감에 돌연 잠에서 깼고, 곧 내 몸이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걸 감지했다. 이쪽으로 몸을 움직이고 싶은데 내 의지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느낌은 여전히 불쾌한 것이었다. 끅끅거리며 고함을 친 소리가 내 귀로 꽂혔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의 밤. 저리 가! 저리 가! 악몽을 꾼 뒤로 나는 맨 정신으로 꼬박 일주일을 더 앓았다. 불쾌하고 마음을 어지럽히는 그날 밤의 기분 나쁜 촉감이 목 언저리에서 종일 느껴져 부러 기분 좋은 음악을 골라 들었다.     


 세상엔 셀 수도 없이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다고 해서 모두의 생각과 다르다 해서 내가 우리가 저 사람을 '특이'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특이' 하지 않는 건 무엇이냐고도 물었다. 일반적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해, 와 같은 폭력적인 말. 일반적인 범주에 들지 못했다는 자책과 의기소침. 내 존재가 무가치하다고 느끼게끔 하는 발언들. 그와 난 그날 밤이 지나고도 한낮에 카페에 앉아서 이런 화두로 논쟁을 벌였다. 당신의 화가 내가 일반적이지 않아서냐고, 아니라면 우리의 다툼에 나를 규정짓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고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었다. 다만, 나는 당신이 조금은 더 넓은 사고로 사람을 바라보고 이해하길 바란다는 부탁을 했다. 편협하고 좁은 시야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고 당신이 만든 범주에 사람을 넣지 말아 달라고 거듭 이야기했다. 

딸은 그와 나의 선택으로 '장애' 진단을 받을 수도 있는 경계 수준에 있는 아이다. 비장애인으로 살기를 바랐던 이유는 단 하나였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시선'에 자유롭지 못한 나를 느끼며 나의 부족함을 매일 마음에 새긴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딸을 어설프게 알던 사람들은 딸이 어딘가 이상하다고 반드시 느낄 것이다. 나는 그런 이상함이 이상함이 아닌, 내 눈에만 익숙한 것만 자연스러운 것이 아닌, 이상함 조차 자연스러운 세상에서 내 딸이 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신과 같은 시선으로 내 딸도 누군가는 그렇게 보지 않겠느냐고. 그렇다면 우리 딸은 일반적인 범주에 드는 사람이냐고. 도대체 그건 어떤 기준이냐고. 적어도 우린 그러지 말자고 간절해졌다.  


 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지 않았다. 너무 괴리감이 커서. 착각하고 싶지 않아서. 한쪽으로 기울게 되는 편견이 생길 거 같기도 해서. 현실과 많이 다르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최근 유 퀴즈에 배우 박은빈 님이 나온 것을 봤다. 우영우를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자 덩달아 마음이 시큰했다. 우린 자꾸 '다르게' 보려고 하는 시선을 먼저 거둬야 한다. 그건 정말 별 거 아닌 거라 놓치지 말고 애써야 하는 부분이다. 의식과 사고 자체를 탈바꿈해야 한다. 내 옆에 나와 다른 사람이 지나가도 나와 같은 사람을 보는 것처럼 하는 무신경함이 그들에게 똑같이 행해져야 한다. 무신경은 그럴 때 필요하다. 편견에서 비롯된 관심이 아닌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사고는 차별에서 비롯된 친절과 구별된다.    


내 앞에 놓인 수식어가 나를 다 설명할 수 없다. 선택 없이 세상에 태어났으니, 그저 우린 모두 '자기'인 채로 존중받고 사랑받고, 격려받아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정상은 아니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