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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 Feb 22. 2024

씨엠립에서 프놈펜으로

행복에 이르는 길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 프놈펜으로 내려와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고 있다. 씨엠립에서 나는 죽을 것 같이 고독했다. 우울과 싸우고 있는 나를 응원하던 남편이 있었지만 내 고독은 채워지지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은 한숨이었다. '하. 오늘도 눈이 떠졌네.' 우울증을 몸소 겪게 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는데, 바로 우울함은 아침에 가장 세게 온다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아침을 맞는 순간부터 우울이 시작되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불면 증상은 없어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다시 잘 수 있는 밤이 되길 기다렸다.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것이 인생의 낙이었는데, 식욕이 완전히 사라져 누군가 억지로 떠먹이지 않고서는 먹고 싶은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았다. 남편이 챙겨주지 않았다면 나는 며칠이고 굶어 아사 직전까지 갔었을 수도 있다. 살도 많이 빠졌다. 안 그래도 30대 중후반으로 늙어가는 와중에 살까지 빠지니 정말 볼품이 없어졌다.


남편은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남편이 얼마나 미웠는지 모른다. 나는 우울이라는 보이지도 않는 어떤 존재가 나를 너무도 무겁게 짓눌러 침대에서 움직일 수도 없는데, 거뜬히 일어나 양치를 하는 모습이 미웠다. 내 불안도가 최고치였던 것을 알면서 거칠게 운전하는 모습이 미웠다.(순전히 내 기준으로)


나를 환자 다루듯이 대할 때도 짜증 났고, 일반인 대하듯이 대할 때는 더 짜증이 났다. '우울증도 병이라고. 너 내가 암이 걸렸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너 마음가짐을 고친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암이 고쳐지는 거 봤어?' 이렇게 엄청나게 상처 주는 말도 많이 했다.  


우울증은 가까운 사람을 적으로 만들기 딱 쉬운 병이다. 약을 먹고 약간은 정신을 차린 지금은 남편을 이해할 수 있다. 나도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남편이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어쨌든 나는 씨엠립에는 있을 수가 없었다. 불행한 게 억울했다. 불행한 게 죽도록 억울했다. 불행한 것을 참으면서 씨엠립에 있고 싶지는 않았다.


나에게 남편은 너무 편한 사람이라 내 감정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미 내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 보여준 남편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를 땅 속까지 끌고 갈 수는 없었다. 시부모님과 함께 지내면서 억지로라도 웃고, 괜찮은 척이라도 하면 사람의 모습은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 억지가 조금이라도 진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편도 숨 쉴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상의 끝에 우리는 당분간 프놈펜에 있는 시댁에 있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두 노인과 함께 사는 삶은 나쁘지 않다. (시부모님은 우리 엄마, 아빠와 띠동갑 이상으로 나이가 많으시다) 아주 단조롭고, 규칙적이다. 삶의 속도도 빠르지 않다. 30분이면 걸을 거리를 45분, 한 시간이 되도록 걸어도 무어라 하는 사람이 없다. 마당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한없이 멍을 때려도 알아채는 사람이 없다.


나의 아주 미미한 프랑스어로 (또는 캄보디아어), 시부모님의 브로큰 잉글리시로 대화를 하면 대화를 길게 하고 싶어도 길게 할 수 없어서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많지만 그 누구도 어색해하지 않는다.


정신없이 쉬지 않고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만 멈춰 있는 느낌이 견딜 수 없이 힘들었는데, 같이 느리게 가 주는 동지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행복해지고 있나? 아직 잘 모르겠다. 불행의 끝에서 바라보는 행복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진다.


그렇다면 행복에 이르고 싶나? 그렇다. 한 때는 행복하지 않아도 좋으니 불행에서 벗어나게만 해 주세요라고 바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아니다. 행복하고 싶다. 아니, 행복을 되찾고 싶다.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나는 행복을 아는 사람이다.


내가 너무 열심히 달려와서, 옆도 안 보고 뒤도 안 보고, 위도, 아래도 안 보고 너무 앞만 보고 달려와서 큰 구덩이가 눈앞에 있는 줄 모르고 푹하고 빠져버린 거다. 그러니 이번에는 체하지 않도록 천천히 가자. 가는 길이 어두울 수 있으니 찬찬히 살펴보며 걷자. 생각보다 멀 수 있으니 쉬엄쉬엄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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