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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renB Oct 17. 2022

J와 루앙프라방의 화장실

 J 유독 '화장실' 앞에서 겁먹은 표정이 되곤 한다. 나는 그의 그런 표정이 우스꽝스럽다가도 제가  저러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리곤 했다. 화장실에 가는 거 조차 큰 결심이 필요한 친구였다. 꾸역꾸역  앞에 당도해서는 겁을 잔뜩 먹은  가운데 손가락  옆으로 검지와 약지를 붙여 문을 살포시 민다. 변기의 뚜껑이 닫혀 있으면 지체 없이 다음칸으로 향한다.(다짜고짜 변기 뚜껑을 여는 나와는 다르다) 반드시 뚜껑이 열린  무엇도 담기지 않은 변기여야 한다. 만약 무엇이 담겨 있다면 탄식과 함께  눈을 질끈 감고는 나지막이 욕설을 내뿜는다.  


그녀가 화장실에  가지 않는다고 처음으로 느낀 때는  번째 라오스, 루앙프라방에서였다. 허름한 방에 침대  개와 기본에 충실한 화장실과 기다란  옆으론 거울이 있었던- N 잡아준 게하에서 우린 그날의 첫 볼 일을 봤을 테다. 고민 없이  일도 마치고 개운한 얼굴로 툭툭이를 타고 꽝시로 향했을 . 치장하지 않은  놓여 있던 꽝시의 폭포는 낮은음을 내며 하얀 파문을 연신 일으키고 있었다. 작고 안전한 파문에 몸을 넣은 채였다. 툭툭이 기사와 게하로 돌아가기 위한 약속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고, 꽁꽁 묶어 두었던 방광은 어느새 한계에 다다라 가고 있음을 느꼈다. 우린  앞에 있는 화장실에 갈지 말지를 두고 십여 분간을 떠들었다. 가지 않겠다고 결심한 J 앞에서 나는 방광을 부여잡은  발을 동동 굴렸다. 누가 봐도 공포(?)스러운 화장실을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았다. 계속되는 나의 설득에 그녀는 저 화장실에 가면 끝장이라는 듯, 확고부동이었다아랫배가 빵빵해진  통증까지 몰려오고 있어 나는 체념한 채 화장실로 냅다 뛰었다.


 화장실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또는 생활 수준 같은 것을 품고 있다. 그 나라 얼굴이기도 하지. 그래서 우린 집에 손님을 초대해 놓고 화장실 청소부터 하지 않던가. 문도 없고 휴지 대신 호스가 달려 있던 인도의 화장실이나, 사람 얼굴을 보고 앉아 있었던 중국의 어느 화장실이나, 문화 충격인 화장실을 나름 접했다고 자부 하지만... 루앙의 화장실만큼 더러운 화장실을 본 적이 없었다. 아마도 그보다 더 한 화장실은 없을 것이다.


일을 마치고 온 내 표정이 어떠했으리라는 짐작을 해 본 적이 없다. 다만, J는 내 표정을 보고 저 화장실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한 깊은 안도를 했다. 그녀는 킥킥거리며 내가 루앙의 화장실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묘사해 주길 바랐다. 못 볼 꼴을 보고 온 사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으로 최악이라는 말만 되풀이했을 뿐. 끔찍한 화장실을 보고 온 것에 대한 그녀의 호기심 따위를 충족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너무 충격적인 모습이 자꾸 뇌리에 남아 하루빨리 떨쳐 버리는 게 급선무였다. 어쨌든 나는 그런(?) 곳에서 시원하게 볼 일을 봤다.


 이 작은 해프닝 뒤로 J는 화장실 가기를 더 꺼려했다. '나 잘 참잖아' 씩씩한 목소리완 달리 얼굴은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 흰자와 거뭇한 다크가 더 활기를 띄었다. 그녀의 흰자가 점점 노른자가 되어가자 나는 마음을 다해 설득하기 시작했다. 설득은 라오스든 한국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도 때도 없고, 들쑥날쑥했다.  


  "왜 참아? 화장실 가자. 너 지금 흰자 노랗게 떴어"

  "깨끗해. 진짜 저 정도면 양반이야"

  "화장실에서 노래도 나오고 향기로운 냄새도 나" 

  "왜 소변을 참아?? 그냥 가라니까!!!"


어느 날은, 꺼내지 못하고 고민했던 말을 꺼냈다.


  "화장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어?"


그녀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고 대차게 웃었다. 따라 웃지 못한 나는 더 골똘해졌다.

또, 어느 날은, 굉장히 진지한 말투로 이렇게도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은 화장실이 아니야. 사람 속내야 속내. 결국 더러운 것은 사람으로부터 나오지"


눈밑이 거뭇해 지거나 노란색의 흰자가 흰자인지 분간이 안 가던 J의 참아내던 얼굴을 보는 게 괴로워 이따금씩 툭툭 뱉어낸 말을 그녀는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참아내지 않아도 되는 참아냄을 좀 덜어 주고 싶어서 나는 그녀의 멍한 얼굴을 보며 떠들었다. 노랗게 뜬 흰자나 거뭇하게 내려온 다크서클을 보면 그녀의 상태가 짐작이 되곤 했다. 굳건한 의지가 한 풀 꺾였다고 느끼지도 못했는데 J는 마침내 결심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혼자 갈게" 뒤이어 말을 잇는다. 

   "이젠 참지 않기로 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J가 그 루앙의 화장실을 보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유별난 화장실 공포가 더 가중되지 않았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더러움의 총집합체인 루앙의 화장실을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즐겁다. 그녀의 상상에 보태는 현란하고 오버스러운 표현으로 우리의 이야기는 애틋함을 가장한 우스운 추억이 된다. 굳이 들어내지 않는 서로의 취향과 단점까지 알고 있는 우리가 마음속 깊이 애잔하다가도 내 단점을 네가 들추는 거 같으면 벌컥벌컥 화가 솟구친다. 너도 그래? 엄마도 모르는 단점을 안다던가, 참지 않고 서로에게 함부로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를 실감한다.  


얼마 전, 화장실 문을 열며 그녀는 말했다. 

"나는 화장실 공포가 있지" 그녀의 입으로 들었던 그 말에 나는 뜬금없이 기분이 좋은 채로 그녀를 와락 안고 싶어 졌었다. 스스로를 인정하는 긍정의 말. 그녀와 한낮의 루앙의 거리를 걷다 우리의 추억이 스민 유토피아에 들려 비어라오 골드와 수제버거를 먹다, 이렇게 말할 테다. 그러고 보면 라오스에서 이 말만큼 꼬박꼬박 챙겨 한 말도 없다. 


"화장실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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