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몇 개월 간 내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해주었다. 미안하지만 그 역할을 잘해주었다고는 못하겠다. 내가 우울증을 갖게 된 것에는 남편의 영향도 컸고 (직접적이진 않았지만 남편의 어떠한 결정들과 그로 인해 일어난 일련의 일들), 두 번의 이민을 함께 하면서 산전수전 같이 겪었다고 하지만 나도 몰랐던 나의 밑바닥까지 싹싹 긁어 보인 건 처음이라 남편 역시 달라진 나의 모습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더군다나 그의 MBTI는 무려 ESTJ이다. (나는 그 정 반대인 INFP.. 할말하않) 공감 능력은 매우 없는 편이며, 내가 불안함, 우울함, 자괴감과 허탈감 등의 감정으로 괴로워하면 그는 자꾸 그것을 해결해 주려고 해서 우리는 자꾸 부딪혔다.
지금으로서의 나는 해결사보다는 그냥 옆에서 묵묵히 들어주고 안아줄 사람이 필요했다. 남편은 항상 내 옆에 있어주기는 했지만, 그놈의 묵묵히가 안되었다. 그래서 차라리 혼자 있고 싶을 때가 많았다. 하지만 또 남편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분리불안이 있는 강아지마냥 미친 듯이 불안했다. 남편도 나도 미칠 노릇이었다.
심리 상담 선생님께 가장 위로받고 싶은 사람은 나를 위로해 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한다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나를 위로할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고 하셨다. 하지만 자기혐오의 감정으로 가득 찬 나로서 도저히 스스로를 위로할 수 없지 않은가.
처음 우울증 약을 처방받은 날 한국에 있는 남동생에게 전화를 해 내가 공황 장애와 우울증이 생겼으며 약을 먹기 시작했다고 알려주었다. 약까지 먹기 시작한 마당에 한국에 있는 가족 중에 단 한 명이라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였고, 사실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라도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괜찮아. 너무 안 좋게 생각할 것 없어. 살다 보면 그럴 수 있어."
동생은 놀라지도, 당황하지도 않았다. 동생에게 전화를 걸 때는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반응하는 동생을 보니 마음속에 솟구치던 파도가 순식간에 잠잠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누나를 한 방에 낫게 할 방법이 있는데. 짠, OO를 보면 싹 낫지!"
그리고 동생은 이제 두 살이 된 동생의 딸, 내 조카를 번쩍 들어다가 영상 통화 화면 앞에 갖다 놓았다. 동생이 전화를 막 받았을 때만 해도 내 눈에는 눈물이 찰랑찰랑 언제라도 울 준비가 되어있는 상태였는데 OO를 보니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우리는 나의 공황 장애와 우울증이라는 축 처지는 주제 대신 요즘 자기주장이 생긴 조카 OO이, 해외에 사는 사촌오빠 등 우울 밖의 이야기로 통화를 이어 나갔다. 잠깐이라도 끈질기고 지독하게 나를 괴롭히던 우울이란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통화 막바지에 동생이 말했다.
"누나. 나는 누나가 부러웠어."
동생은 동생이 살고 싶은 삶을,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삶을 사는 것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동생이 나를 부러워하는지 몰랐다.
아니, 사실은 알면서도 외면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한국을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사는 동안 내 동생은 한국에 남아 장녀인 내가 해야 할 일들을 도맡아 했다. 가족의 대소사를 챙기고, 부모님이 아프실 때 돌보고, 십몇년을 키웠던 강아지를 하늘로 보내주고, 번듯한 처자와 결혼해 손주를 안겨드린 것도 동생이 먼저였다. 동생이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면 나는 그냥 철부지일 뿐이다.
나는 자유롭지만 또 자유롭지 않다. 새장은 활짝 열려있지만 날개가 부러져서 날 수가 없는 새처럼. 하지만 세상 어딘가에는 창문조차 없어 밖을 내다볼 수 없는 곳에서 날개가 부러진 새를 부러워하는 존재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 지금 나처럼 날개가 부러진 사람이 있다면 내가 지금 벗어나고 싶은 이 삶이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삶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도록 하자.
심연 깊은 곳으로 침잠하고 싶을 때마다 동생이 했던 말을 기억해야겠다.
괜찮다. 너무 안 좋게 생각할 것 없다. 살다 보면 그럴 수 있다. 괜찮다.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