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돌아다녀서 아픈 아기
우리 아기가 태어난 지 8개월이 지났을 무렵, 갑자기 하얀 콧물이 흘렀다.
여름이 거의 지나갈 무렵이라 에어컨도 안 켜고 지내고 있었는데, 감기에 걸리다니…
나는 난생처음 TV에서만 보던 소아과 오픈런을 뛰었다.
09시 병원으로 달려갔을 때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생각하며 들어갔지만 전광판에 뜬 숫자에 기겁했다.
98명, 오전접수 마감
심지어 오후 접수는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12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똑딱 어플이 예약이 안될 수 있어
11시 50분쯤 현장대기 후 병원 내 비치된 키오스크에서 예약을 해야 했다.
소아과가 없다는 뉴스는 봤지만 내가 살고 있는 지역까지 이 정도 일 줄을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오후예약을 잡았고 다행히 오후진료 1번으로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한껏 걱정된 목소리로 ‘왜 감기에 걸렸을까요?’라고 물으니 인자한 인상의 의사는
‘생후 6개월이 지나면 엄마로부터 받은 면역력이 없어지고, 외출이 많이 지는 시기라
감기에 걸리는 경우가 많고, 지금 코감기 바이러스가 유행 중이라 그렇습니다.‘
라고 설명해 주었다. 약을 처방받아 집으로와 약을 먹이는데 우리 아기는 난생처음 먹는
쓴 맛에 3시간 전에 먹은 분유까지 다 토해내 버렸고 나는 인터넷에 비법이란 비법을 찾아봤지만
2일째 되는 날까지 토하고 약 먹고, 토하고 약 먹고를 반복했다.
너무 걱정스러운 마음에 양가 어머니들께 전화를 걸어 약먹이는 법을 여쭤봤는데
두 분 다 놀라울 정도로 똑같았다. 걱정과 질책이 섞여있는 목소리로
‘애를 데리고 밖으로 너무 돌아다니니까 감기가 걸리지!!!’
주 2회 1시간 정도 놀이센터, 문화센터를 다녔고 그 외에는 조동아리 집에서 만났다.
무엇보다 이 시기 유일하게 집에 있는 사람이라 부모님들 병원을 제일 많이 갔었다.
그런데 내가 너무 돌아다녀서 아기가 아픈 거라니, 전화를 괜히 한 것 같아 후회했다.
내가 원한 건 ‘아기가 아파서 걱정이 많이 되지?‘와 같은 위로는 1도 바라지 않았고
그저 토하지 않게 약먹이는 법, 자식 키울 때 어떻게 약을 먹였는지에 대한 노하우였는데
그 방법은 하나도 듣지 못한 채 10분 정도를 양가 어머니들께 혼났다.
전화를 끊고 멍하니 있는데 갑자기 억울함이 몰려왔다.
언제는 집에서만 아기를 키워서 예민하다고, 밖으로 사람들 좀 만나라고
잔소리와 조언과 질책을 들었는데, 이제는 너무 돌아다녀서 애를 아프게 했다고 혼나다니…
물론 양쪽에 한 명밖에 없는 귀하디 귀한 손자라, 잘되라는 의미에서 한 소리 인지 알지만
우리 아기를 낳고 집으로 돌아온 그 순간부터 칭찬한마디, 위로한마디 들은 적 없이
매번 혼나기만 하니 나는 정말 못난 엄마인가 보다라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호르몬이 날뛰고, 아기는 아프고, 응원과 위로해 주는 사람은 없고 그 시기 남편이 아니었다면
정말 난 집 근처 정신건강의학과로 뛰어갔을지도 모르겠다. 창문에서 뛰어내리지 않기 위해서…
이 날을 기점으로 양가어머니들께 그 어떤 양육노하우도 묻지 않기로 했다.
우리 아기와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내 아이, 우리 부부의 아기는 우리 부부가
열심히 공부하고 소통하며 잘 키워가야겠다 다짐했다.
의사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지금부터 놀라울 정도로 아기들은 계속 아플 겁니다.
엄마 탓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고 병원 잘 다니고 약 잘 먹이시면 됩니다.
나는 오늘도 한 손에는 전화기를, 한 손에는 예약 어플을 켜놓고
09시가 되길 기다리고 있다.